역(逆)방향 기차를 타고 - 정목일
일주일에 한 번씩 고속기차(KTX)를 탄다. 플레트 홈에 KTX가 들어오는 모습은 풀밭 위로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뱀 같다. 기차에 올라 좌석에 않으면, 역방향일 때가 있다.
역방향 좌석에 앉으면 풍경이 등 뒤에서 구름처럼 튀어나온다. 낯선 사람의 얼굴을 보는 듯 머쓱하다. 뒷걸음치는 건 아닌지 혼란하다. 물끄러미 사라져가는 풍경들을 바라본다. 현재진행형이 과거 속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숨어버린다. 공간은 그대로인 채 기차만 이동할 뿐인 데도 모든 것이 스쳐간다. 역방향에선 사라져가는 것들을 배웅할 뿐 다가오는 것을 마중하지 못한다.
뒤에서 다가오는 것들은 미지이고 예측할 수 없다. 정방향이 아니기 때문에 닥쳐오는 일들을 바라볼 수 없다. 미지와 불예측은 불안과 당혹감을 안겨준다. 모든 게 명확하지 않다. 삶과 인생도 역방향에서 보는 풍경이 아닐지 모른다.
기차는 입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강물이 어디서 흘러오는지 볼 수가 없다. 레일 위로 정해진 시간 속으로 달려갈 뿐이다. 승객이 누구거나 상관하지 않는다.
산과 들판, 나무와 강, 하늘과 구름의 표정을 알 길 없다. 전체의 모습과 조화를 살필 수 없다. 등 뒤로 사라지는 일부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뒷모습은 얼굴을 볼 수 없다.
젊은 시절에 역방향 기차를 탄 적이 있다. 완행열차였지만 의자를 뒤로 돌리면 역방향이 된다. 친구끼리 대화하면서 보는 풍경은 다정스러웠다. 시골 간이역의 꽃들, 마중나온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역방향이었지만 느릿느릿 산책하 듯 가고 있었다. 대화가 있었고 여유가 있었다.
고속기차는 시속 300km로 달린다. 현대는 시간 경쟁 중이다. 속도 전쟁을 벌이고 있다. 시간 혁명을 실감하면서 풍경을 완상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고속 기차의 승객이 된 것처럼 세월이 빨리 지나감을 느낀다. 준비도 되지 않은 채 종착역에 닿고 말 것 같아 초조하다.
저물녘에 희끄므레 떠밀려 가는 것들의 모습들..... 눈을 뜨고 사물의 얼굴을 보고서 대화를 나누면서 가고 싶은데, 사물들은 옆으로 비켜 간다. 내 삶의 모든 모습들이 역방향에서 보는 것처럼 어설프게 지나가버리고 마는 게 아닐까.
나는 역방향 17-C석에 앉아야 할 운명이다. 방향 착오인 데도 궤도 수정을 할 수 없어 답답하다. 정해진 방향과 자리, 운명이라는 표를 지닌 채 지금 시. 공간 속을 뚫고 지나가고 있다. 이것을 여행, 혹은 삶의 한 과정이라 할 것인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인생이라는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의 승객이 된다. 기차를 타고 달려가는 과정이 삶이며, 종착역이 죽음이라는 걸 알고 있다.
스쳐가는 풍경들..... 정면(正面)이 아닌 측면(側面)이나 배면(背面)에서 만난 인연들이 손을 흔든다. 삶 속에 있었던 수많은 만남과 떠남의 장면이 떠오른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들은 추억의 창고 속에 잠시 반짝이다가 퇴색되어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인가.
내 인생은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현재 내 삶의 좌표는 어디인가. 아직도 알 수 없어 해매는 시. 공간에서의 어지러움과 낮설음.... 이대로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알지 못하는 세계로 사라져버려도 좋은가. 도대체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풀 길 없는 영원한 질문 위로 기차는 속도를 내며 달려간다.
레일은 어디까지 놓여 있을까. 사라지는 노을의 레일은 하늘 어디 쯤에 놓여 있기에 순식간에 모습을 감춰버리고 마는가. 노을이 사라진 뒤 그 자리에 어둠이 채워지고, 별 몇 개는 또 어디서 온 것인가.
나는 지금 역방향 기차를 타고 달려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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