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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균 수필 연재 - 가을바람 부는 대로(중)

Joyfule 2012. 3. 19. 00:47

    

 

 

목성균 수필 연재 - 가을바람 부는 대로(중)


4. 주문진
정오가 조금 넘어 주문진에 도착했다. 우선 어항 구경부터 하기로 하고, ‘회 센터’ 옥상에 주차를 하고 어항으로 나왔다. '금강산도 식후경'의 역순이다. 아직 시장하지 않아서 조금 공복감을 느낄 때 흰자질 섭취를 효율적으로 해보자는 속셈이다. 나는 산골 놈이라 그런지 찝찔하고 비릿한 냄새와 좀 거친 듯한 왁자지껄한 소리가 어우러지는 선창이 좋다. 그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느끼는 곳이 주문진 항이다. 끼룩끼룩하면서 내항(內港)을 저공비행하는 갈매기가 나를 반기는 것 같아서 오랜 친구처럼 반가운 주문진 항-.

주문진 항은 항상 활기차다. 설악산과 오대산 쪽을 거쳐 동해의 선명한 수평선을 보며 소주와 회에 취하러 오는 서민들의 관광코스의 하이라이트가 주문진 항이다. 그들로 해서 주문진 항은 번창하고 그 번창하는 활기를 느끼러 관광객은 몰려온다. 그 상승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곳이 주문진이다.
관광여행이란 풍광만을 즐기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 것은 50%짜리 관광이다. 거기에 사람 살아가는 다른 유형, 낯선 문화를 접해야 100%의 관광여행이 되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이 적자에 허덕이는 이유는 50%짜리 관광이기 때문이다. 연행 당하듯 배에 실려 가서 어버이수령께 불경하지 않도록 유념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금강산이 세계적인 절경인들 무슨 여행의 기쁨이 있으랴. 설혹 호기심의 충족은 될지 모르지만 그 것은 1회용이다. 호기심 때문에 똑같은 걸 두 번 보는 바보는 없다. 그래서 나는 금강산 관광은 맘에 없다. 금강산을 보느니 설악산을 한 번 더 보는 게 경제적이다. 금강산은 설악산 비슷한데 설악산보다 더 산악과 계곡이 아기자기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맞기 때문이다.

주문진 항에는 플라스틱 다라에 활어(주종은 오징어다)를 담아 놓고 억센 아주머니들이 호객을 한다. 그 다라 앞에 서서 활어를 감식하듯 구경을 할라치면 활어장수아주머니들이 강매를 하려든다. 내 고향 초등학교 동창 한 녀석은 거나하게 취해 가지고 눈으로 다라의 고기를 거들떠보며 감히 그 아주머니들과 시비를 건다. 자연산이 아니라느니, 한물갔다느니, 금이 비싸다느니 충청도 산골 놈 주제에 활어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 듯 공자 앞에 문자 쓰듯 하다가 활어장수 아주머니에게 혼이 나기 일쑤다. 그러면 기분 좋다는 듯이 실실 웃으며 ‘아니면 말고---’ 하고 돌아선다. 그리고 다른 다라 앞에 가서 또 그런다. 그러지 말라고 핀잔을 주면 ‘그런 재미도 없이 무슨 관광을 다니느냐’고 한다. 백 번 옳은 말이다. 촌놈치고는 여행의 재미를 아는 놈이다.

어항을 한바퀴 돌아보고 나면 먹는 일이 남았다. 어항 앞에 있는 회 센터 안에는 무슨 집 무슨 집들이 조합을 이루고 있다. 그 중에 ‘충주 집’이 우리 단골집이다. 처음에는 ‘충주 집’이라고 해서 충주사람들이 하는 횟집인줄 알고 기왕이면 고향사람 회를 팔아주자고 한 것인데 주인의 말소리가 강릉지방 사투리다. 출생지가 무슨 상관이냐, 그 인간성이 문제다.
우리가 이 집을 단골로 한 것은 우리 형제들이 동해안으로 바닷바람 쏘이러 왔다가 이 집에 들른 이후부터다. 당시 우리는 이 집 주인에게 잘 먹고 간다고 진심으로 인사를 했다. 회 값이 쌌는지 비쌌는지는 모르고, 젊은 주인내외의 친절하고 최선을 다하는 장사꾼의 도리에 반했다. 장사꾼의 도리를 다한다는 평점을 나는 주인여자의 시종 수더분한 웃음을 잃지 않는 얼굴에 두었고, 승주 할머니는 수저를 보더니 ‘어쩜 제상에 놓을 수저처럼 윤이 나도록 닦았네!’ 하더니 거기에 두었고, 막내 계수는 매운탕을 먹어보고 양념을 아끼지 않아서 매운탕국물이 맛있다며 거기에 두었다.
나는 음식값이 싸고 비싼 것은 재료값 플러스 봉사료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재료값을 시세보다 비싸게 받았어도 최선의 봉사를 받았으면 상쇄된다고 보는 것이다. 다음에 고향친구들과 다시 이 집에 들렀을 때 주인여자가 나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그 후부터 주문진에 오면 이 집에 들르고 당연히 받는 회 값은 적정가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5. 파도소리
'E 콘도'에는 아직 해가 많이 남아서 들었다. 비수기를 틈타서 로비를 수리하고 있었다. 온통 자재로 어지럽혀 놓았다. 콘도 홈페이지에 속았구나 싶어서 불쾌했다. 투숙객도 별로 없는 듯 한적하다. 카운터에서 열쇠를 받아 가지고 6층 객실로 올라갔다.
그런데 낙산해수욕장을 내려다보는 방은 신축건물처럼 깨끗했다. 침구도 깨끗하고, 주방기기도 질서정연하게 정돈되어있었다. 거실 창 너머로 보이는 해변에 비교적 높은 파도가 밀려와서 하얗게 부서진다. 거실 문을 여니까 무성영화 같던 파도가 ’쏴-아-, 처-얼-썩‘ 하고 하이파이 효과음을 낸다.
“아-! 좋다.”
두 여자가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구동성으로 감탄을 한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그 소리에 행복했다. 아직 해가 넘어가려면 시간이 남았다. 우리는 낙산사를 돌아보고 오기로 하고 방을 나왔다.
낙산사와 홍련암, 의상대를 돌아보았다. 동해의 절경을 바라보는 것이다. 승주 할머니가 다리 아프다며 콘도에 앉아서 보는 바다가 더 좋다며 돌아가자고 한다.

절 아래 연못이 하나있다. 연못에 나무로 원판을 만들어서 넣어놓았다. 큰판 가운데 작은 원판이 있는데, 소원을 빌고 동전을 던져서 작은 판에 떨어지면 소원이 성취한다는 것이다. 젊은 내외 간 같아 보이는데 여자가 남자에게 동전을 달래서 던진다. 그러나 더러 큰 원판에는 떨어져도 작은 원판에는 안 떨어진다. 공연히 귀추가 주목되어 두 여자가 저만큼 가서 기다리는데 선애 아빠와 나는 젊은 여자 동전 던지는 걸 제발제발 하며 지켜보았다. 그러나 여자는 그예 남자 호주머니의 동전을 거덜 내도 작은 원판에 동전을 넣지 못했다.
“바보 마냥 동전을 하나도 가운데다 못 넣느냐?”
“그리 잘 넣으면 박세리처럼 미국에 가서 골프를 치지 자기하고 살겠어-.”선애 아빠와 나는 마주 보고 웃었다.

콘도로 돌아와서 편의점에서 쌀 한 봉지 된장 끓일 거리를 사 가지고 방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지어먹었다. 장 끓는 냄새에 우리들이라는 일체감을 느끼고 기분이 좋았다.
밤이 깊도록 우리는 거실에 앉아서 바다를 보았다. 거실의 문을 조금 틔워놓고 파도소리를 들었다. 똑같은 음이다. 높이도 같고, 간격도 같고, 여운도 같은 그 소리가 하도 운치가 있어서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몰랐다. 선애 아빠는 술에 취해서 당초 정한 룰을 어기고 살아온 날에 대한 유감을 표명해서 선애 엄마한테 자꾸만 옐로카드를 받는다.

이야기는 주로 내가 했다. 우리들 사이에 즐거웠던 추억들이 의외로 별로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랬다. 그래서 결혼 전 이야기를 했다. 그건 두 여자들과 관련 없는 이야기들이다. 두 여자들은 방으로 들어가고 어느새 선애 아빠도 거실에 쓰러져 코를 골았다. 나는 문을 닫고 해변의 보안등 불빛아래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다가 소파에 누었다.

 

 

 

6. 일출
일출 광경을 노친 줄 알고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겨우 다섯 시가 조금 넘었을 뿐이다. 선애 아빠는 깊이 잠들어 있다. 베란다로 나갔다. 달은 콘도 너머에 가있어서 안 보이고 달빛만 바다에 가득하다. 파도는 어제 밤보다 조금 낮아져 있고, 파도소리도 한결 낮다. 어화가 떠있는 수평선에 어렴풋이 구름 띠가 보인다. 수평선상에서 뜨는 해는 볼 수 없을 것 같다.

콘도 아래 해안 철책 선을 따라 완전무장을 한 군인이 한 쌍 지나간다. 어느 해안초소에서 저 바다를 밤 새 눈이 아프도록 응시했을 초병의 밤은 길고 피곤했을 뿐인 듯 발걸음을 따라가는 긴 그림자가 피로하다.
춥다. 국화를 피우기 위해서 서리가 내린 것일까. 거실로 들어왔다. 선애 아빠가 해가 떴느냐며 깜짝 놀라서 깬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고 물병을 꺼내서 벌컥벌컥 마신다. 지난밤 맥주를 그리 마시더니 아침에는 물을 그리 마신다. 이 사람의 몸은 해면체로 되어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해변에 조개 주우러 나가자고 한다.
“조개껍데기?”
“아니 조개 말이어. 아침 장 끓이는데 넣게-.”
“이 사람아, 조개가 조약돌처럼 굴러다니는 거여, 줍게-”
“상주해수욕장 새벽 해변에 나가면 많았지 왜-.”

작취미성(昨醉未醒)인가, 선애 아빠는 25년 전 여름, 남해 상주 해수욕장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 우리 두 집은 한 집에 애들이 셋 합이 여섯과 내외 두 쌍 합이 넷 도합 열 식구가 남해 상주해수욕장에 갔다. 조치원에서 열차로 부산으로 이동해서, 한려수도의 쾌속선 엔젤호를 타고 노량선착장에 상륙해서, 버스로 남해 상주해수욕장에 갔다. 그 끔찍한 대이동이 생각하면 행복하고 즐거웠던 우리들의 유일한 추억이다. 아득한 세월에 흘러서 멀어진 그 시절, 생각하면 아쉽고 그립다. 아침에 상주해수욕장 해변에 나가면 파도라기보다 잔잔한 물결이 간지러운 해조음을 내면서 해변을 할 듯이 밀려 왔다. 발목이 잠기는 해변에 들어가서 발바닥으로 모래를 비비면 조개의 매끄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렇게 조개를 잡아 가지고 와서 아침에 조개장국을 끓여먹었다. 선애아빠는 그 걸 기억하는 것이다.

아무튼 해변으로 나갔다. 그러나 파도가 어제 저녁보다는 좀 잔다지만 여전히 옷을 입은 채 해안선 접근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기세였다. 동해와 다도해의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는 조개대신 조개껍데기를 주었다. 생명을 간직하고 있었던 흔적의 소중함을 경건한 마음으로 보물이라도 집어 들듯이 주웠다. 사실은 일출을 기다리는 마음일 뿐 조개의 빈집을 탈취할 생각은 아니다.
그러는 사이 점점 수평선의 구름 위로 분홍 물이 번지더니 마침내 내가 향하고 선 1시 방향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봄밤에 보는 먼 산의 산불처럼 구름 등허리를 따라 새빨간 불꽃이 띠를 이루고 번져나가다가 구름 뒤에서 큰불이 난 것처럼 타오르며 둥그런 불덩어리가 이글이글 불끈 솟아올랐다.

일출 광경은 장엄하다. 수평선으로 떠오르는 것이나, 산 위로 떠오르는 것이나, 구름 위로 떠오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모양만 틀리다 뿐이지 사람에게 주는 일출의 메시지는 같다. 사람들이 동해의 일출을 보려고 벼르는 마음은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가 흔히 볼 수 없는 때문일 뿐이다.
나는 일출을 향해 서서 점점 마음을 비워갔다. 그 것은 햇살아래 널어 말리는 빨래가 하얗게 바래지는 과정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오욕칠정과 회한 같은 속인에게 어쩔 수 없이 찌든 마음의 혼탁을 잠시나마 정화하는 것이다. 그 마음을 가져보려고 우리는 일출을 향해 선다. 선애 아빠도 나 같은 마음인지 해를 바라보는 얼굴이 순수하기 그지없다. 삶에 지친 표정이 아니다. 갈매실 여울목에서 노을에 물들어 파리낚시를 드리우고 있던 밀짚모자 아래의 그 얼굴이다. 콘도 쪽을 돌아보니까 두 여인이 베란다에 서있는데 먼 모습으로도 역시 같은 마음 인 듯 보였다.
일전에 향님이 설악산에 들어가다가 길이 막혀 포기하고 돌아섰다는 말을 들은바 있어서 서둘렀다. 장을 끓여서 아침을 해 먹고 콘도를 떠났다. 추억을 남긴 잠자리는 돌아보게 마련이다. 주차장에서 콘도를 돌아보며 속으로 잘 묵어가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