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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균 수필 연재 - 깃발

Joyfule 2012. 3. 26. 08:37

 

    

 

 목성균 수필 연재 - 깃발


 

하기 식 때면 해군 신병훈련소 984중대 중대장님 생각이 난다. 그 혹독했던 훈련소의 중대장님이 그리운 것은 비단 흘러간 내 젊음에 대한 향수만은 아니다. 그 분의 불꽃같이 아름다운 군인정신과 순정적인 국가관에 의한 별난 훈련의 효과가 내 가슴에 살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들은 이 바다 위에
이 몸과 맘을 다 바쳤나니
바다의 용사들아 돛달고 나가자
오대양 저 끝까지

“더 크게, 더 크게 못 부르겠어”
984중대 중대장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군가의 가사처럼 바다에 바치기로 한 젊음을 위탁받은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에 충실했던 중대장님, 이름도 성도 까마득히 잊어버렸지만 그 분의 모습은 아직도 불타는 서편 하늘에 분명하게 깃발과 함께 떠오르곤 한다.
작달막한 키에 광대뼈가 불거진 얼굴이 거짓 없는 우리의 만만한 토착민(土着民)이었는데, 그 눈이 문제였다. 도수 높은 안경 너머 빛나는 작은 눈이 꼭 값을 하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분은 마치 대장장이 같이 젊은 신병들을 쇠붙이 다루듯 했다. 일단 팔팔한 젊음을 가마에 넣고 풀무질을 해서 노글노글하게 숨을 죽인 다음 다듬질 쇠에 얹어 놓고 망치질을 해서 모양새를 만들었다. 그리고 담금질을 계속해서 마침내 쓸모 있는 해군을 만들어 냈다. 그 것은 대장장이의 벼름질과 같은 오직 순수한 열성, 장인 정신이었다. 그래서 그의 가혹한 기압 뒤에는 도무지 원망의 여지가 남지 않았다.

신병훈련소에 입소하던 날, 중대편성을 마치고 군복으로 갈아입은 우리 앞에 선 그 분을 보고 나는 훈련생활의 앞날에 대해서 우려를 하며 일단의 각오를 했다. 그러나 일단의 각오라는 것이 얼마나 감상적인 것인지 그 분은 즉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해군은 함정을 타고 바다에 나가서 적함과 맞서 싸우는 군인이다. 만약에 함정이 격침 당했다면 승조원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나?”
“바다에 빠져 죽습니다.”
“그런데 구명정이 한 척 있다. 승조원이 다 탈수는 없다. 타는 사람만 살 수 있다. 살기 위해서 반드시 구명정을 타야 한다. 그 살기 위한 기본 훈련부터 실시한다. 중대원은 동편 984중대 전용 구령대 앞에 선착순으로 집합한다. 헤쳐!”
입소 첫 훈련이 소위 ‘구명정 타기’라는 훈련이었다.
구령대에는 30명쯤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중대원은 60명이었다. 당연히 절반은 구령대에 올라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중대장이 호각을 불면 구령대로 올라간다. 물론 반밖에 못 탈 것이다. 그러면 반은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한다. 죽느냐 사느냐는 전적으로 너희들의 정신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중대장은 호각을 불었다. 중대원들이 우르르 구령대로 뛰어 올라갔다. 날쌔고 힘센 중대원들이 절반쯤 먼저 재빨리 구령대에 올라가고 절반은 구령대 밑에서 멀뚱한 눈으로 ‘우린 어떡하지요?’ 그리 묻는 얼굴로 중대장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거지 하듯-.
“뭣하나, 바다에 빠져 죽을 작정인가. 빨리 구명정을 타라.”
중대장이 고함을 치며 조교와 같이 구령대에 오르지 못한 중대원의 엉덩이를 복날 개 패듯 사정없이 빳다로 치는 것이었다. 빳다를 맞은 구령대 밑에 있던 중대원들은 불 맛은 멧돼지처럼 구령대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올라간 숫자만큼 구령대 위에 있던 중대원이 우르르 구령대 밑으로 떨어졌다. 구령대에서 떨어진 훈련병들은 ‘이제 어떡하지요?’ 하는 표정으로 중대장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역시-,
“뭣하나, 바다에 빠져 죽을 것인가, 빨리 구명정을 타라.”
중대장과 조교가 기다렸다는 듯이 구령대에서 떨어진 중대원들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빳다로 쳤다. 떨어진 중대원들이 다시 필사의 힘을 다해서 구령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러면 또 그만큼 구령대 위의 중대원이 우르르 떨어지고---. 똑같은 짓이 반복되었다.

훈련이라기보다 인간의 약점에 대한 가혹 행위였다. 살기 위한 인간의 본능을 조율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무질서, 무아의 지경이었다. 오직 말초신경까지 팽팽하게 긴장하는 동물적인 기민성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한참 동안 그렇게 훈련(?)을 할 때, 나팔소리가 연병장에 가득하게 울려 퍼졌다.
“동작 그만, 국기에 대하여 경례 -!”
서편 하늘이 붉게 타고 있었다. 그 반조(返照)에 물든 태극기가 바다에서 불어오는 저녁 바람에 찢어질 듯이 퍼덕이고 있었다. 깃발이었다.
우리는 국기에 대하여 경례를 하고 서 있었다. 나팔소리에 따라서 깃발이 서서히 깃대에서 내려지고 있었다. 인간의 치사한 본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마당에 내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순수했다. 막 백 미터 달리기를 마친 주자처럼 숨만 찰뿐이었다.
몸부림치듯 불타는 노을을 배경으로 내려지는 깃발의 눈물겨움---.

순정은 물결 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국기 하강 식이 끝나면 훈련은 즉시 중단되었다. 중대장님은 중대원을 도열시켜 놓고 아주 순수한 인간적인 어조로 말했다.
“수고 많았다.”
영화의 전투장면을 보면 반드시 전열의 앞에 깃발을 든 기수가 서 있다. 병사는 깃발 때문에 맑고 곧은 순정으로 이념을 향해서 돌진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해군 신병훈련소 984중대장님은 그 후 13주의 훈련 과정에서 훈련병의 정신이 해이해지면 반드시 하기식을 앞두고 ‘구명정 타기’ 훈련을 실시해서 하기식 나팔이 불면 끝냈다. 그리고 국기에 대해 경례를 시켰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저녁바람에 범벅이 된 땀을 들이면서 깃대를 내려오는 태극 깃발에 대한 경례를 하면 사우나를 하고 냉탕에 들어가는 것만치나 상쾌했다. 그 중대장님에 대한 인간적 불쾌감을 느낄 여지가 없었다. 그 중대장님은 젊은이의 순정을 잘 이용해서 소기의 훈련 목적을 달성하는 용병술을 터득한 분이었다.

“나를 인간으로 여기지 마라. 신병훈련소 중대장 노릇으로 내 청춘을 다 불살라 버렸다. 나는 중대장일 뿐이다.”
기억에 의하면 그런 이미지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의 그 훈련소 중대장처럼 훈련병의 인간성을 훼손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벌서 40년 전 이다. 그 중대장님은 세상을 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도 하기식 애국가가 울려오면 국기가 있을 만 한 쪽을 향해서 차려 자세로서는 버릇이 남아 있다. 그러면 눈물겨운 순정의 시절이 노을에 지는데, 깃발과 중대장님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