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균 수필 연재 - 봄비와 햇살 속으로 2
양양의 서울의원을 물어서 찾아가니까 셔터 문이 굳게 닫혀있다. 일요일이라서 그런가. 난감했다. 서울의원이 이모의 큰 딸네 병원이다. 여기서 안내를 받아야 이모를 만나 뵐 수 있다. 그런데 병원 문이 닫혀있다. 병원은 페인트칠 좀 했으면 좋겠다 싶은 오래된 3층 건물이다. 병원이 성업중인 건 아닌 듯해 보인다. 1, 2층은 병원이고 3층은 살림집 같다. 셔터 문에 전화 번호가 두 개 적혀있어서 전화를 해보았더니 둘 다 안 받는다. 병원 옆집은 식당이다. 병원 사정을 알 것 같아서 물어 보았다.
“그 병원 원장님은 의사가 아니라 전도삽니다. 일요일은 병원 문 닫아걸고 전도하러 나서는 걸요.”
“그럼 병원 꼴 안 되지요.”
“안 되고 말고 지요. 병원에 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병원 경영을 등한히 한다는 말 같다. 그래서 자기들이 손해본 게 있는 것처럼 공연히 꼴이 틀려 가지고 그 점을 역설한다. 내 이종의 병원을 말하는 것이라 그런지 듣기 불쾌했다.
병원 골목 안에 교회가 있었다. 이종사촌이 그 교회의 교인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일요일마다 전도를 하러 다닐 정도의 독실한 신앙을 가진 교인이라면 교인들 사이에는 알려져 있을 것 같아서 찾아가 물어보았더니 마트에서 알아보라고 한다. 병원 뒤 너른 공지에 대형 할인마트가 들어 서있었다. 그 마트 터가 병원 땅이라서 마트 사람들은 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마침 정육점 코너의 젊은 아주머니가 병원의 간호사였다. 그 아주머니가 이모에게 전화를 해주었다. 이모가 반색을 하신다.
“촌놈이 왠 일이냐. 말해서 못 찾아온다. 꼼짝 말고 거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잠시 후 우산을 쓴 흡사 우리 어머니 같은(얼굴만 그렇다. 이모는 서울노인 풍이고 우리 어머니는 산골노인 풍, 분위기는 틀린다) 안노인네가 마트를 향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달려나가서 이모를 맞았다.
이모는 양양 변두리에 있는 새로 지은 연립주택에 살고 계셨다. 집안에 들어갔더니 거실에 어찌 보면 처녀 같고 어찌 보면 오십쯤 된 것 같기도 한 여자가 무표정하게 서서 내게 초점이 안 맡는 시선을 던진다. 이종4촌 동생 기영이다. 어려서 모습이 남아있다. 울컥하는 마음으로 손을 잡고
“나 누군지 알겠어-?” 했더니 “성균이 오빠-.” 아무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그리 대답하는 것이다. 30여 년을 앓은 병이다. 정신신경이 황폐해 있는 처지에 나에 대한 기억을 남겨 가지고 있는 것이 고마워서 홍도의 오빠처럼 동생을 안아주었다. 여전히 표정 없다.
1960년 청운동.
나는 이모 댁에서 숙식을 하며 서라벌예대를 다녔다. 그 때 이모 슬하에 광희중학에 다니는 기환이, 청운 국민학교 6학년인 기자, 3학년인 기영이 그렇게 이종4촌 삼 남매가 있었다. 나는 명색이 그 애들의 가정교사였다. 여동생 둘은 명민했다. 내가 학습지도를 해줄 여지가 없이 학과를 앞서나가는 실정이었다. 문제는 광희 중학에 다니는 맏이 기환이다. 기환이는 책상 앞에만 앉으면 졸았다. 이놈은 도대체가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다. 기환이의 성적이 떨어진다고 이모한테 닦달도 많이 당했다.
“너 밥값을 하는 거냐 안 하는 거냐”
이모가 내게 매몰차게 그러면 기환이가 딴에 미안한 듯
“형한테 그러지 마, 골통이라 형이 죽어라 하고 가르쳐 줘도 안 돼-.”
기영이는 머리가 너무 좋아서 걱정이었다. 천재 단명이란 말 때문이었다. 머리만 좋은 게 아니고 발랄하고 기탄 없는 성격이었다. 왜 그런지 국민학교 3학년생인 애가 오줌을 쌌다.
“헤헤헤---” 웃고
“오빠 나 오줌 쌌다.”
그러고는 내 등에 엎드려서 부끄러워했다.
기영이는 서울대 치의대에 들어갔다. 말에 의하면 본과에 올라가서 실재(實在)로 시신(屍身)을 해부하는 실습에 참가했다가 발병을 했다고 한다. 발병을 안 했으면 지금쯤은 치과의사로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너무 아깝다.
“기영아 오빠 커피 좀 타드려라”
이모가 그러자 커피를 타왔는데 내 입맛에 딱 맞게 타왔다.
“동생 커피 맛있게 탔네-”
동생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 번졌다. 어릴 때 오줌 싸고 부끄러워 웃던 귀엽고 발랄한 모습이 잠깐 엿보였다.
이모 님이 자고 가라고 말리시는 걸 뿌리치고 일어섰다. 섭섭해하신다. 당신은 기영이 때문에 이제는 꼼짝할 수 없다며 네 어머니를 보러가기는 틀린 듯 싶으니 네가 대신 어머니를 모시고 또 오라고 하신다. 기영이가 문밖까지 따라나와서 무표정하게 서있었다.
“아가씨 안녕히 계세요." 아내가 손을 잡고 그러자 혼란스러운 듯 빤히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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