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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성균 수필 연재 - 봄비와 햇살 속으로 3

Joyfule 2012. 3. 12. 07:44

 

    

 

 

목성균 수필 연재 - 봄비와 햇살 속으로 3

원래 덕구온천에 가서 자려고 했다. 아내가 한 달 전부터 무릎이 아프다며 따뜻한 탕에 담그고 주무르면 시원하다는 소리를 해서다. 관절에 이상징후가 발생한 듯하다. 그러나 양양서 늦은 오후에 떠나서 되 가기는 너무 먼길이었다. 불야성인 삼척시내를 통과하고 나니까 더 가기 싫다. 밤에 불 밝은 도시에 이르면 낯설고 왜 그런지 고독해진다. 나이 탓인지 모른다.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이런 느낌일까. 내가 지금 어디에 무엇 하러 와 있는 것인가, 아득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근덕을 지나서 장호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모텔에서 잤다. 투숙객이 없는 듯 너무 적막하다. 파도소리가 쿵쿵 지구를 온통 다 울리는 것 같다. T. V 채널을 넘기다 보니 어느 유선채널에서 마린 먼로와 로버트 밋참 주연의 미국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을 방영한다. 웬 횡재인가 싶다. 내가 미국 서부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해피엔딩으로 처리되는 권선징악의 통속적인 스토리 때문이다. 나는 통속적인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내 수필도 문학적 테크닉 보다 인간의 속성에 기대하는 바 크다.

‘센’과 ‘돌아오지 않는 강’은 서부극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다. ‘센’은 아역배우의 연기 때문이고, ‘돌아오지 않는 강’은 마린 먼로의 뇌쇄적인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착오였다. 여기서도 아역배우의 역할이 나를 감동시키는 것이었다. 낭랑 십 팔세 때도 아역배우의 역할 때문이었을까? 그 때는 마린 먼로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역 배우의 역할이 마린 먼로의 역할보다 더 좋다. 승주 때문일까.

소년은 자기 아버지를 존경한다. 상식적인 설정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와 마린 먼로가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버지가 사람을 죽였는데 등뒤에서 총을 쏘았다는 것이다. 소년은 실망한다. 하늘 같이 우러러보는 내 아버지가 등뒤에서 사람을 쏘아 죽인 비열한(卑劣漢) 이라니, 믿음을 상실한 소년의 좌절감을 어른들은 모른다. 아버지가 등뒤에서 총을 쏘게 된 불가피한 경위를 설명했지만 소년은 한번 실추된 아버지의 이미지를 돌릴 수는 없다. 소년은 살맛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돌아오지 않는 강’ 끝난 곳에서 善惡이 만난다. 소년의 아버지를 부당하게 해치고 인디언이 출몰하는 서부에서 죽음의 방어 수단인 말과 총을 뺏어 가지고 달아난 마린 먼로의 애인과 정의를 위해서 그를 응징해야하는 소년의 아버지가 만나는 것이다. 마린 먼로의 애인은 소년의 아버지에게 빌든지 아니면 소년의 아버지를 죽이든지 양단간에 결정해야 하는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렀다. 마린 먼로의 애인이 비열하게 소년의 아버지를 등뒤에서 쏘려고 하는 찰나, 소년은 방금 아버지가 선물한 라이플 소총으로 등뒤에서 그를 쏘게 된다.

그렇게 하여 소년은 등뒤에서 총을 쏘지 않을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도 있다는 아버지의 말을 깨닫고 다시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되찾는다. 이 영화의 개요는 마린 먼로와 로버트 밋참이 격랑의 강을 지나며 싹트는 사랑이야기지만 그 배선인 소년의 청순한 생각이 이 영화의 감동을 더해주는 것이다. 여행의 피곤도 모르고 영화를 보았다.

다음 날은 습관처럼 5시경 잠이 깼다. 지도를 보니까 덕구온천이 멀지 않다. 새벽 入浴을 하러가자고 아내를 깨웠다. 아직 잠도 깨지 않은 어두운 온천단지에 도착했다. ‘덕구온천관광호텔’ 대 온천 탕에 들어갔다. 시설도 좋고, 물도 넘치고, 사람은 별로 없다. 자본의 축적이 국민의 삶을 향상시킨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우월하다는 증거다. 10여 년 전 이곳에 들렸을 때 이 호텔 건물은 신축 중이었고 허름한 창고 같은 원탕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그 때도 겨울쯤이었는지 온천건물 안에 냉기가 돌고 탕 안의 물은 턱없이 뜨거워서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이 현대적인 온천시설이 계속 유지 내지는 더 좋은 시설로 발전되기를 빈다. 그것은 우리 국민의 생활향상에 의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국민의 삶이 질적으로 간단없이 수직상승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런데 국민소득 만 불에서 우리의 경제는 멈춰있다. 그리고 10억 인구의 중국이 우리 경제를 추격하고 있다. 그들이 우리를 추월하면 우리는 남미의 여러 나라가 북미에 치어서 경제발전이 멈춘 것처럼 멈추고 말지 모른다.

그런 때의 국회가 국민의 생활현안 법 제정은 밀쳐두고 국회의원 숫자 늘이는 법만 가지고 논다. 국회의원들은 금 뺏지를 국민들은 개밥그릇이라고 혐오하는데도 개밥그릇 챙기기에 대가리가 터진다. 왜일까 내 사견이지만 국회의원을 해서 ‘顯考 國會議員’으로 사당에 모셔지는 가문의 영광을 바라는 마음은 아닌 듯하다. 다만 이문 남는 장사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을 하려는 듯하다. 즉 개처럼 벌어서 개처럼 써보자는 주의가 아닌가 싶다. 에이 보부상만도 못한 위인들-.


따뜻한 탕 안에서 쾌적하니까 행복하다. 천리 저쪽에 계시는 어머니께 죄송한 생각이 든다.
“이모한테 가면 나도 데리고 가거라”
“그 먼 데 가시다 병 날라고 그러세요, 안 돼요”
한 마디로 거절한 불효가 맘에 걸린다. 탕 밖에 나와서 아무리 기다려도 아내는 안 나온다. 지루하고 아침 식사시간을 넘은 배가 민원을 제기한다. 신경질 나려고 한다. 얼마를 있다가 아내가 나왔다. 뭐라고 한 마디 하려는데
“무릎이 날아갈 듯이 시원해요.” 선수를 치고
“오래 기다렸지요” 한다.
“아니-.”
무릎이 날아갈 듯이 시원하다는 아내에게 무슨 불만이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