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균 수필 연재 - H형께 -.
새벽에 앞산에 올라갔더니 꿩이 ‘꿩-꿩-’깃을 치며 건너편 산으로 날아가고, 비비 새가 울었습니다. 비둘기도 ‘구-국, 구-국---’웁니다. 이제 명실공히 겨울은 봄에게 점령지를 물려주고 퇴각한 듯합니다.
새들도 때가 되었다고 둥지도 손을 보고 암컷을 부르는 소리겠지요.
H형
저는 아침마다 앞산에 올라갑니다. 승주 할머니가 올라가라고 채근을 해서 기도 하지만 사실은 먼동트는 산등성이를 보러 간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소위 지질학에서 말하는 지각의 침심윤회(侵蝕輪回)작용에 의해서 종순산형(從順山形)이 되어 가는 저 유순한 산등성이-. 백두대간에서 흘러내린 산등성이가 우암산에 모여서 의논이라도 한 것처럼 흩어져서 청주분지를 감싸 안았습니다. 나는 백두대간보다 삶을 포용하는 저 종순산형을 더 사랑합니다. 그 아래 무덤들을 담고 있는 구릉을 더 사랑합니다.
H형
도시 건너 먼 산등성이의 선은 더욱 늘어지고 부드럽습니다. 우리네 초가 지붕 선과 어쩜 그리 닮았습니까. 꼭 어린애를 엉덩이께 걸쳐 엎고 물을 가득 길어 담은 물동이를 이고 물을 흘리지 않고 가는, 불과 40여 년 전의 순하고 게으르고 욕심 없이 운명에 순응하며 산 시골 아낙네의 뒷모습 같습니다. 봉당에 퇴 한 간도 못 얹고 살던 가난한 농가의 초가지붕과 흡사한 산등성이입니다.
먼동 트는 산등성이의 탈속적인 모습을 향해서 서면 생업이 정치보다 이념보다 얼마나 더 소중한 것인지 마음이 경건해 집니다. 어린 새끼의 목구멍에 밥술이 안 들어갈 때 동학군의 투쟁은 성스러운 생물적인 발로였습니다. 지략(智略)이 전혀 깃들지 않은 표표히 가을 바람에 날리는 억새의 빛깔 같은 淡然한 결론이었지요. 먼동터오는 산등성이를 보면 둥둥 동학군의 엄숙한 북소리 들리는 듯합니다.
H형
사람도 저 산등성이 같이 유순하게 늙어갈 수 없을까하는 나의 바램입니다. 종교지요. 그러나 치졸한 아집과 교만과 허욕을 위해서 때로는 비굴하게 때로는 가증스럽게 여기까지 흘러온 내 인생이 변해지겠습니까. 그러나 동트는 그 산등성이를 향해서 그런 마음으로 서있으면 산등성이의 선처럼 내 마음이 한없이 유순해집니다. 모든 섭섭했던 모서리들을 다 마모 시킬 듯-.
H형
나는 지층깊이 묻혀서 강도 높은 결정체로 굳어져 귀한 다이아몬드보다 강변에 흔하게 굴러있는 조약돌을 더 좋아합니다.
물론 누가 한 손에 조약돌, 한 손에 다이아몬드를 들고 네 맘대로 가지라고 하면 다이아몬드를 집겠지요. 그러나 그 것은 좋아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환금성에 의한 선택일 뿐입니다. 나는 환금성의 가치로 분류되는 보석이기 보다 살갗 같은 질감으로 잘 마모된 한 덩어리의 조약돌이 되고 싶습니다. 탐욕의 눈길이 머물지 않는 하나의 친근한 조약돌-.
H형
우리는 편견의 빛을 발하지 않는 조약돌이 됩시다.
조약돌은 물살에 달아서 조약돌이 되었지만 다이아몬드는 강한 결정의 모서리로 상대적인 물질을 깎습니다.
H형 다이아몬드가 깎는 것은 다이아몬드의 속성입니다. 가급적 우리는 다이아몬드는 되지 맙시다.
나는 모서리가 없는 것이 좋습니다. 결정체가 아닌 게 좋습니다. 둥글게 마모되는 것이 좋습니다.
H형-.
나는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둥글게 달아서 조약돌이 되고싶습니다.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면서 다른 사람을 깎지 않겠습니다. 불가능한 범부의 소망일지라도 그것이 나의 믿음입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하면 인터넷이란 사이버 공간에서 느낀 바가 많아서입니다. H형께서도 내 맘 같을 때 있으실 줄 압니다. 그러면 그때 그리 마음 갖아 보시면 편할 것 같아서 참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H형
새벽하늘로 기러기가 날아갑니다. V자 대형을 짓고 끼룩끼룩 소리를 지르며 날아갑니다. 산 위에서 바라보아서 그런지 기러기가 잡힐 듯 가까이 날아갑니다. 앞으로 쭉 뽑은 길고 강인해 보이는 목줄기 그 끝에 머리가 달렸습니다. 어느 이념이 저 기러기의 새벽창공을 날아가는 진로 만치 확고하고 명징 할 수 있습니까. 어느 정치 이슈가 저렇게 난해하지 않고 쉽고 분명할 수 있겠습니까.
H형
너무 애처로운 저 기러기의 활공 반대 방향으로 높이 떠서 비행기가 날아갑니다 비행기에는 이미 해가 떴나봅니다. 눈부신 은백색 동체가 가물가물 날아갑니다. 기계가 날아가는 것과 생물이 날아가는 것을 보는 마음은 전혀 다릅니다. 기러기가 날아가는 것은 안보일 때 까지 보고싶습니다. 은백색 동체가 가물가물 비행해 가는 것은 평행선도 용납하지 않는 수직선을 보는 것 같아서 눈이 부십니다. 눈 다칠까 싶어서 외면을 합니다.
H형
맘을 조약돌 구르는 강변같이 가지세요. 모서리를 다 마모시킬 수 있어서 편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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