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관 자료 ━━/목적이이끄는삶

목적이 이끄는 삶 - 3. 삶의 원동력.

Joyfule 2006. 12. 2. 02:19

목적이 이끄는 삶- 3. 삶의 원동력.


“또 살펴보니, 모든 수고와 성취는 이웃에 대한 시기심에서 발생하였다”
(전 4:4 쉬운성경)

“목적이 없는 사람은 키 없는 배와 같다.
한낱 떠돌이요.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사람이다.”
-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

모든 사람은 무엇인가에 이끌려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사전은 이끌다(drive)라는 동사를 ‘길을 인도하다, 통제하다, 또는 방향을 제시하다’ 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자동차를 운전하든, 못을 박든, 골프 공을 치든 우리는 그 순간 그것을 인도하고, 통제하며, 그것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특정한 문제, 중압감 혹은 마감 시간에 쫓기면서 끌려가듯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기억, 계속 떠오르는 두려움, 혹은 입 밖으로 내보지 못한 잘못된 믿음에 의해 끌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백 가지의 상황, 가치 그리고 감정이 우리의 삶을 이끌 수 잇다. 그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것 다섯 가지를 살펴보자.

많은 사람들이 죄의식에 의해 끌려 다닌다.

이렇게 과거의 죄의식에 의해 끌려 다니는 삶은 후회에서 벗어나고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결국 삶 전체를 허비하는 것이다. 죄의식에 의해 끌려 다니는 사람들은 기억에 의해 조작된다. 그들은 과거가 미래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둔다. 그리고 때때로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의 성공을 파괴함으로써 스스로를 처벌하려고 한다. 가인이 죄를 지었을 때 그의 죄의식은 자신을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멀어지게 했고, 하나님은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 4:12)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목적 없이 헤매는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우리는 과거의 산물이지만 과거에 갇힐 필요는 없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의 과거로 인해 제한받지 않는다. 그분은 모세라는 살인자를 지도자로 바꾸셨고, 기드온이라는 겁쟁이를 용감한 영웅으로 바꾸셨다. 또한 우리의 날은 삶을 통해서도 엄청난 일들을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데 전문가이시다. 성경은 말한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

많은 사람들이 원한과 분노의 쓴 뿌리를 씹으며 살아간다

그들은 상처를 입은 곳에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용서를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는 대신 머리 속에서 고통의 순간들을 계속 되풀이한다. 원한을 품고 사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분노를 나타낸다. ‘침묵하며’ 분노를 내면화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감벙을 폭발시켜 다른 사람들에게 그 분노를 ‘쏟아 붓기도’ 한다. 두 반응 다 건전하지 않으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노할 때 우리는 우리가 분개하고 있는 그 사람보다 우리 자신을 더 아프게 한다.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은 이미 자기가 한 일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과거를 붙잡고 계속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기억하라. 우리가 원한을 품고 상처를 계속 싸매고 잇는 한 우리의 상처는 계속 상처로 남고, 그 상처는 결코 아물 수 없다. 과거는 과거일뿐이다. 아무것도 우리의 과거를 바꿀 수 없다. 우리는 원한을 품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우리 자신을 위하는 가장 좋은 길은, 과거에서 교훈만 얻고 잊어버리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을 자를 멸하느니라”(욥5:2).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이끌려 살아간다.

두려움이란 매우 충격적인 경험, 비현실적인 기대 그리고 엄격한 가정 환경으로 인해 생길 수도 있고, 또 유전적인 요인으로 생길 수도 있다. 그 원인에 상관없이 두려움에 의해 이끌려서 사는 사람들은 종종 좋은 기회들을 놓친다. 이는 그들이 모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안전한 방향으로, 위험을 피하고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두려움은 스스로를 가둬놓는 감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감옥은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을 막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과 사랑이라는 무기로 반드시 맞서 싸워야 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많은 사람들이 물질에 이끌려 살아간다

무언가 획득하고자 하는 욕구가 삶의 목표가 된다. 항상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이 욕구는 더 많이 가지면 더 행복해지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며, 더 안전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온다. 하지만 이 세가지 모두 사실이 아니다. 소유물은 일시적인 행복만을 준다. 사물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그것에 싫증을 느끼고, 보다 새롭고 더 크고 나은 것을 원하게 된다. 더 많은 것을 가지면 더 중요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도 잘못된 믿음이다. 하지만 자아 가치(self-worth).와 소유 가치(net-worth)는 동일하지 않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은 물건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돈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돈이 많을수록 더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부는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로 한순간에 잃을 수 있다. 진정한 안전은 그 어느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것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살아간다

그들은 부모나 배우자, 혹은 자식이나 스승, 또는 친구들 그리고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가 그들의 삶을 주관하도록 내버려둔다. 성인이 된 후에도 도저히 만족하지 않는 부모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주변의 압력에 끌려간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항상 걱정한다. 불행하게도 군중을 따라가는 사람은 군중 속을 헤매며 길을 잃게 된다. 나는 성공으로 이끄는 모든 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실패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의해 통제받는 것은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놓치게 만드는 길이다.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마6:24)라고 말씀하셨다.

이외의 여러 가지 우리의 삶을 이끄는 많은 다른 힘이 잇지만 이 모두가 막다른 골목, 즉 사용하지 못하는 잠재력, 불필요한 스트레스 그리고 만족하지 않는 삶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이 40일 간의 여정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 인도되고 통제되며, 방향이 뚜렷이 설정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대해 가지고 계시는 목적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목적을 모르는 삶을 보상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성공, 부나 명성 그리고 쾌락도 삶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목적 없이 사는 삶은 의미 없는 행동, 방향 없는 활동 그리고 이유 없는 행사들의 끊임없는 연속밖에는 될 수 없다. 목적 없이 사는 삶은 하찮은 삶이요, 무의미한 삶이다.

목적이 이끄는 삶에 따르는 유익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 때 다섯 가지 유익이 있다.

목적을 아는 것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준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갖고 살도록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점성학이나 심령술사와 같은 모호한 방법들을 통해서라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삶의 의미가 있다면 인간은 거의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지만, 반대로 삶의 의미가 업으면 그 어떤 것도 참을 수 없다.

한 20대 청년이 이렇게 썼다. “나는 무엇이 되려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진정으로 무엇이 되려고 하는 줄 모르기 때문에 실패자임이 틀림없다. 오직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대충 살아가는 것뿐이다. 언젠가 내 삶의 목적을 발견할 때에야 비로소 나는 살기 시작한다고 느낄 것이다.”

하나님이 없다면 삶에는 어떤 목적도 있을 수 없고, 목적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 의미가 없다면 삶의 중요함이나 소망도 없다. 성경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절망감을 표현했다. 이사야는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히 공연히 내 힘을 다하였다”(사 49:4)라고 말했고, 욥은 “나의 삶은 절망적인 나날들의 연속이다”(욥7:6, LB)라고 고백하고 있다. 욥은 이 외에도 “나는 포기한다. 사는 것이 지겹다. 그냥 나를 혼자 두라. 내 삶은 말도 안된다”(욥7:16, TEV)라고 절규하기도 했다 가장 큰 비극은 죽음이 아니라 목적 없는 삶이다.

소망은 우리의 삶에 공기와 물만큼 중요하다. 삶의 역경을 극복해나가기 위해서 소망이 필요하다. 버니 시걸(Bernie Siegel)박사는 “100세까지 살고 싶습니까?”

라는 질문을 그가 돌보고 있는 암 환자들에게 물어보면 누가 병마를 이기고 회복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삶의 목적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는 사람들은 “네”라고 대답을 했고, 이들이 생존할 확률이 가장 놓다. 소망은 목적을 갖는 것에서부터 온다. 지금 절망을 느끼고 있다면 조금만 기다리라. 목적을 가지고 삶에 임하기 시작하는 순간 당신의 삶에 멋진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29:11). 지금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했다고 느끼고 있는가?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우리가 상상하거나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을 하실 수 있다. 우리의 가장 큰 기도, 욕구, 생각 그리고 희망을 훨씬 뛰어넘는 일들을 하신다”(엡3:20, LB).

목적을 알면 우리의 삶은 단순해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명확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적은 꼭 필요한 활동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일을 하기 전에 간단히 “이 일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될까?라고 자문하면 된다. 명확한 목적이 없으면 우리는 왜 그런 결정을 내렸으며, 어떻게 시간을 투자하고 자원을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근거를 잃게 된다. 그저 상황, 압력 그리고 그 순간 우리의 기분에 따라 결정을 내릴 뿐이다. 자신의 목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것을 하려 하고, 또 이 때문에 스트레스, 피로 그리고 관계에 있어서 갈등을 겪게 된다.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만을 행할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에 만약 모든 것을 다할 수 없다면, 우리는 분명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혹은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더 단순한 삶의 방식과 분별 있는 계획을 갖게 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은 공허한 삶이다. 평범하고 단순한 삶이 풍성한 삶이다.”(잠13:7, Msg). 또한 이러한 삶이 마음에 평화를 준다. “주님, 당신은 목적을 굳게 지키고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완전한 평화를 주십니다”(사26;3,TEV).

목적을 알면 초점을 맞춘 삶을 살게 된다.

이는 우리의 노력과 에너지를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해준다. 우리가 선택적으로 살게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사소한 일들로 마음이 산란해지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사소한 것들을 추구한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사람들이 ‘조용히 자포자기하는 삶”을 산다고 말했지만, 오늘날 이에 대한 적합한 설명은 ‘목적 없는 산만함’ 이다. 많은 사람들이 회전판이 돌아가는 것처럼 정신 없이 계속 회전하기만 할 뿐 그 어디로도 가지 못한다. 명확한 목적 없이 우리는 계속 방향을 전환하고, 직업, 관계, 교회 그리고 그 외의 외부적인 것들을 끊임없이 바꾼다. 그것이 우리 마음의 혼란스러움을 안정시켜주고 공허감을 채워주기 바란다. 우리는 “이번엔 다를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그 기대가 초점과 목적의 결여라는 진정한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엡5:17).

초점을 맞추는 것의 힘은 빛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넓게 흩어진 빛은 힘이나 영향력이 거의 없다. 하지만 빛의 초점을 맞추면 에너지를 모을 수 있다. 돋보기를 통해서 태양빛을 모아 잔디나 종이를 태울 수 있다. 레이저 광선처럼 빛이 더 강하게 한 초점으로 모아지면 강 철도 뜷을 수 있다.

목적이 있고 초점이 맞춰진 삶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의 손에서 받은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의 선한 뜻을 능력 있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가장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산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거의 빈손으로 로마 제국에 기독교를 전파시켰다. 그의 비밀은 초점이 맞춰진 삶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의 모든 에네지를 이 한 가지에 집중시키고 있다. 과거를 잊고 미래를 기대한다”(빌3:13, NLT)>

삶이 영향력을 갖길 원한다면 삶의 초점을 맞추라. 그만 첨벙거리라. 모든 것을 하려는 것을 멈추라. 적게하라.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활동도 잘라내라. 그것이 유익하고 좋은 활동일지라도 가장 중요한 것들만 하라. 활동과 생산성을 혼동하지 말라. 무엇 때문에 목적 없이 바쁘게 살고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가지고 계신 모든 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그 목표를 계속 바라보자”(빌3:15, Msg)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목적을 알 때 삶의 동기가 유발된다

목적은 열정을 낳는다. 뚜렷한 목적만큼 힘이 되는 것은 없다. 반대로 목적이 없으면 열정은 소실된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다. 의미 없는 별 것 아닌 일들이 우리를 지치게 하고, 우리의 기운을 빼앗으며, 기쁨을 앗아간다. 조기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이렇게 썼다. “이것이 삶의 진정한 기쁨이다. 위대한 목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위해 사용되어지는 것, 세상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이기적인 아픔과 슬픔의 덩어리보다 자연스러운 힘이 되는 것이다.”

목적을 앎으로써 영생을 준비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영원한 유산을 만드는 데 인생을 보낸다. 그들은 죽은 후에 기억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삶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느냐가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평생 이룩한 것 이상으로 이룩할 것이고, 기록은 깨어지며, 명성은 사라지고, 공로는 잊혀진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깨닫지 못한다. 대학 시절 제임스 돕슨(James Dobson)의 목표는 학교 테니스 챔피언이었다. 그는 열심히 노력했고 자신의 트로피가 학교 트로피 전시장에 놓여졌을 때 너무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몇 년 후 어떤 사람이 그 트로피를 우편으로 보내왔는데 학교 재건축 당시 쓰레기통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제임스 톱슨은 말한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 당신 삶의 모든 트로피는 누군가에 의해서 버려지게 된다.”

지구상에 유산을 남기기 위해 사는 것은 근시안적인 목표일 뿐이다. 영원한 유산을 남기는 삶을 사는 것이 시간을 더 유용하게 쓰는 방법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기억되기 위해 이 땅에 보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영생을 준비하기 위해서 이 땅에 보내졌다. 어느 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고, 그 분은 우리의 삶에 대해 조사하실 것이다. 영생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시험인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기억하라.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다…그렇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 자기 삶에 대한 셈을 해야 할 것이다”(롬 14:10, 12, NLT). 그러나 다행히도 하나님은 우리가 이 시험을 통과하기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물으실 질문을 미리 가르쳐주셨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하실 것임을 알 수 있다.

첫째, “너는 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무엇을 하였느냐?”

그분은 우리의 종교적 배경이나 교리에 대한 생각을 묻지 않으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을 받아들였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을 배웠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말씀하셨다.

두번째 질문은 “내가 너에게 준 것들로 너는 무엇을 했느냐?”이다. 너는 삶을 통해 무엇을 했느냐? 내가 준 은사와 재능, 기회, 에너지, 인간관계 그리고 자원들로 무엇을 했느냐? 스스로를 위해 썼느냐? 아니면 내가 너를 창조한 목적을 위해 사용했느냐? 이 두 질문에 대해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첫번째 질문은 우리가 영생을 어디에서 보낼지를 결정해줄 것이고, 두번째 질문은 우리가 영생에서 무엇을 할지를 결정해줄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 우리는 두 질문 모두에 대해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