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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 결석 반성문이 대학노트 20페이지 “너, 소설 써 봐라”

Joyfule 2011. 11. 4. 04:55

 

무단 결석 반성문이 대학노트 20페이지 “너, 소설 써 봐라”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작가 멘토 최홍이 서울시 교육의원(1979년 영등포여고 야간반 담임교사)

1979년 야간인 서울 영등포여고 산업체 특별학급에 다니던 열일곱살 여공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반성문을 쓰라는 벌을 받았다. 1주일 동안 무단결석을 했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은 학교를 다시 나온 여공에게 “어떤 얘기라도 좋으니 네 얘기를 써 봐라. 뭘 하든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거라. 대신 학교는 빠지지 말아라”고 말했다.

여공은 대학노트에 20쪽이 넘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 반성문 대신 이 글을 받아든 선생님은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48·사진)씨와 최홍이(69) 서울시 교육의원의 아름다운 사제(師弟) 스토리다. 신씨는 자전적 소설 ‘외딴방’에 ‘최홍이 선생이 소설 대신 시를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으면 나는 시인을 꿈꾸었을 것이다. 소설은 그렇게 내게로 왔다’고 썼다.

12일 만난 최 의원은 32년전 신씨의 반성문을 받아들었던 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주간부 학생과의 오해로 무단결석한 사실을 덮어주고자 반성문을 쓰게 했는데 자신의 얘기를 착 달라붙게 쓴 표현력에 감탄했고 글을 구성하는 능력에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최 의원은 라디오 납땜을 하던 10대 여공 ‘신경숙’에게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건넸다. 신씨는 이 책을 필사하며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최 의원은 “우리 사회에 경숙이 말고도 고통받는 사람이 많고, 그들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면서 그 소설을 선물한 이유를 설명했다.

신씨와 최 의원의 만남은 인생의 상처가 만들어낸 필연이었다. 69년 당시 2년제 공주교대를 졸업한 최 의원은 같은 해 중등교원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학교 3곳을 거쳐 79년 영등포여고에 부임했다. 당시 영등포여고 교장은 “최 선생은 4년제 대학을 못 나왔으니 야간반을 맡으라”고 했다. 최 의원은 “당시는 야속했지만 야간반을 맡지 않았더라면 경숙이를 만날 수 없었겠죠”라며 웃었다.

최 의원은 “경숙이뿐 아니라 그 시절 만났던 제자들은 모두 시대를 함께 나눈 분신 혹은 동료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사제의 연은 졸업 후에도 계속됐다. 신씨는 등단 다음해인 86년 봄 등단 작품인 ‘겨울 우화’를 들고 최 의원을 찾았다. 최 의원은 “문학은 마라톤과 같으니 반짝하고 지는 작가가 되지 말라”고 격려했다. 최 의원은 “사람들은 경숙이의 작품만 가지고 말을 하지만 이 친구는 글과 사람이 일치하는 순수한 사람”이라며 “문체만큼이나 아름다운 경숙이의 사람됨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제자 자랑을 했다.

이런 최 의원에게도 스승으로서의 아픔이 있다. 최 의원은 “경숙이는 나로 인해 소설가의 꿈을 꾸었을지 모르지만, 내 말 한 마디로 꿈을 포기한 학생도 있었다”고 했다. 70년대 중반 성적이 저조했던 학생에게 “꼴등이 무슨 대학을 가느냐”며 핀잔을 주었는데 그 학생이 결국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최 의원은 “교사는 말 한 마디로 제자의 인생에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33년의 교직생활 가운데 나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이 있다면 꼭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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