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기독교 여성들의 단체활동
(1) 조선여자교육회
조선여자교육회는 1920년 4월에 배화학교 기숙사의 사감으로 있던 차미리사가 그 사감직을 사임하고서 조직한 것으로 94) 차미리사는 "이른바 조선의 여자교육이라는 것은 아직 그 정도가 유치함이 그 무엇이라 말할 수 없으며, 또한 학교를 다니지 못할 가정에 있는 여자들은 편지 한장을 자기 손으로 쓰지 못하고 신문 한장을 마음대로 보지 못하므로 답답한 형편이 참으로 많읍니다."95) 라고 하면서" 이에 대하여 동지 몇 사람이 모여서 비록 아무 지식이 없으나마 가정에 있어서 답답해 하는 우리의 자매를 위하여 이 회를 조직하고 매월 한번씩 통속부인강연회를 열어 집 안에 있는 여자들에게 새 지식을 주며 새 깨달음을 주려는 것이다"96)라고 취지를 밝히고 있다.
조선여자교육회는 주로 부인 강습회를 열었는데 1920년 4월 12일 종교예배당에서 첫 강습회를 열었다. 이 강습회에는 많은 여성들이 모여 들어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 회는 종교예배당 안에 여자 야학회를 개설하고 학용품을 무료로 제공하였으며 교사진은 회의 간부로 있던 각 여학교의 교사 10여명이 무보수로 일하였다.97)
1920년 9월에는 엄정동 새문안 교회로 강습소를 옮겼는데 차미리사는 이 강습소를 본격적인 궤도에 끌어올려 장차 여학교를 설립한 포부를 가지고 기금을 만들어 볼 계획을 세웠다. 그녀는 제1차로 1921년 여름 전국 순회강연을 떠나기로 하였다.
이순희 강연은 차미리사를 단장으로 하여 김선,이은,백옥복,김은수,허정자 등 6명을 단원으로 하여 출발하였다. 이 순회강연의 프로그램은 강연부와 음악부로 나뉘어 진행하였는데,강연은 "여자의 혼","현대 청년","여자의 요구"들이었다. 음악부는 독주 독창,피아노 합주, 독주,바이올린 독주 찬송가 합창 등으로 마련되었다.98)
1921년 7월부터 9월까지의 동아일보에 실린 전국 순회 강연의 내용은 "사회발전 원동력은 여자","육아와 위생","현재 젊은 남녀가 고민하는 이혼문제의 해결책","가정은 인생의 낙원"등과 같다.99)
이와같이 조선여자교육회의 강연은 가난한 여성들의 문제보다는 보다 부유한 여성들의 문제를 여권론적 시각에서 다루었다. 물론 그때까지도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서 교육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모든 직업활동과 사회활동의 기본인 교육은 중요하다.그러나 식민지,사회의 직업활동과 사회활동의 기본인 교육은 중요하다.
그러나 식민지 사회의 모순이 심화되어가고 그 속에서 사는 여성들도 그 심화된 모순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여성들에게도 취업의 기회나 사회활동의 기회는 제한되어 있었고 이 교육사업도 결국 전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제한적인 수를 대상으로 제한적인 활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조선여자교육회는 순회강연시 모은 기금을 가지고 건물을 살 수 있었고 야학에만 그치지 않고, 주학을 병설하여 "근화학원"이라는 학원을 설립했다. 이것이 덕성여자중고등학교의 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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