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조선여자 기독교 절제회
1874년 미국의 미세스 프랜시 윌라드가 클리벌랜 시에서 금주운동을 일으킨 이래 영국에서는 1876년에 미세스 헨리 써머레스트의 주도하에 영국여자 기독교 절제회가 조직되었고 이것이 전세계적으로 불이 붙게 되어 세계 70여개국의 절제회가 가맹한 세계 절제회 본부가 창설되어 영국 런던에 자리잡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절제회가 조직된 것은 1923년 9월이다. 즉 1923년 봄 세계 본부로부터 미스 팅링이 내한하여 6개월간이나 체류하면서 각 학교를 위시하여 두루 다니며 계몽강연을 하여 각성을 촉진시킨 후 그 해 9월 감리교 여자신학교에서 교장 채부인의 협력을 얻어 '조선여자 기독교 절제회'를 발족하고 회장 박인덕,총무 정마리아를 선임하였다.128)
한국에 전파된 기독교는 신자의 개인윤리로서 애초부터 금주 금연을 상당히 강조하였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의 가장 중요한 태도는 술장사를 그만두는 것,술을 끊는 것,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었다. 이는 한국에 들어온개신교 선교사들의 일관된 태도였고 그 절대적 영향하에 있던 한국 긷고교인들의 신앙유형이 되어 버렸다. 이렇나 금주 금연의 기독교적 신앙유형은 그 당시,즉 1920년대 실력양성 운동의 일환으로서 실시된 소위 물산장려운동과 궤를 같이 하였다.
즉 "교육열의 발흥과 함께 산업의 발달을 기하고 자작자급을 목적으로 하는 소위 물산장려운동은 1920년 당시 인도에서 제1차 반영동맹 때 간디가 제창한 인도 토산의 장려, 영국상품의 사용페지 등에 자극되어 일시적으로 자못 왕성해졌다. 그래서 금주,금연,민력함양이라는 이름하에 왕성하게 선전을 했다."129) 고 한다. 따라서 세계절제회 본부에 의해 조직된 조선 절제회는 우리 사회 안에서 내적인 문제를 가지고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1929년부터 1938년까지 절제회 총무를 했던 기화덕 씨는 그 활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절제회 운동은 첫째 금주,금연 운동이었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부터 금주,금연이 한국 교회의 교과적 사항으로 정해져 신자들은 물론 금주 금연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햇으나 이 절제회 운동은 신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술,담배를 금하는 운동이었다... 절제회 사업의 중요한 부분의 하나는 물산장려 운동이었다.. 즉 우리 손으로 많은 물건을 만들어내고 그 물건을 우리가 아껴쓰고 애용하자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이야말로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길이다. 나라의 독립을 가져 오는 바탕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130)
절제회는 초기에는 순회 총무를 두고 선전조직에 힘을 썼다. 제2대 총무 손메례는 290고을에 절제자회를 세우고 전국에서 74회의 대강연회를 개최하였다 131)고 한다.
제3대 기효덕 총무는 그 운동방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각 교회마다 절제회를 조직하고 금주서약,금연서약을 빌기도 하고 연합회에서는 각 지방의 요청을 받아 강연을 하고 도회지에서는 선전 행진을 계획하여 약대를 동원하엿으며 어떤 때는 천여명이 행진을 하기도 했다... 또 계몽 비라 포스터 등을 만들어 각 곳에 살포하거나 부치고 금주가를 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보급하며 부르게 하였다."132)
이 절제회 활동은 호응을 받았다. 예를 들면 [기독신보]1924년 12월 24일자에는 손메례 총무의 활동보고서가 실려 있는데, 평북 선천읍 교회당 앞 술집은 강연회에 참석코 감동을 ㅂ다아 술장사를 그만 두었고 25명의 신자가 금연하기로 하였으며 황해도 재령읍에서는 강연시 경관 5인이 입석하였다가 그중 한 경관이 금주하기로 결심하고 진실한 신자가 되었으며 전북 전주에서는 아편이 유행하여 부인들이 일할 때 어린아이에게 아편주사를 하여 잠을 들게 하고 일을 했는데 강연을 듣고 이 일은 금지하기로 하였다고 한다.133)
이렇게 하여 1926년도에 이르면 각처의 지회수가 26처이고 여자회원이 3,000여명이 이르게 되었다.134)
그러나 그 당시 조선의 가장 절실한 문제가 술,담배를 끊거나, 물건을 아껴쓰는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여유있는 사람들보다는 술,담배를 더 많이 한다. 오늘날 빈민지대의 여성들 역시 가난하기도 하지만 그나마 있는 돈을 술 먹느라 다 써버리고 매질까지 하는 남성들의 횡포에 대해서 호소를 한다.135)
그러나 가난한 상황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술을 많이 마셔서 가난해진 것이 아니라 가난해서,아무리 일해도 살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시는 것이다. 즉 한 일본인이 쓴 조선농촌의 문제를 보면 다음과 같다.
"가난에 찌들리고 있는 농촌을 볼 때 약 80%가 소작농에 속해 있다. 그들은 지난날 오랜동안의 잘못된 정치 때문에 지금 마음은 거칠어지고 가위 취생몽사,아무런 분발심도 없고 감격성도 없고 희생도,이상도 의욕도 없고 그날 벌어 그날 산다는 나쁜 버릇에 젖고 있으며, 해마다 식량부족을 호소하고 고리부채는 해마다 늘어날 뿐이며, 추수때가 되면 빚장이들이 몰려와 다 뜯어가는 판으로 춘궁기가 되면 초근목피로 연명하는,실로 비참한 상태이다. 이러한 층의 수효는 농가의 농사가 흉년,풍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나 총 농가의 약 48%에 달하는 실정이다."136))
따라서 사태의 원인,결과를 전도한 절제회의 문제해결방식은 일시적인 효과를 거두었는지는 몰라도 가난한 여성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 도움은 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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