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이한규목사

믿음이 주는 5대 자유(1)

Joyfule 2015. 6. 1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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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31) 믿음이 주는 5대 자유(1) (시편 23편 1-6절)

1. 욕망으로부터 자유

 다윗은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절).”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어려움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믿어도 여전히 어려움을 당하지만 하나님이 내 목자이기에 어려움이 있어도 만족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만족이 없고 마음이 공허하고 불안하고 외롭고 좌절감이 있다면 그 이유는 환경 탓이나 다른 어떤 사람 탓이 아니라 하나님을 내 목자로 모시지 않은 탓입니다.

 하나님을 내 목자로 모시면 깊은 만족감이 생기고 그때부터 온도계(thermometer)처럼 환경에 조절되지 않고 온도조절장치(thermostat)처럼 환경을 조절하는 대 자유인의 삶이 펼쳐집니다. 그 자유가 행복의 최대 요인입니다. 군인이 제대할 때의 자유와 행복감을 어떻게 잊습니까? 어떤 목사님이 청년 때 데모해서 감옥에 갔다가 다행히 3일 만에 풀려났습니다. 3일 만에 풀려나도 찐빵을 사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격했다고 합니다.

 참 자유를 체험하면 어제의 하늘과 오늘의 하늘이 달리 보입니다. 나무 한 그루도 달라 보이고 삶 자체가 감격이 됩니다. 예배 후에 돌아갈 때 주위를 한번 죽 둘러보고 환경이 새롭게 보이는 자유자의 체험을 해보십시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자유를 경험하지 못하고 욕망에 매여 살면서 두려움과 낙심 가운데 삽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면 욕망으로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2. 방황으로부터 자유

 하나님이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면(2절) 인생의 방황도 끝납니다. 사람들은 자주 결심합니다. “이번에는 남을 마음 아프게 하지 말고 참자!” 그런데 어느새 입에서 상처 주는 말이 나옵니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참된 자유를 얻지 못합니다. 참된 자유란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는 능력입니다. 그런 능력이 없다면 아직 자유한 것이 아닙니다. 참된 자유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자원을 힘입어서 꿈과 비전을 향해 꾸준히 꿋꿋하게 걷는 삶입니다.

 새는 하늘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고 물고기는 물속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물고기가 땅에서 맘껏 놀겠다는 욕망을 가지고 물을 떠나면 그 욕망은 자유가 아닌 죽음을 줍니다. 기차는 철로 위에서만 자유롭게 되듯이 사람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만 자유롭게 되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 15:5).”

 왜 주님을 떠나면 아무 것도 못합니까? 언뜻 보면 하나님이 없이도 잘 지낼 수 있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이 결정하고 하나님이 없이 걷는 삶은 차라리 낭비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삼고 나를 드리면 하나님이 내 삶을 쥐시고 내 삶을 그분의 뜻대로 인도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뜻과 사명에 순종하고 나갈 때 인생의 방황을 끝내고 참된 자유와 만족과 행복을 얻습니다.

3. 매임으로부터 자유

 하나님이 우리를 푸른 풀밭에 누이신다는 말은 성도가 평화롭게 노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믿음에는 구도자적인 삶도 있지만 그런 삶보다 더욱 믿음에 가까운 삶은 하나님의 품에서 즐겁게 노는 삶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며 놀 줄 아는 사람에게 작품인생이 나옵니다. 작품과 상품은 다릅니다. 상품은 대량생산이 가능하지만 작품은 하나입니다. 살면서 자신을 상품화하지 말고 작품화하십시오.

 ‘눈뜨고 보이는 사람’보다 ‘눈감고 보이는 사람’이 진짜입니다. 엄청난 돈을 써서 교단 총회장이 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주기철 목사님이나 손양원 목사님에 비하면 다 허수일 뿐입니다. 장로가 되지 못했다고 시험 들어서 교회에 마음이 멀어지면 ‘눈뜨고 보이는 사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사실 장로 선거에서 떨어졌을 때 감사하는 사람이 진짜 장로감으로 오히려 나중에 훌륭한 장로가 됩니다.

 요새 목회자 세미나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세미나는 샘이 나게 해서 세미나다!”란 조롱까지 합니다. 그런 세미나에 가면 목회를 상품화시키는 원리를 배우지만 중요한 것은 목회를 작품화시키는 것입니다. 다 순복음교회나 영락교회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작품은 유니크(unique)한 것입니다. 돌아가신 법정스님은 감투는 없어도 조계종의 감투 쓴 많은 높은 스님들보다 더 높이 평가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을 작품화시키십시오. 물량으로 크면 그 흔적은 금방 사라지지만 자신을 작품화하면 오래 그 흔적이 남습니다. 어떻게 삶을 작품화시킵니까? 하나님과 놀 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주종관계’보다 더 깊은 ‘부자관계’로 들어가고 부자관계보다 더 깊은 ‘부부관계로’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신부로서 주님과 한 몸의 단계로 들어가 어우러져 놀며 작품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 최고의 행복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