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과 사두개인.
1. 바리새인(파리사이온 Φαρισαῖος)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바리새파는 사두개파와 함께 마카비 독립 운동시대 초기(B.C. 167)에서 대제사장 요나단(B.C. 159-143)치하 사이에 기원(起源)된 경건주의자들로 보여지며, '바리새'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나타난 것은 요한 힐카너스 당시(B.C. 135-105)로 보인다(에세네파와 같은 그룹들은 안티오커스 IV 에피파네스에 반대한 반헬라주의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 이름은 히브리어 '파라쉬(פּרשׁ)'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구별하다'란 의미를 가진다. 즉 바리새인은 '성별된 자'로서 율법과 구전(口傳)된 조상들의 모든 전통을 엄격히 지키고 영혼 불멸, 부활과 내세, 천사의 존재 등을 신앙하며 배타성이 강한 일단의 무리들을 가리킨다(행 23:8). 그러나 그들의 분리주의는 율법의 순수한 정신과 내면적 경건을 무시하고 형식주의적인 위선과 의모를 중시하는 외식주의로 전락하여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었다(눅 11:43,44;12:1).
그렇다고해서 그들의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신앙으로 인하여 편견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기만 해서도 안 된다. 그들의 본래의 모습은 율법의 수호자(守護者)로 자처할 만큼 율법 준수에 철저했고 의로운 이스라엘을 고대하며, 장차 도래할 메시야 왕국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이 요한에게 온 것은 메시야에 대한 그들의 지대한 관심을 겉으로 나타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즉, 그들은 회개의 메시지가 선포되는 현장에 회개에는 유념치않고 외식의 옷만을 걸치고 거만하게 나타난 것이다.
요세푸스(Josephus)에 따르면 대헤롯이 죽을 때 바리새인들은 6천명 이상이나 되었다 한다.
•바리새인에 대한 성경의 평가
1) 독사의 자식
바리새인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독사의 자식'이다.
요한은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독사들을 보며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간교한 뱀을 연상하였을 것이다. 현대처럼 저속한 욕설이없던 시대에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였던 그들에게 저주받은 뱀(창 3:14)의 후예라고 욕한 것은 위선과 변절, 기만 등으로 길들여진 그들을 향한 신적 권위에 의거한 화(禍)의 선포였다. 예수께서도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향해 같은 책망을 하신 적이 있다(23:33). 이 욕설은 '아브라함의 자손'(9절)으로 자랑하던 그들에게 사단의 도구인 뱀의 후예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사악한 실체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2) 이미 상을 다 받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보다는 사람들의 눈을 더 염려했으며, 또 그들에게서 이미 위대하며 경건하다는 칭찬을 상(賞)으로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사람의 행위 전체를 바라보고 계셨던 하나님께는 받을 상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상을 받은 자들로서 천국에서 받을 상이 없다.
*외식자들은 관례에 따라기도 시간(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에 맞추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 장소에 나아가 수려하고 장엄한 언어로 기도한 것 같다. 그렇게해서 사람들의 영광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여지(margin)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인정보다 사람의 칭찬에 더 관심있는사람, 곧 경건보다 경건으로 인한 명성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 사적인 기도는 무시한채 공적인 기도만을 추구한 그들은 종교꾼이요 위선자였다. 이러한 외식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다음에 이어지는 '골방 기도'이다.
2. 사두개인(사두카이온 Σαδδουκαῖος)
이 명칭의 기원에 대하여는 (1) 알렉산더 대왕 당시의(B.C. 323) 사독이란 사람에게서 유래하였다 (2) 히브리어로'체디크(צדּיק)', 헬라어로 '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η)', 즉 '의'라는 말에서 근거하였다(Epiphanius)는 견해가 있으나 유대의 전승에 따르면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제사장 사독(왕상 1:38)이란 인물에게서 기원하였다(Thayer, Carr)고 한다. 이들 중 후자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것 같다.
사독은 다윗 시대에 있었던 대제사장 가운데 한 명이었다(참조, 삼하 8:17; 15:24). 후에 솔로몬은 아비아달이 아도니야의 반역을 도운 것을 인해(참조, 왕상 2:26-27)그를 쫓아내고 사독을 유일한 대제사장으로 인정했다(참조, 왕상 2:35).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이 제사장의 계보는 여호수아의 것으로 재확립되었다(참조, 학 1:1). 레위족속은 성전에서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선택을 받았다. 후에 이러한 제사장의 가계와 그들의 지지자들은 사독 가족 혹은 사두개인으로 불렸다.
이들은 민족주의자들로서 바리새파, 엣세네파와 함께 유대의 3대 종파의 하나이며 바리새인들과는 적대적인 파당이었다. 또한 그들은 바리새파보다 숫적로 열세였지만 정치, 경제적으로 상당한 위치에 있었고 특히 교육의 혜택을 많이 받은 합리주의자들이었으며 제사장급의 고위층이었다.
그들은 모세 오경 이외에는 모든 전승을 부인하였고, 내세도, 부활도, 천사도, 심지어 하나님의 섭리도 믿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유전(遺傳)의 위험은 피하였지만, 무익한 세상적인 열심과 인간의 이성에 절대적 기준을 두는 오류(mistake)에 빠져 들어갔다.
• 사두개인의 독특한 신앙
가. 그들은 하스모니아와 로마의 통치 기간에 살았던 유대인 가운데 보수적인 제사장으로 이루어진 분파였다.
나. 그들은 특별히 성전의 예배, 의전, 의식, 예배등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다. 그들은 기록된 토라(즉, 창세기-신명기)의 권위를 받아들인 반면 구전(즉, 탈무드)을 배격했다.
라. 그들은 따라서 바리새인들이 소중히 여기며 발전시킨 여러 교리들을 거부했다.
1. 몸의 부활(참조, 마 22:23; 막 12:18; 눅 20:27; 행 4:1-2; 23:8)
2. 영혼의 불멸성(참조, 유대 고대사 18.1.3-4; 전쟁 2.8.14)
3. 천사의 세분화된 계급의 존재(참조, 행 23:8)
4. 그들은 “눈에는 눈”(즉, 렠스 탈리오니스)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였고 육체적 형벌과 사형제도(벌금형 대신에)를 지지했다.
마. 신학적 논란을 가져온 또 다른 영역은 예정 대 자유의지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요세푸스가 언급한 세
그룹의 사람들인
1. 에센파는 일종의 결정론을 받아들였다.
2. 사두개인들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강조점을 두었다(참조, 유대 고대사 13.5.9; 전쟁 2.8.14).
3. 바리새인들은 앞의 두 견해의 중간 입장을 취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갈등
어떤 면에서 이 두 그룹(즉, 사두개인 – 바리새인)의 갈등은 구약에서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갈등을 보여준다.
또 다른 종류의 갈등은 사두개인들이 사회적으로 지위를 갖고 땅을 소유한 자들을 대표한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들은 귀족들이었지만(참조, 요세푸스의유대 고대사 13.10.6; 18.1.4-5; 20.9.1),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학자였고 일반 백성 가운데 경건한 자들이었다. 이러한 긴장은 예루살렘 대 전역에 있는 각 지역의 회당으로 대별되었다.
또 다른 갈등은 바리새인들의 신학에 영향을 미쳤던 조로아스터교를 사두개인들이 거부한 사실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그러한 신학의 예로서는 정교하게 발전된 천사론, 사후세계를 강력하게 육체적인 용어로 이해한 점을 들 수 있다. 에센파와 바리새인들에게서 볼수 있는 이러한 과도한 견해는 사두개인들의 반대를 야기했다. 사두개인들은 다른 유대 종파의 사람들의 견해를 좌절시키기 위해 오직 모세의 글에 나타난 신학만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
실로 이 두파는 종교적 목적에서는 상호 적대적이었지만 예수를 정치적으로 대적하는 목적에서는 연합하였다(16:1;22:23, 34;행 4:1).
마 16: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참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이름이 사독에게서 왔다고 보는데 다음과 같은 유래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가. 주후 9 세기의 랍비적 전통(랍비 나단의아봇)은 사독이 소코(주전 2 세기)의 안티고누스의 제자였다고 말한다. 사독은 “죽음 이후의 상”과 관련하여 자기 스승이 한 유명한 말을 오해하여 사후의 세계를
부인하는 신학을 정립했다. 따라서 그들은 몸의 부활도 부인했다.
나. 후기 유대교에서 사두개인들은 뵈수시안으로 불린다. 뵈수스 역시 소코의 안티고누스의 한 제자였다. 그는 사독과 비슷한 신학을 발전시켰고, 그도 사후의 삶을 부인했다.
다. 사두개인이라는 명칭은 요한 힐카누스(주전 135-104 년)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사용되었는데, 이 기록을 요세푸스가 전하고 있다(참조, 유대 고대사 13:10:5-6). 유대 고대사 13:5:9 에서 요세푸스는 “세 학파”인 바리새인, 사두개인, 에센파가 있었다고 말한다.
라. 한편 안티오쿠스 IV 에피파네스(주전 175-163 년) 때에 셀루시드 통치자들이 제사장들을 헬라화
시키려는 시기에 이들이 출현했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설이 있다. 마카비 반란기 동안 새 제사장제도가
시몬 마카비(주전 142-135 년)와 그의 자손(참조, 마카비상 14:41)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 하스모니안 계열의 새 대제사장들은 귀족정치적인 사두개인들의 시작이 되었을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같은 시기에 하시딤(즉, “분리된 자들,” 참조, 마카비상 2:42; 7:5-23)에서 발전되었다.
마. 오늘날에 제기된 이론(즉, T. W. 맨손)에 의하면 사두개인들은 헬라어 용어인 쉰디코이의 철자에서 왔다.
이 용어는 로마의 권력과 결부한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이 설은 왜 어떤 사두개인들은 귀족정치적
제사장이 아니었지만 산헤드린의 구성원이 되었는가를 설명할 수 있다. 사두개인들이 남긴 글로써 남아 있는 것은 없다. 주후 770 년에 일어난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로 인해 제사장들의 모든 서류나 자료가 파괴되었다. 그들은 지역적인 안정을 추구했는데, 1 세기의 환경에서 이것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로마에 협력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참조, 요 11: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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