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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스 국회에서의 루터

Joyfule 2008. 4. 13. 00:48

 

 

보름스시. 폭이 넓은 라인강을 뒤로 하늘을 찌를듯이 서 있는 망루들이 보인다.

황의 파면에도 불구하고 프레데릭 현자를 선두로 독일의 영주들은 보름스 국회에서 루터가 자신을 위해 변호할 기회를 얻도록 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카를5세 황제는 루터에게 신변의 안정 보장을 약속하면서 루터에게 1521년 3월 6일, 초청장을 보내었다.

 

제의 안전 보장은 믿을 바가 못되었다. 선제후의 궁전에서도 의견은 분분하였다. 결국 갈 것인지 말 것인지는 루터가 선택할 몫이었다.

 

루터는 단호한 마음을 가지고서 보름스로 갔다. “우리는 보름스에 입성할 것이다. 지옥의 모든 문들과 하늘의 모든 권세들이 막으려고 할지라도 … 거기서 우리의 사명은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다.” 슈팔라틴도 그의 결연한 모습을 감지했다.“그는 보름스로 가려고 한다. 그곳의 지붕위에 있는 기왓장의 수만큼이나 마귀들이 있을지라도…

 

.”름스에 1521년 4월 16일 도착한 루터는다음 날 첫 번 청문회에 참석하였다. 트리에르 대주교의 고문관은 루터에게 두 가지 질문에 답하도록 물었다.

 

1. 그대의 이름으로 출판된 이 책들을 그대의 것으로 인정하는가?

 

2. 그대는 이 책들에서 쓴 내용을 철회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첫 번 질문에 루터는 자신의 책들이라 시인하고 자신이 쓴 책들이 더 있다고 대답했다. 두번째 질문에 루터는 하루의 여유를 구했다.

 

보름스로 들어가고 있는 루터. 1881년 작품. 이 당시 보름스의 인구는 약 7,000명 정도였는데 1521년 1월 이후에는 국회를 구경하려는 방문객들의 숫자가 도시 인구의 배에 육박했다.

 

황제 앞에서의 말틴 루터. 국회가 끝난후 불과 몇달 안되어서 보름스에서의 루터의 답변과 국회의 진행과정을 담은 소책자가 인쇄되어 퍼졌다. 표제면의 목판화가 국회의 장면을 묘사하는 것은 진기한 일로 당시에는 당대의 사건을 묘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