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의 개념.
■ 바울 신학의 복 개념의 연구
1.갈3:6-14에서의 하나님의 복
6절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에 있어서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아라’로 번역해야 옳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아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의로 정한바(계산했다, 여겼다) 되었다”. 믿음과 의는 전혀다른 질이다. 믿음을 가지고 가면 의로 여겨준다는 법칙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믿음으로 의로 여길 수 없는데 하나님의 절대은혜로 그런 법칙을 만들어 주신 것이다.
7절 ‘그런즉’은 6절의 논리 해석이다. ‘아브라함의 아들’ 여기서 바울은 지금 누가 아브라함의 아들인가가 당시 주제이기 때문에 바울은 빗대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8절은 6절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라는 말이다. 이 구절은 창세기 12:3절의 말씀의 말을 생각나게 한다. 복음이 먼저 아브라함에게 전해진 것을 말한다. 15:6=12:3은 같은 말이다. 결국 의가 복이다. 복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가 된다.
9절에 ‘그러므로’라는 말은 위의 말이 확장됨을 말하고 있다.
10절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과 저주 아래 있는 사람을 말하고 있다. 고난자체가 저주가 아니다. 신명기 28장의 저주를 우리가 다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저주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저주를 받지 않게 된 것이다.
12절은 율법을 지키려한 것이 저주가 되었고 다 지키지 못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법 자체는 선하나 내가 지킬 능력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이다.
13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저주를 받으시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셨다.
14절은 성령의 약속을 하셨다. 성령을 받는 다는 말은 아브라함에게 속한 복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를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2. 롬15:29에서의 하나님의 복
로마서의 저작 동기는 1960~70년대에는 이신칭의(二身稱義)라고 보았다. 그런데 왜? 그런이야기를 했는가? 그것은 초대교회 시대인들은 복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바울은 바울 로마서를 섰는가에 대해서 최근 학자들은 공동체(행 18:2)에서 글라오디오가 모든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로마에서 쫏아냈다.
로마 그리스도인 중에는 로마인, 이방인,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는데 유대 그리스도인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그런데 글라오디오가 유대 기독교인들을 쫏나냄으로서 이방 그리스도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유대 그리스도인이 돌아오게 될 때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유대 그리스도인이 싸움을 하게 되었다. 바울에게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를 쓰게 되었다.
29절은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로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그리스도의 충만 fullness’는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사람이 절대로 충만시킬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을 충만하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음은 즉 복음 선포는 복음 선포를 통하여 부족함이 없게 만드는 복이다. 그리스도의 부족함 없는 상타로 만드는 것이 복음 선포이다.
롬1:11-15는 신령한 은사-일반은사(그리스도인을 견고케 하게 하려고)를 준다고 한다. 복음은 15절 또 전하는 것은 영적 성숙을 가져다 주고 또 서로싸우는 로마 그리스도인에게 견고케 하려고 하려고 했는데 그렇지 못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 그리스도인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주어 견고케 하려고 했다. 로마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알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했다. 그들은 알기는 알되 행하지 못한 것이다.
롬1장과 15장은 서론과 결론이다. 롬16:25-26은 복음으로 견고케 되는 것이다. 롬15:14-15는 법안에서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오직 복음안에서의 능력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엡1:3-14에서의 하나님의 복
‘찬송하라’라는 말로 에베소서는 되어있다. 현대신학자들은(WBC주석자) 에베소서의 구조를 3 < 4 < 5,6 < 7,8 < 9,10 < 11,12 < 13,14절의 증강되는 구조라고 보고 있다. 신령한 복(영적인 복)은 하늘에 속하였다. 즉 따에 있는 복을 초월한다. 영적인 복(spiritual blessing)은 갈라디아서의 성취의 의미이다. 엡1:3절 spiritual blessing는 영적인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하늘-구원적 복 < F.F Bruce는 에베소서 1장에서 예정을 연구할 부분이 아니라 믿어야 될 감사시중에서 나오기 때문에 예정을 운운하면 곤란하다고 했다.
인간의 존재는 역사 추론이 아니라 창세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택한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리드도 안에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에 전적 은혜이다. 왜? 우리를 사랑 안에서 그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고(주님의 목표) < 5,6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Relationship이 되었다는 것이다.(구약과 연결되어) 그의(J,X)안에서 거져 주시는 바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함이라
< 7,8절은 그의 피로 죄 속함을 받음(구속). 은혜로 (내가 예수님을 죽였지만 오히려 죄사해 주신 것은 은혜이고 바울이 말하는 복이다). 예수님께 속한 지혜=십자가→세상 사람들들은 미련하게 본다. 그러나 그것이 능력이고 지혜이다. 통일→화합→우리가 통일되기를 복을 통해 이루어지길 하나님은 소망하고 계신다. < 11,12절은 우리의 기업 → 내가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다. < 13,14절 성령 자체가 나에게 보증이 되신다. 성령이 오셔서 나를 인찍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나의 안에 들어와 성령 자체가 나를 보증하신다. 보증한단 이야기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으나(Already) 아직(Not yet)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갈라디아서는 Relationship의 성취를 말하고 있다. 에베소서는 Relationship성취를 확대해서 창조전부터 예정 → 미래까지 이어지고 하나님의 가족, 하나니므이 소유물이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구속 풍요성이 자꾸 없어지니까 돈이나 물질이나 다른 무엇인가를 찾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구속으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을 주시고 하나니믜 아들로서의 하나님과의 Relationship이 이루어진 것 이것이 가장 큰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