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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한 자를 멀리함으로 얻는 안전.4

Joyfule 2021. 5. 19. 03:13


 

 

  

     분노한 자를 멀리함으로 얻는 안전.4

 

 

분노와 자기절제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 19:11).

분노를 이기는 해결책은 인내와 절제와 신중성을 고양시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러한 특성들을 발전시켜 나가기를 힘씁니다. 그는 자신을 모욕하는 자에게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받은 모욕을 할 수 있는 한 가볍게 넘기려고 애씁니다. 비록 어떤 사람으로부터 무슨 불쾌한 일을 당하더라도 그는 그러한 모욕이나 반대나 도전을 단순한 일로 넘겨버리기 위하여 인내와 절제를 동원하여 할 수 있는 한 합당하게 대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비하는 자의 분노가 경건한 사람을 분노 가운데로 함께 빠져들어 가게 하지 못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긴박한 상황을 만났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는 놀라운 재능을 주십니다. 상대편이 화를 낼 때 좋은 말로 대응을 하면 그 사람을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쁜 말이나 혹은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어떤 그릇된 태도의 말은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 하며,소금으로 간을 쳐 맛을 내듯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어떻게 합당한 말을 할 줄을 알리라."(골 4:6)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 14: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지혜로운 자와 충동을 억제 하지 못하는 자 간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충동적인 사람(impulsive people)은 그의 머리나 혹은 지각을 사용하지 않으며 대개 즉흥적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본성적인 근성(raw emotion)을 있는 그대로 나타냅니다. 누군가가 그를 모욕하면 즉각적으로 분노로 대응하며 목청을 높여 싸우려 들거나 때로는 주먹이나 발길질 같은 육체적 행동까지 거침없이 들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매년 50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이와 같은 범죄 사건으로 말미암아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보내진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그의 기질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영화 같은 흥행물에서는 민첩한 주먹을 휘두르는 자도, 총을 잽싸게 다루는 자를 영웅처럼 묘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상대방을 신속하게 제압하기 위하여 상대방에게 욕설이나 위협 등을 격렬하게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 그것을 멋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와 아주 반대입니다. 즉흥적인 폭력이나 공격적 행동을 절제하지 못하는 자들보다 자기 자신의 마음과 정신을 다스리는 자를 하나님은 칭찬하고 있습니다. 앞에 인용된 잠언 구절은 실제로 그의 갑정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전쟁에서 성을 정복하고 승리한 용사보다 더 훌륭한 영웅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존귀히 여기는 사람은 자기 절제(self-control)로 말미암아 그의 마음과 영혼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잠 29:11).

안정된 사람이 되려면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야 한다고 하는 그릇된 이론을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마음에 분노나 격한 감정이 일어날 때 이를 외부로 드러내지 않고 자기 안에 이를 품고 참는다면 결국 나중에 쌓였던 그 분노가 마치 화산처럼 밖으로 터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와는 정 반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의 분노를 절제하는 법을 먼저 배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분노를 절제하는 자란 자신 안에 있는 분노를 부인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기만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그와 같은 감정이 있는 것을 자신에게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도 인정해야 합니다. 시편 안에서 보면, 다윗은 그의 분노를 숨기지 않은 사람이었으나 다른 사람에게 결코 해를 입히지 않고 매우 절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은 그의 원수 사울이 그가 숨어있는 동굴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을 때, 한 신하로부터 이 순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그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는 절호의 기회라며 그를 해치워 버리라는 권유를 듣습니다. 다윗인들 기회가 왔을 때 왜 원수를 갚을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그렇지만 다윗은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다만 사울의 옷자락 끝을 칼로 베는 것만으로도 괴로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사울 왕 앞에 자신이 결코 목전에 있는 원수를 해하려는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줌으로 사울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습니다. 또한 그는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신하는 길에서 사울의 신복 시므이의 끈질긴 저주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인내하며 참는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절제의 인물이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삼하 16:5-13). 실로 다윗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실 때 그는 모욕과 조롱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셨다고 베드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벧전 2:22-24). 모세도 그랬고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로 그랬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도 역시 그래야만 할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잠 21:14).

자기 절제를 잃은 분노한 사람에게 우리는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할까요? 때때로 선물이나 혹은 뇌물(bribe는 종종 present로 번역됨)은 화해(peace)를 이루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 중에서 좋은 실례 가운데 그하나는 야곱이 그의 형 에서에게 한 행동입니다. 야곱은 그의 형 에서와 진정한 화해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는지는 몰라도 그의 선물로 말미암아 형 에서의 분노를 가라앉히기를 원하였습니다(창 32:33).

"분을 쉬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 15:18).

분을 참지 못하는 자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다툼이나 분란이 일어나며 결국 어떤 일이 벌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인내하는 자는 어떻게 하든 싸움을 그치게 하는 방법을 체득한 사람입니다. 그는 때때로 자칫 싸움판이 진짜로 벌어질 상황에 이를 때면 그 가운데 직접 개입하여 상황을 적극적으로 중재시킴으로 화해를 가져올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합니다.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잠12:16).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짜증이나 불쾌감을 그의 얼굴에 즉각적으로 나타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들이 방안에서 이야기할 때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는 피해과다망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화를 낼만한 일을 당해도 동요하지 않고 그런 일을 너그러이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론

지혜로운 사람은 분노를 잘 피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잘 배운 사람입니다. 그들은 부정적인 상황에 빠져들어 자신으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분노로 인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인내심을 배워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내(patience)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롬 15:5). 욥은 경건한 인내의 사람(약 5:10-11)의 본보기였습니다.

인내(patience 시련이나 고통을 꿋꿋이 참아가는 능력)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당하는 고통이나 환란을 통하여 우리 안에 쌓아가도록 하신 그리스도인들의 품성(character)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있는 여러 어려운 상황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인내의 역사를 온전히 이루어 내실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롬 5:3). 그리하여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부딪치는 여러 어려운 상황들은 결국 남은 여생에서 인내가 온전히 이루어 질 때까지 계속해서 동일한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교훈을 터득하도록 해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