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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우원 <백흑난>

Joyfule 2013. 1. 3. 18:39

 

 

홍우원 <백흑난>

 

백白과 흑黑의 대화

 

홍우원(洪宇遠, 1605~1687) 씀

김동곤(울산제일고 교사) 옮김

 

백이 흑에게 물었다.

“너는 어찌하여 그렇게 검은가? 그러면서도 씻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나는 희고 깨끗하니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마라. 내가 더럽혀질까 겁난다.”

그러자 흑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를 더럽힐까 겁나는가? 너는 스스로 희고 깨끗하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너는 썩은 흙보다 훨씬 더 더럽다.”

백이 성을 내며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나를 썩은 흙처럼 더럽게 여기느냐? 나는 장강이나 한수로 씻은 것보다 깨끗하고 또 가을볕에 쬔 것보다 희다. 검은 물감도 나를 물들일 수 없고, 더러운 먼지도 나를 흐릴 수 없다. 세상에 나만큼 맑고 깨끗한 것이 없는데도 너는 어찌하여 나를 썩은 흙처럼 더럽게 여기느냐?”

흑이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말고 내 말을 들어 보아라. 지금 너는 스스로 깨끗하다고 하면서 나를 더럽다 하는구나. 그렇지만 내가 볼 때, 나는 깨끗하고 너를 더럽다. 그렇다면 과연 너는 깨끗하고 나는 더러운 것인가, 아니면 내가 깨끗하고 네가 더러운 것인가? 이것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주장하면 너는 저렇게 주장할 것이고, 내가 저렇게 주장하면 너는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그러니 너와 내가 다툰들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들려주마. 지금 세상에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느냐? 아무도 없다. 그럼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느냐? 아무도 없다. 왜 그런지 아느냐? 사람이 젊을 적에 머리털과 살쩍이 검고 젊음과 아름다운 얼굴을 간직한 것도 모두 나 때문이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모르는 사이에 예전의 검은 머리털과 살쩍이 희끗희끗하게 세 버리니, 어찌 사람들이 젊음과 아름다운 얼굴을 간직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놀라며 거울을 보고는 족집게로 흰 머리털을 뽑아 버린다.

 

아아! 슬프다. 사람들은 내가 머무르지 않은 것을 한스러워하고, 네가 떠나지 않는 것을 괴로워한다. 사람들은 희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미워한다. 너는 사람들을 아름답게 하지 못하고 않고 도리어 걸림돌이 된다. 그러니 세상에 너의 깨끗함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무릇 밝음을 숨기고 사람들과 뒤섞여 어울리는 것이 세상에 받아들여지는 길이다. 나는 지나치게 깨끗하고 밝으면서 세상에 서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백이는 깨끗해서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고, 굴원도 깨끗하여 멱라수에 빠져 죽었다. 조맹은 신분이 높고 계씨는 재산이 많아, 사치스럽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인생을 즐겼다. 이들 가운데 누가 낫고 누가 고달팠는가? 또 누가 성공하고 누가 실패했는가?

 

슬프다! 굴원과 백이의 죽음은 오로지 네가 만든 재앙 때문이다. 그리고 계씨와 조맹의 빛나는 부귀공명은 내가 이루어 준 것이다. 지금 너는 시대 흐름을 좇지 않고 굳게 지조를 지켜 자신을 고상하다 하고, 기운이 맑고 깨끗하다 하여 자신을 뛰어나다 하고 있다. 더러운 진흙탕에서 벗어나 깨끗한 자기의 몸으로 더러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세상의 더러운 먼지를 뒤집어쓰지 않는다. 돈이나 값진 물건은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것이지만, 너는 쓸모없고 하찮은 것으로 여긴다. 또 천 대의 수레와 만 섬의 곡식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지만, 너는 뜬구름과 같이 덧없이 여긴다. 사람들을 배고픔과 추위에 떨게 하고 고생시키며 힘들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가난하여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아아! 덧없는 우리 인생은 짧고 더구나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 그러니 미쳐서 정신을 잃고 마음이 어지러워 세상을 등진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너를 쫓아 사서 고생하겠는가?

 

나는 도리에 어둡고 마음이 흐려 티끌과 함께하고, 세상일에 어두워 먼지를 머금는다. 밝게 빛나지도 않고 갈고 닦지도 않는다. 재물과 보배가 있다면, 높은 벼슬이나 부귀를 누린다. 만약 얻을 수 있다면 구하여 사양하지 않고, 가질 수 있다면 받아 거절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좋은 비단옷을 입으면 따뜻하다고 하고, 많은 음식을 차려 놓으면 가득하다고 한다.

무릇 자기 몸과 집을 이롭게 하는 사람은 마음에 따라 뜻을 시원하게 하니 세상에 이로움이 어떠한가? 때문에 온 세상이 휩쓸리듯 떠들썩하게 나를 쫓아 모여든다. 간과 쓸개를 쪼개 보이듯 나와 사이가 벌어지지 않고, 심장과 허파를 열어 보이듯 나와 하나가 된다. 가죽신을 끌고 패옥 소리를 내며 황각에 올라 지위가 높은 사람은 모두 나와 매우 친해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금으로 만든 인장을 걸고 자주색 인끈을 매어 재상이 되어 나라의 중요한 언론을 맡은 사람도 모두 나와 금란을 맺은 사이다. 쇠로 살을 댄 관을 쓰고 흰 붓을 늘어뜨려 관리를 감찰하는 사헌부를 맡다가 어사대에 오르는 사람은 모두 나와 정신적으로 사귀는 사람들이다. 대장 깃발을 둘러 세우고 용맹한 군사들이 빙 둘러서 칼과 창을 들고 호위하는 관찰사의 일을 맡아 나라의 기둥이 된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은 당파를 이룬 사람들이다. 좋은 수레에 붉은 가리개와 검은 일산을 하고 한 지방을 맡아 다스리는 수령들은 모두 나의 무리들이다.

 

이들은 모두 의기양양하여, 기개는 우주를 업신여기고 콧숨은 무지개를 불 정도이다. 이들이 일을 할 때는 사람들이 그 일의 잘잘못을 지적하지 못하고, 이들이 말을 할 때는 사람들이 그 말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못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즐겨 놀며 자손들에게까지도 그 즐거움이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네가 쫓아 함께 지내는 사람들을 돌아보아라. 쑥대로 얽은 지붕 아래서 살고 있으며, 산이나 들판 사이에서 시름겨워한다. 네 벽은 거칠고 쓸쓸하며, 한 바가지의 물도 자주 거른다. 옷은 모자라 춥고, 손과 발은 얼어서 터진다. 얼굴은 누렇게 뜨고, 목은 비쩍 말라서 거의 죽을 지경이다.

 

너는 벼슬이 재상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집을 지을 땅도 없다. 또한 지위는 높고 중요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살아서는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하지 못하고, 죽어서는 자식에게 물려줄 재물이 없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너를 막고 돌아보지도 않고 떠나 버리며 혹시라도 마주칠까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여 온 정신을 쏟아 나에게 와서 보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한다.

 

이로 보면, 너는 세상 사람들이 버린 것이고, 나는 세상 사람들이 쫓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버린 것은 하찮은 것이며, 세상 사람들이 좇는 것은 귀한 것이다. 나는 귀한 것이 깨끗한지 하찮은 것이 깨끗한지, 귀한 것이 더러운지 하찮은 것이 더러운지 알지 못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더럽다고 하는 것으로 더러운 흙만 한 것이 없다. 더러운 흙을 보면 사람들은 모두 침을 뱉는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모두 너를 하찮게 여기고 있다. 지나가면서 더럽다고 침을 뱉는 것이 어찌 더러운 흙뿐이겠는가? 너는 앞으로 자기 스스로를 더럽다 하기에도 겨를이 없을 텐데, 어찌 나를 더럽다고 할 겨를이 있겠는가? 너는 가라. 그리고 나를 더럽다고 하지 마라.”

 

이에 백이 멍하니 정신을 잃었다가 오래토록 말이 없었다. 이윽고 백이 말했다.

“아아! 옛날 장의가 소진에게 말하기를, ‘소진이 힘을 쓰는 세상에 내가 무얼 말하겠는가?’ 하였다. 지금은 진실로 너의 세상이니, 내가 감히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러고는 백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