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ㅡ 이상화(李相和)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 답다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 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 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 우습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신령이 집혔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이상화(1901~1943)의 26세 때 작품, 대표작의 하나
'개벽(開闢)'(1926.6)에 발표한 抗日 抵抗詩
이 詩 때문에 日帝는 '開闢'을 판매금지 처분하였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