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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인(幽美人) - 차윤환

Joyfule 2010. 3. 5. 09:27
        유미인(幽美人) - 차윤환 메마름에 굳어가는 뿌리 통증보다 더 슬퍼지면 부풀어올라 만개하는 난(蘭) 능선에 걸린 달빛은 마른 입가로 잔기침 쿨럭이며 제 그림자를 안고 골짜기까지 내려간다. 한 때 벌거숭이의 간곤한 시절에도 벼랑 끝 홀로 서서 속울음으로 피어나면 고요의 누리 그늘 서늘히 젖던 향기 이 밤도 어루만지며, 달빛은 계곡 물소리에 몸 풀어 자정 넘어까지 해찰 하다 마을 등불 하나 둘 스러지면 홀로 적막에 든다. 기척 없는 첫새벽에 그대가 제일 먼저 개울가로 나가보라! 달의 손끝에서 풀린 유미인(幽美人)*의 향취가 지끈거리는 머리 내부를 파고들어 좁쌀만 한 향낭(香囊)을 만들고 들어앉아 먹구름 끼는 날이나, 궂은 날에도 그대 주름진 얼굴에 미소로 번지리라. 윗목 수북한 약봉지들을 다 쓸어가리라. * 심산유곡(深山幽谷)에 홀로 피어 있는 고고한 식물이란 뜻으로 예로부터 난(蘭)을 유미인(幽美人)으로 비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