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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 도월화

Joyfule 2012. 8. 21. 11:20

 

 

사과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 도월화

 
눈 오는 날 밤이다. 창을 조금 열고 밖을 내다본다. 차가운 바람이 살갗에 와 닿는다. 찬바람에서 사과 향기가 스쳐 지나간다. 가로등 불빛 아래 흰 눈으로 덮인 풍경은 크리스마스  카드의 한 장면 같다. 내가 처음 카드를 받은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쯤이다. 방학 때마다 막내고모 자녀인 고종 사촌들과 만났다. 겨울 방학을 맞아 대구시에서 사는 그들이 시골의 할아버지 댁에 놀러 오면서 카드를 가지고 왔다. 나에게 준 카드에는 눈 덮인 산과 내가 있고 지붕 위와 나무 가지에도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 만져보면 까칠까칠하게 은빛가루를 뿌려놓아서 반짝거렸다. 생각해보면 그 장면은 사과밭이 많던 나의 고향 풍경과 흡사하다.
그 들 중에서 나보다 한 살 아래인 고종사촌 여동생 영아와 특히 친하게 지냈다. 영아는 선이 고운 모습에 여린 마음씨를 가졌다.

"너희 둘은 사과 한 쪽도 나눠 먹겠구나."
어른들은 말씀 하시곤 했다.

사과 한 쪽, 콩 하나도 나눠 먹겠다는 사이좋은 우리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우리는 큰 고모를 무척 따랐다. 영아에게는 큰 이모가 된다. 밤에는 큰 고모를 가운데 두고 양 옆에서 잠을 잤다. 우리가 잠들 때까지 큰 고모는 천정만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 고개를 옆으로 하면 우리가 양쪽에서 서로 자기 쪽으로 얼굴을 돌리라고 손으로 끌어당기고 보채기 때문이다. 큰 고모는 그래서 공평하게 똑바로 누워서 자기로 했다. 지금 나는 머리를 똑바로 하고 누워서 큰 고모의 입장에 동참하는 실험을 해본다. 이것도 보통 고역이 아니군, 금방 머리가 배겨서 옆으로 돌리고 싶어진다.

우리는 궁금했다. 큰 고모가 우리 둘 중에서 누굴 더 가깝게 생각하는지. 둘이서 그런 질문을 퍼부을 때마다 큰 고모는 대답했다.

"너는 내 남동생의 딸이고 영아는 여동생의 딸이니 똑같지."

큰고모는 밤에 이야기를 즐기는 내가 청할 때마다 한 번도 거절하는 법이 없이 옛날에, 호랑이 담배 피울 때로 시작하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으셨다. 여름 더위에 잠결에 칭얼대면 자다가도 일어나 앉아 부채를 들고 내 머리카락을 들추어가며 부쳐줬다. 겨울에는 추울세라 치마폭에 감싸고 다니는 큰고모의 그 대답이 나에게는 미흡했다.

우리는 할아버지께도 자주 같은 질문을 했다.
"너희들 둘 다 내 자식들의 딸이니 똑같지."

항상 의관 정제하시고, 은빛수염이 위풍 있으신 할아버지께서는 인자하게 대답하셨다.
영아는 만족했는지 몰라도 나는 용서(?)가 안됐다. 나에게 언성 한 번 높인 적이 없으시며 항상 자애로운 미소로 대해주는 할아버지가 아니신가. 나만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할아버지라고 생각해왔기에 배신감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영아가 저희 집으로 떠난 후 할아버지와 둘이 만 있을 때 나는 그 점을 따졌다. 그제야 할아버지께서는 웃으시며 평소처럼 내 이름 끝 자를 부르며 말씀하셨다.

"우리 화-이가 친손녀이니 이렇게 한 집에서 더 가까이 살고 있지 않느냐?"

그 때 할아버지께서는 가장 빨갛고 예쁜 사과를 골라서 과도로 정사등분으로 자른 다음 한 개씩 껍질을 정갈히 벗겨서 먹으라고 건네주셨다. 할아버지께서는 늘 그렇게 나를 위해 과수원에서 제일 좋은 사과를 벽장 속에 넣어 두셨다.

내가 부모님과 대구에서 함께 살게 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마치고 부터였다. 그 때까지는 대구에서 2시간정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시골의 할아버지 댁에서 자랐다. 할아버지 댁에는 일찌감치 혼자되신 큰고모가 시숙소생을 양자로 삼은, 고종사촌오빠를 데리고 함께 살았다. 열일곱에 혼례만 치르고 시댁에 신행도 가기 전에 청상이 된 큰고모는 다섯 고모들 중에 제일 맵씨와 솜씨가 뛰어났다. 대쪽 같은 성격의 할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는 심지가 굳은 큰고모도 가끔은 먼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래채 맞은편에는 고방이라 부르는 지하실이 있었다. 그곳에 몇 번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사과 향기가 가득한 아주 서늘한 곳이었다. 어린 내가 볼 때 그곳은 사과상자가 수없이 쌓였다고 기억된다. 나의 고향은 사과밭이 많았다. 계속되는 여러 집의 사과 밭을 지나며 한나절은 거닐 수 있는 고장이다. 지금처럼 눈이 내릴 때면 가지마다 설화를 피워서 과수원은 순백의 눈 꽃밭이 된다.  

생명의 열정은 얼음 속에서도 기를 죽이고 때를 기다린다. 생명은 봄이 되면 일제히 기를 발산하여 나뭇가지들은 싹을 틔운다. 기고만장하여 사과 꽃을 피운 과수원을 떠올리면 나는 지금도 기가 질려 현기증을 느낀다. 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떠올려보라면 하얀 사과 꽃이 흐드러진 과수원 들판이 보인다. 사과 밭의 가을 정취는 색 다르다. 가을하면 단풍이나 낙엽의 아름다움을 생각하지만 별로 그런 기억은 없다. 대신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충만한 기쁨을 주는 곳이다.

18세기 독일의 시인 실러(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는 썩은 사과의 냄새를 맡으면서야 시를 쓰기 위한 상념의 집중이 가능했다고 구상 시인이 쓴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조금은 알 것 같다. 모르긴 해도 실러의 고향에도 사과밭이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렇다면 썩은 사과 냄새는 고향을 기억하게 하고 순수한 동심으로 돌아가게 해주었을 것이다. 순수로의 회귀가 시를 쓸 수 있게 하지 않았을까.

사과나무 아래 떨어진 약간 흠이 있는 사과는 상품 가치가 없어서 팔려나갈 상자에는 넣지 않는다. 다른 사과들까지 썩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썩은 사과는 상한 부분만 잘라내면 성한 것 보다 더 맛이 달다고들 한다. 냄새도 사과향기를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더 진한 향기가 느껴지게 한다고나 할까. 사과는 진정 향기로운 과일이다. 썩어서도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사과는 기를 쓰고 싹 틔우고 꽃피운 나무들의 보람이다.

할아버지도 큰고모도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다. 육신은 흙이 될지라도 사과 향기와 함께 희석된 그 어른들이 남기신 고향의 냄새는 오늘도 눈 내리는 밤을 따뜻하게 해준다. 사과는 썩어서도 대 시인 실러에게 영감을 주고 그 분들은 이승을 떠나서도 나에게 사랑을 준다. 밖에는 눈이 오는데 때 아닌 사과 향기가 스쳐 지나간다.

한 밤중에 눈이 내린다. 내 어린 날의 추억과 함께 사과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 도월화 수필집 ' 여월여화 (如月如花)'/2007년 봄 선우미디어 출간,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