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L. 톨스토이
[소개]
톨스토이가 러시아 전승 민화에 근거해 집필한 작품 가운데 하나.
가난한 구두장이 부부와 천사의 교제를 통해 참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참다운 삶은 남을 위해 희생하고 사랑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작품 외에 <사람에겐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 <바보 이반> 등 작품이 유명하다.
가난 속에 허덕이며 고통받는 당시 러시아 민중들에게
참된 믿음만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작가 소개]
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 :
19세기 러시아 최대의 작가.
귀신 같은 솜씨로 인생을 예술화함과 동시에 지고한 종교성과 도덕성이 그 특징이다.
귀족 출신. <부활>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이 대표작이며
체홉이 '농노 출신의 귀족'이라고 불린 것과 대조적으로 '귀족 출신의 농부'라고 불릴 만큼
러시아 농민들에 대해 짙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목차]
1. 돈은 못 받고 술만
2. 하나님의 벌을 받은 사나이
3.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야!
4. 우리는 남에게 주는데
5. 일을 배우는 미하일
6. 차돌같이 단단한 사람
7. 장화는 이제 필요없어요
8. 쌍둥이 계집아이들
9. 부모 없이는 살아도 하나님 없이는
10. 내 몸에서 빛이 나는 것은
11.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12. 하나님은 곧 사랑
1. 돈은 못 받고 술만....
어떤 구둣방 주인이 아내, 아들과 함께 농부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집도 땅도 없는 그는 구두를 만들고 고치는 것으로 먹고살고 있었다.
양식은 비싼데 구두 삯은 쌌다.
그래서 번 것은 모두 먹는 데 들어갔다.
그와 아내가 번갈아 입는 바람에 한 벌밖에 없는 털외투는 다 해져 누더기가 돼버렸다.
그들은 새 털외투를 지을 양털을 사려고 2년째 벼르고 있었다.
가을이 되자 구둣방 주인 세묜은 돈을 약간 모았다.
아내의 장롱에 3루블, 농부들에게 빌려준 돈이 5루블 20코페이카 정도 있었다.
그는 아침부터 털을 사러 갈 준비를 했다.
조반을 마치고 셔츠 위에 아내의 솜 겉옷을 걸치고 그 위에 긴 무명 두루마기를 입었다.
3루블을 호주머니에 넣은 뒤 나뭇가지를 꺾어 지팡이를 만들어 길을 떠났다.
읍내에 이르러 세묜은 농부네 집에 갔다.
주인은 없었고, 그 아내가 일주일 안으로 주인 편에 보낸다고 약속할 뿐 돈을 갚지 않았다.
그는 다른 농부네 집에 갔다.
그 농부는 돈이 한푼도 없다고 하나님께 맹세하며 장화 고친 값 20코페이카만 주었다.
세묜은 별 수 없이 외상으로 양털을 사려고 했지만 가죽 장수는 외상을 주지 않았다.
"먼저 돈을 가져와. 그러면 좋은 것을 줄 테니까.
외상값 받기가 너무나 어려워."
세묜은 겨우 구두 고친 값 20코페이카를 받고
또 어느 농부에게서 헌 펠트 구두에 가죽을 대는 일을 맡았을 뿐이었다.
세묜은 속이 상해 그 20코페이카로 보드카를 마셔버렸다.
그는 양털도 사지 못하고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침에는 날씨가 좀 추운 것 같더니 술이 한 잔 들어가자
외투를 입지 않았는데도 몸이 후끈거렸다.
세묜은 걸어가면서 울퉁불퉁 얼어붙은 땅을 지팡이로 두드리고,
다른 손으로는 펠트 구두를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털외투를 입지 않아도 따뜻하구나.
작은 보드카 한 병을 마셨더니 온몸이 후끈거려.
털외투 따윈 없어도 좋아. 난 사나이야! 암, 그런 건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아!
그래도 살 수 있어. 털외투 따윈 일생 동안 필요 없어.
단지 마누라가 걱정이지. 열심히 일해도 사람들이 나를 업신여기는 걸.
이번에 돈을 안 주면 모자를 벗겨 버려야지. 암, 그러고 말고.
이게 말이 되느냐구? 돈을 20코페이카씩 찔끔찔끔 주다니!
흥, 20코페이카로 뭘 하란 말이야? 술밖에 더 마시겠어?
생활이 곤란하다고? 나는 곤란하지 않은가?
이봐, 너희들은 집도 있고 소도 있고 말도 있지만 나는 빈털터리야.
너는 네 빵을 먹지만 나는 사서 먹어야 해.
아무리 절약해도 일주일에 빵값 3루블은 나가야 해.
집에 가면 빵이 없을 테니 1루블 반을 또 내놔야 하지.
그러니 너도 내 돈을 갚아줘야 해."
마침내 세묜은 길모퉁이 교회까지 왔다.
그런데 교회 뒤에 뭔가 하얀 것이 보였다.
이미 황혼이어서 찬찬히 바라봐도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여기에 돌 같은 건 없었는데, 소인가? 그러나 짐승 같지도 않아.
머리는 사람 같은데 사람의 머리가 왜 저렇게 하얄까?
그리고 사람이 이런 데 있을 리 없지."
세묜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물체가 이제 분명하게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람이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벌거벗은 몸으로 교회 벽에 기대앉아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세묜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이 사나이를 죽이고 옷을 벗겨 가져갔나 보다.
가까이 갔다가 나중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세묜은 그냥 지나가 버렸다.
교회모퉁이를 돌자 사나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를 좀 지나 뒤돌아보자 그 사나이는 벽에서 몸을 일으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쩐지 이쪽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세묜은 덜컥 겁이 나 서 생각했다.
'다시 가까이 가볼까? 아니면 그냥 가버릴까?
곁에 갔다가 무슨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어떤 놈인지 전혀 모르니까…
아무튼 좋은 일을 하고 이런 데 왔을 리는 없지.
가까이 가면 벌떡 일어나 내 목을 조를지 몰라.
그러면 꼼짝없이 죽는 거지. 죽지 않더라도 좋지 않은 일을 당할 거야.
헌데 저 벌거숭이를 어쩌면 좋담? 내 옷을 벗어 줄 수도 없고. 이대로 가버리자!'
세묜은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교회 앞을 지나치자 양심의 가책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길 한가운데 우뚝 서서 자신에게 말했다.
'너 지금 대체 무얼 하는 거야?
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해 죽어가는데 겁이 나서 그냥 가버리다니.
네가 부자라도 된단 말인가? 재산을 빼앗길까 봐 겁이 나는가? 그럼 못써, 세묜!'
세묜은 걸음을 돌려 사나이 곁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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