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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cret Garden - 그리운 아버지 품으로(終)

Joyfule 2018. 1. 22. 00:37
    
    
      The Secret Garden   
      Frances Hodgson Burnett 
      그리운 아버지 품으로 (최종회)    
     
    크레이븐은 메들록 부인을 물린 후 자리에서 일어서며 몇 번이고 반복했다.
    "정원에 있다!"
    그는 지금 서 있는 자리로 자기 자신을 끌어 내리려고 노력을 쏟아야만 했다.
    다시 땅을 밟는 다는 느낌이 들자 몸을 돌려 방에서 나갔다.
    그는 메리가 그랬던 것처럼 덤불과 월계수, 분수 화단을 지나 성큼 성큼 나아갔다.
    이제 분수에서는 물이 솟아 나오고 
    분수 주변을 두른 화단에는 환한 가을 꽃이 피어 있었다.
    그는 잔디밭을 가로지른 후 긴 산책로로 접어 들어 
    담쟁이 덩굴이 덮인 담 옆에 섰다.
    서두르지 않고 천펀히 걸으며 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버려두었던 장소로 
    다시 이끌려 온 느낌이 들었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정원에 가까이 가면 갈 수록 발걸음이 한층 더 느려졌다.
    비록 담쟁이가 무성하게 자라 그 위를 덮었지만 
    그는 문 위치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열쇠를 묻은 자리가 어딘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두리번거렸다.
    발길을 멈추자마자 그는 화들짝 놀라 귀를 기울이며 
    지금 꿈속을 걷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문 위에는 담쟁이가 짚게 덮여 있고 열쇠는 관목 아래 묻혀 있으며 
    거의 10년이라는 외로운 시간 동안 그 문지방을 넘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텐데 정원 안에서는 소리가 들렸다.
    나무 아래서 서로 쫓느라 발을 질질 끄는 소리였다.
    또, 이상하게도 나지막하게 죽인 소리도 들렸다.
    감탄사와 억누른 환호성도, 실제로 아이들이 웃는 소리,
    남이 듣지 못하도록 참으려 했지만 다음 순간 
    무척 신이 나서 결국 어쩌지 못하고 터져 나온 웃음소리 같았다.
    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대체 무슨 소리를 들은 걸까?
    이제 정신이 나가서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게 된 걸까?
    아련하지만 똑똑히 들렸던 저 말소리의 의미가 그런 걸까?
    곧이어 그 순간이 왔다.
    조용히 참는 것을 잊어버린 소리가 터져 나오는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이.
    점점 더 빨라진 발소리가 들렸다.
    누가 정원 문으로 가까이 오고 있었다.
    튼튼한 어린아이가 빠르게 숨을 내 쉬는 소리가 들렸고 
    마음 속에 얌전히 담아 둘 수 없는 웃음 소리와 환호성이 와르르 터져 나왔다.
    그때 담에 난 문이 활짝 열리고 담쟁이 덩굴이 뒤로 흔들리더니 
    한 소년이 전속력으로 뛰어 나왔다.
    아이는 이 외부인이 누군지 보지도 않고 그의 품 안으로 뛰어 들었다.
    크레이븐은 마침맞게 두 팔을 뻗어 소년이 보지도 않고 덤벼들다가 
    넘어지는 것을 간신히 구할 수 있었다.
    크레이븐은 그런 자리에 남자 아이가 있는 것에 놀라고 
    몸을 떼고 얼굴을 내려다 보다 정말로 숨을 헉 들이켰다.
    키가 크고 잘 생긴 소년이었다.
    활기가 철철 엄쳐 빛이 났고, 
    뛰어 다닌 덕에 얼굴에는 보기 좋은 불그레한 혈색이 감돌았다.
    소년은 색이 짙은 머리카락을 이마 뒤로 넘기고 기묘한 회색 눈을 들었다.
    소년 다운 웃음이 가득하고 속눈썹이 장식처럼 둘레를 두른 눈이었다.
    크레이븐은 숨을 들이켠 것도 바로 그 눈동자 때문이었다.
    "누구지, 뭐야?  누구야!"
    크레이븐은 더듬거렸다.
    콜린은 전혀 기대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계획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런 식으로 아버지와 만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달리기 경주를 하다가 이겨서 
    휙 뛰어 나오게 된 것이 어쩌면 훨씬 더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콜린은 한껏 키가 커 보이게 몸을 쭉 폈다.
    콜린과 함께 뛰다가 문으로 튀어나온 나도 
    콜린이 이제까지 중 가장 키가 커 보인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전 콜린이에요.
    믿을 수 없으실 거에요.
    저도 믿을 수 없으니까요.
    제가 콜린 이에요."
    메들록 부인이 어리둥절했듯이 콜린 또한 아버지가 어째서 
    허겁지겁 이렇게 말하는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원에!  정원에 있구나!"
    "네."
    콜린이 서둘러 말했다.
    "정원이 이렇게 했어요.
    메리와 딬먼과 동물 친구들, 아무도 몰라요.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비밀로 했어요.
    난 건강해요.
    달리기 경주에서도 메리도 이기는 걸요.
    난 나중에 운동선수가 될 거에요."
    콜린은 건강한 아이답게 이 모든 말들을 했다.
    얼굴은 붉어졌고 열의 때문에 단어가 서로 엉켰다.
    이 모습에 크레이븐의 영혼은 믿기지 않는 기쁨으로 흔들렸다.
    콜린은 한 손을 뻗어 아버지의 팔 위에 놀려 놓았다.
    "기쁘지 않으세요, 아버지?"
    콜린은 말을 맺었다.
    "기쁘지 않으세요?
    나는 앞으로 영원히 언제까지나 살 거에요!"
    크레이븐은 두 손을 아들의 양 어깨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붙잡았다.
    순간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날 정원으로 안내해 주렴, 아들아."
    마침내 크레이븐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내게 다 얘기해 다오."
    그래서 우리들은 크레이븐을 정원으로 안내했다.
    정원에는 가을이 황금빛과 자줏빛, 보랏빛이 도는 푸른색과 
    불타 오른느 선홍색이 가득 펼쳐져 있었고 
    사방에는 때늦게 핀 백합 송이가 함께 무리 져 있었다.
    순백색, 혹은 백색과 루비색이 섞인 백합이었다.
    크레이븐은 이젠 죽어 버렸지만 찬란한 영광이 빛났던 
    그해의 계절에 이 꽃들을 처음 심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철 늦은 장미 덩굴이 위로 기어올라 늘어지거나 얽혀 있고, 
    햇살에 노하게 변해 가는 나무의 색이 한층 더 짙어져 
    마치 빽빽한 숲 속의 황금 사원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이제야 정원에 나타난 크레이븐은 
    우리들이 회색 그늘진 정원에 왔을때 그러했듯이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했다.
    그는 여기저기를 둘러 보았다.
    "정원이 죽어 버렸을 줄 알았는데."
    "메리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콜린이 말했다.
    "하지만 살아 났어요."
    그런 후 모두들 평소 앉는 나무 아래 둘러 앉았다.
    하지만 콜린만은 이야기하는 동안 줄곧 서 있겠다고 했다.
    콜린이 저돌적인 소년다운 방식으로 쏟아 내는 이야기를 들으며 
    크레이븐은 이제까지 들은 중에 가장 기이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수수께끼, 야생동물들, 이상한 한밤의 만남, 찾아온 봄, 
    자존심을 모욕당하자 격한 마음에 늙은 벤과 맞서기 위해 두 발로 일어선 어린 라자, 
    기묘한 우정과 연극 놀이, 조심스럽게 지켜온 커다란 비밀.
    이야기를 듣던 크레이븐은 눈물이 날 정도로 웃음을 터뜨렸고 
    가끔 웃지 않을 때도 눈물이 눈에 고였다.
    운동선수, 강연자, 과학 발견자는 웃기고 사랑스럽게 건강한 어린 아이였다.
    "자.'
    콜린은 이야기의 끝에 말했다.
    "이젠 더 이상 비밀로 할 필요가 없어요.
    사람들이 날 보면 깜짝 놀라 거의 까무러칠 거에요.
    하지만 이제 다시 휠체어엔 앉지 않을 거에요.
    난 아버지랑 같이 걸어가겠어요.
    집으로."
    벤은 주로 정원에서 일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뜰 일이 거의 없었지만, 
    이번만은 채소를 부엌까지 나른다는 핑계를 대고 집안 까지 갔다.
    메들록 부인이 들어와서 맥주나 한잔하고 가라고 권하자 
    벤은 못 이기는 척 하인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 덕분에 바라던 대로 지금 시대의 미슬스웨이트 장원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던 순간에 때마침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었다.
    마당을 향한 창문에서는 잔디밭이 흘긋 내다보였다.
    메들록 부인은 벤이 정원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주인님의 모습을 보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주인님이 콜린 도련님과 만나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했을지도 몰랐다.
    "두 분중 누구라도 봤어요, 벤?"
    부인이 물었다.
    벤은 맥주잔을 입에서 떼고 손등으로 입술을 쓱 닦았다.
    "암, 봤구먼요."
    그는 의뭉스럽게 짐짓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풍기며 대답했다.
    "두분 다요?"
    메들곡 부인이 넌지시 물었다.
    "두 분 다요."
    벤은 대꾸했다.
    "고맙구먼요, 부인.
    한 잔더 마셨으면 좋겄는디."
    "함께요?"
    메들록 부인은 잔을 가득 채우면서 흥분해서 외쳤다.
    "함께 계셨지요."
    벤은 새로 따른 맥주를 한 모금에 반이나 꿀꺽 마셔버렸다.
    "콜린 도련님은 어디 있었어요?
    어때 보이던가요?
    두 분이 서로 뭐래요?"
    "못 들었는디요."
    벤이 말했다.
    "나야 사다리에서 담 너모로 넘겨다 본 거라.
    하지만 이거 하나는 말슴드릴 수 있겠구먼요.
    여기 집안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었지라.
    이제 곧 알게 될 것이지만서도."
    그 말을 하고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벤은 마지막 남은 맥주를 꿀꺽 삼켜 버리고 
    창밖 너머 나무들 사이로 난 잔디밭을 향해 잔을 엄숙하게 흔들었다.
    "저길 보시구려."
    그가 말했다.
    "궁금하시면 말이지라.
    잔디밭 너머로 누가 오는지."
    부인은 그쪽을 쳐다보더니 두 손을 들며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 소리를 들을 만한 거리에 있었던 남자 여자 하인들이 
    하인식당 저편에서 뛰어왔고 창문 앞에 몰려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그들의 눈은 얼굴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잔디밭 너머로 미슬수웨이트의 주인님이 걸어오고 있었다.
    주인님의 모습은 하인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 옆에서 머리를 위로 쳐들고 웃음기가 가득한 눈으로 
    걸어오고 있는 사람은 요크셔의 어떤 소년보다도 튼튼하고 꿋꿋해 보였다.
    ​바로 콜린 도련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