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향기 - 유지현

「여인의 향기」 라는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에서는 맹인으로 나오는 알파치노가 향기만 맡고서도, 그 사람의 생김새며 성격까지 알아맞히는 장면이 나온다. 맹인인 탓에 후각이 발달되었기도 했었겠지만, 향기에 대해 새삼스럽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 전에 지방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 차 처음으로 외박을 한 적이 있었다. 여러 가지 걸리는 게 많았지만 , 아이들이 엄마 없는 휴일을 지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내가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남편과 아이들은 앞다투어 지난 이야기를 해 주었다. 큰아이는 설거지를 했고, 작은 아이는 청소를 했다고 하며 자랑이 대단하였다. 그런데 내가 없는 동안 잠잘 시간이 되자 초등학교 1학년인 작은 아이가 내 베개와 쿠션을 가져가 코를 묻고 있더란다. 왜 그러는지 물어 보니 엄마 냄새가 난다고 하며 좋아하더라는 이야기를 남편에게 듣고서 가슴이 찌릿한 적이 있다.
엄마 냄새란 어떤 냄새일까? 어렸을 적에 나는 어머니가 집에 안 계실 때면 어머니의 서랍을 몰래 열어 보곤 하였다. 자개가 화려하게 박혀있는 그 서랍장은 다섯 칸으로 되어 있었는데, 내가 잘 열어 보던 서랍은 위에서 두 번째 서랍이었다. 그 서랍을 열면 꽃무늬가 있는 보자기가 덮여 있었고, 그 속에는 잘 개켜진 얇고 부드러운 옷가지 사이에 독특한 모양의 향수병이 숨어 있었다.나는 그것을 조심스레 꺼내어 내게 살짝 뿌려 보기도 하고, 그 향수 내음이 배어 있는 어머니의 손수건을 맡아보기도 했다.
그 비밀스런 작업은 어머니라는 성숙한 여인에 대한 동경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때의 향기는 진하지는 않았지만 나에게는 오래도록 기억되었다. 나는 향수를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향수를 뿌릴 때나, 내 화장품을 살짝살짝 열어보기를 좋아하는 작은아이를 보면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특별한 기억이 있는 향기는 지나간 추억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좋은 향기는 생각만 하여도 사람의 기분을 유쾌하게 해준다. 수북이 놓여 있는 한아름의 라일락꽃이나, 잘 볶아진 신선한 원두로 끊인 커피향은 떠올리기만 하여도 행복한 기분이 든다.
그러한 심리를 이용하는 걸까? 요새는 판매전략을 높이거나 질병을 치료할 때에도 향수를 이용한다고 한다(옷가게는 고급스럽고 깨끗한 이미지의 로즈향이나 그린향을 뿌리고, 사무실은 페퍼민트향을, 병워에는 안정감을 주는 라벤더향을 뿌려 질병치료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렇게 향기는 청량제, 방향제로도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또 같은 향의 향수를 뿌려도 사람에 따라 그 향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 사람의 체취와 어울려 다시 자기만의 향으로 변하는 것이다.
향수를 뿌린 지 몇 시간이 지나면 공중으로 흩어져 버리는 인위적인 향수냄새보다는 언제까지고 생각만 하여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애틋한 향기가 그리워진다. 바라만 보아도 향기가 느껴지는 사람은 얼마나 멋이 있을까.
며칠 전, 6층에 사는 아이가 놀러 온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집에 갈 때가 되자 갑자기 우리 집에서 향기가 난다고 했다. 나는 "향수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무슨 향기가 났을까?" 하면서 웃어 넘겼지만 묘한 여운이 남았다. 그 아이가 간 뒤, 나는 잠시 화초들을 바라보다가 혹시 그 아이가 맡은 향기는 코로 맡는 향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맞벌이로 바쁜 엄마의 빈자리에 대한 상대적인 그리움을, 우리 집에서 향기로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베란다 창문을 열고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어디에선가 이름 모를 풀꽃 향기가 바람에 묻어 와 가슴으로 들어온다.
나는 내 아이가 맡았던 엄마의 냄새가 궁금해졌다. 얼른 내 베개를 찾아 코를 대고 킁킁거려 보았다. 그런데 베개에서는 내가 어릴 때 맡았던 어머니의 향기가 흩날리고 있었다. 그 향기는 바로 사랑의 향기였다.
수필가.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수필작가회원.
'━━ 감성을 위한 ━━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안한 갈대 - 조병화 (0) | 2012.12.14 |
---|---|
식막해져가는 가슴 - 윤모촌님 (0) | 2012.12.13 |
내 식의 귀향 - 박완서 (0) | 2012.12.11 |
버티고(Vertigo) - 정성화 (0) | 2012.12.10 |
꽃다발-고동주 (0) | 2012.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