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성을 위한 ━━/時事동영상

산다는 건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Joyfule 2023. 2. 2. 23:17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산다는 건



지난 밤에는 두 시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동해 바닷가의 산자락 내 방에 혼자 있다. 밀도 짙은 어둠이 나를 감싸고 있다. 창문 앞에 서서 스산한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본다. 싸늘해 보이는 파란 별이 하늘 여기저기 보석같이 박혀 있다. 별의 신비하고 투명한 빛이 가슴속까지 들어와 마음을 닦아주는 것 같다. 하늘 가운데 눈썹달이 걸려 있다. 그 옅은 눈썹 달빛에 바다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누워있는 게 보였다. 


바닷가를 산책하다 보면 혼자 텐트를 치고 있는 사람들이 이따금씩 보인다. 그들은 검은 밤바다 앞에 누워 불면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는 파도 소리를 느끼고 있지는 않을까. 그들의 작은 텐트와 나의 방이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잠 안오는 밤이면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되새김하는 소같이 뱃속에서 다시 올라온다. 더러 기억의 깊은 곳에서 맑고 투명한 소리가 들려온다. 


이십대 전반 깊은 산골 농가 옆에 방을 얻어놓고 공부할때였다. 산도 들도 하얗게 눈이 덮인 겨울이었다.
한밤중 적막할 때 외양간에서 들려오는 금속성의 소리는 마음을 저리게 했다. 칼바람이 부는 추운 밤 소는 잠들지 못하고 혼자 서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소는 참 고독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 같았다. 잠시만 엄마 곁에 있었을 뿐 일생 혼자였다. 주인이 새벽에 주는 죽을 약간 얻어먹고는 하루 종일 밭을 갈기도 하고 달구지를 끌고 다니기도 했다. 이따금 풀밭에 엎드려 잠시 쉴 때면 넓고 낮은소리로 엄마를 부르곤 했다. 간절함이 담긴 그 소리는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밤이면 소는 혼자 침묵하며 되새김을 하고 있었다. 그 소의 목에 걸린 작은 종에서 흘러나와 내 방으로 건너오는 투명한 소리는 삶의 짐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의 간절한 기도 같기도 했다. 소는 일생을 외로움과 일이라는 짐을 지고 가야 했다. 죽어서 자신의 고기와 내장과 뼈와 뿔까지 모두 주어야 자유 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삶도 소같이 일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소같이 코가 꿰어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다. 인간에게 노동은 그의 철학이고 수행이고 인생이고 기쁨일 수 있다. 

어떤 소설가는 일생에 걸쳐 쓴 몇만장의 원고지가 자신이라고 했다. 

소가 뚜벅뚜벅 걸으면서 발자국을 남기듯 그는 원고지의 네모 칸에 자신의 생각과 이념을 또박또박 채워왔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작가가 되어 가난과 자유를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우연히 만났던 암투병중이던 의사는 자신의 진료실에 보관된 수 천장의 챠트가 자신의 인생이었다고 했다. 

며칠 전 노숙자생활을 하던 한 가수를 유튜브에서 봤다. 

내 젊은 시절 전파사 앞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노래가 영혼을 흔들기도 했었다. 

노숙자가 우주에서 그에게 흘러오는 멜로디들을 잡았던 것 같다. 그는 자기가 만든 노래 이백곡을 카세트테이프에 담아 공원의 땅속에 몰래 묻어두고 죽었다. 

인생을 바쳐 작은 병뚜껑만을 만들어 온 사람도 있고 오미리짜리 견고한 나사를 연구한 사람도 있다. 

산다는 것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 일에는 인격과 혼이 담겨 있어야 짐승의 일과 다르다. 소가 느리게 그러나 쉬지 않고 걸을 때 천리도 갈 수 있다고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말했다. 보폭과 속도는 소에게서 배워도 되지 않을까. 늙어 주변을 보면 뭔가를 열심히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 영어와 중국어들을 많이 배운다. 악기들을 배우기도 한다.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가 쓴 수필에서 노년에 희랍어와 첼로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톨스토이도 노년에 이태리어를 배웠다. 플라톤도 소크라테스도 늙어서 악기를 배웠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옆의 노인들이 평생학습관에 가서 그리스 로마의 미술을 공부하기도 하고 공자의 논어를 배우기도 한다. 젊어서 법의 밥을 먹었던 나는 요즈음 문학이라는 외식을 하고 있다. 산다는 건 배우는 것이다. 


어젯밤 열두시경 우연히 육이오전쟁당시의 실상을 찍은 흑백필름의 다큐멘터리를 봤다. 

굶어 사나워진 사람들이 곡식자루를 서로 잡고 땅바닥에서 뒹굴고 있다. 

또 다른 장면이 나왔다. 찌그러진 양재기를 들고 끝없이 줄 선 사람들에게 국자로 우유죽을 나누어주는 사십대쯤의 여인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유난히 밝고 환하게 나의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사랑이 있으면 지옥같은 전쟁 속에서도 그렇게 천사가 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후 칠십년이 지난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즐겁게 살고 있을 것이다. 

산다는 건 일하고 배우고 사랑하는게 아닐까. 

나의 생명을 갈고 닦아 나 자신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드는 삶을 살아야 했다. 

걸어온 어제의 길들이 저만치서 쓸쓸히 웃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