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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 현대차가 흔들리는 날

Joyfule 2014. 3. 15. 09:55

 

 

[오늘과 내일/권순활] 삼성 - 현대차가 흔들리는 날|

 

 

 

 권순활 논설위원

 

외환위기 2년 전인 1995년 한국 경제는 반도체 호황의 ‘파티’를 즐겼다. 최대 수혜자는 1993년 반도체 D램 세계 선두로 떠오른 삼성전자였다. 돈이 쏟아져 들어오자 임직원 급여와 복지 혜택을 크게 늘렸다. 재무 구조가 나쁜 일부 계열사에 퍼주기식 지원도 했다.

1996년 4월 돌연 파티가 끝났다. 글로벌 공급과잉 여파로 반도체 수출단가가 급락하고 불황이 덮쳤다. 반도체업계의 수익성 악화는 일본 엔화가 약세로 반전된 환율 충격과 맞물리면서 파장이 커졌다. 경상수지 적자는 1995년 86억 달러에서 이듬해 231억 달러로 급증했다. 외환위기로 가는 길에 경제적 정치적으로 몇 차례 변곡점이 있지만 반도체 쇼크는 그 서막(序幕)이었다.

삼성과 현대자동차는 최근 10여 년간 우리 경제를 이끈 재계 서열 1, 2위의 쌍두마차다. 국내 임직원 수는 삼성그룹이 25만여 명, 현대차그룹이 14만여 명이다. 사무직이든, 생산직이든 구직자와 부모들이 선망하는 ‘꿈의 직장’이다. 2012년 그룹 매출액은 한국에서의 생산분만도 삼성이 302조 원, 현대차가 164조 원이었다. 이 기업들과 희비(喜悲)를 같이하는 중견, 중소 협력업체도 많다. 두 그룹이 감기에 갈리면 폐렴을 앓을 사람은 적게 잡아도 100만 명을 훌쩍 넘는다.

영국 브랜드평가사 인터브랜드의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 들어간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차 기아차 등 세 곳이다. 삼성전자는 2009년 20위권에 진입한 뒤 지난해 8위로 뛰어올랐다. 현대차는 작년에 10계단 상승한 43위, 같은 계열사인 기아차는 4계단 오른 83위였다.

올 들어 삼성과 현대차그룹의 기류가 심상찮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전분기보다 6% 줄었다. 올 1분기 실적 전망도 밝지 않다. 올해 초 5년 만에 결의대회까지 열고 ‘한계 돌파’를 다짐했지만 위기감은 가시질 않는다.

현대차 사정은 좀더 심각하다. 작년 영업이익은 현대차가 1.5%, 기아차가 9.8% 감소했다. 최근 미국 컨슈머리포트의 자동차 브랜드 평가에서 기아차는 4계단, 현대차는 2계단 하락했다. 두 회사 모두 10위권 밖으로 밀려 ‘품질 경영’에 적신호가 켜졌다. 치명적 약점인 강성 기득권 노조의 구태(舊態)가 개선될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이병철 정주영이라는 걸출한 창업자의 뒤를 이은 이건희 삼성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비자금 사건 같은 위기는 겪었지만 종합 경영 성적표와 리더십은 우등생이었다. 차세대 경영을 지휘할 이재용 정의선 부회장은 부친들이 건재하다는 점은 감안하더라도 아직 충분히 역량을 인정받거나 검증받지 못했다.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 고생을 모르고 자란 3세 경영자들이 창업과 수성(守成), 도약을 이룬 1, 2세들에 버금가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미래를 좌우할 변수다.

‘호수와 숲의 나라’ 핀란드를 대표하던 노키아가 추락하자 그 충격은 기업 임직원뿐 아니라 전체 핀란드 경제에 미쳤다. 삼성과 현대차가 흔들리는 날이 오면 한국이 받을 타격도 ‘노키아 쇼크’ 못지않을 것이다. 임직원들의 분발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두 그룹의 열정이 식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기업관도 균형 감각을 갖출 필요가 있다.

일부 기업이나 기업인이 잘못하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다만 한국 대기업에 대한 맹목적 반감으로 해외 자본, 특히 투기세력의 대변자 노릇도 서슴지 않거나, 회초리를 들 만한 과오에 쇠몽둥이로 후려치는 식의 과잉반응은 금물이다. 삼성과 현대차를 지나치게 매질해 후유증이 커지면 그 직격탄을 맞을 피해자들은 미국인 중국인 일본인이 아닌 바로 우리들 한국인이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