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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의 충·효·예 교육 이렇게 합시다

Joyfule 2016. 9. 23. 10:13

인의예지(仁義禮智) - 새천년의 충·효·예 교육 이렇게 합시다 김종두 충·효·예 운동은 왜, 필요한가? 그것은 한마디로 온전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온전한 사람인가? 그것은 조국의 소중함을 아는, 그리고 국민으로서, 바른 사회인으로서, 가정에서 부모·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사람이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신이 바로 충·효·예 정신이며 우리 민족의 혼(魂)인 동시에 사상이자 철학이다. 또한 숱한 역사의 고난과 함께 왜곡되어진 우리 사상을 다듬어서 우리의 정신으로 바로 세워 온전한 사람으로 키우는데 생활규범으로 작용하게 하자는 것이 이 운동의 목적이다. 그래서 이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는 취지에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우리의 정신, 즉 ‘그 무엇’을 되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충·효·예 운동을 해야 할 이유에 대하여 “ 잃어버린 우리의 ‘그 무엇’을 찾아야 하고, ‘그 무엇’을 바탕으로 국력을 키워나가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알다시피 우리는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민족이다. 그런데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우리보다 역사가 훨씬 짧은 나라들도 그 나라마다 상징되는 정신을 간직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이스라엘의 선민사상,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 영국의 기사도 정신, 미국의 개척자 정신(뉴프런티어)등이 상징화되고 있는데 비해, 우리에게는 홍익인간 정신, 화랑도 정신, 상무정신, 선비정신 등 훌륭한 정신사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여기도록 교육되어 있지 못하다. 특히 그러한 우리의 정신마다에 깊이 베어 있는 정신이 바로 충·효·예 정신이며, 그 뿌리는 중국의 공맹사상이나 삼강오륜이 아니라 우리 선조인 배달국 시대 때부터 전해져 오는 ‘삼륜구서’에서부터 출발되었다는 사실을 알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역사를 바로 알지 않고서는 안될 것이다. 이를테면 초등학교 교과서에부터 기록되어 있는 우리 나라의 개국이 B.C 2333년 단군왕검이셨다면 그때부터 3국(신라, 고구려, 백제) 이전까지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바르게 알려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부모 없는 자식이 있을 수 없고 뿌리 없는 민족이 있을 수 없다는 논리를 근거로 한다. “충·효·예 정신을 바로 알자”는 운동이 일어나게 되면 필경 교육법에 제시되어 있는 홍익인간 정신을 알게 되고 홍익인간 정신을 알다보면 3륜9서 내용도 자연히 알게될 터, 공자께서 “군자의 나라, 동이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신 우리의 고유정신을 되살리게 될 것이다. 둘째, 전인교육으로 연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인이란 ‘온전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니 전인교육이란 ‘온전한 사람으로 가르쳐 기른다’는 의미가 된다.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의식이나 태도를 변화시키는 방식에 두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정신을 일깨워서 행동을 변화시키는 길이요, 또 하나는 행동 및 체험을 통해서 정신을 변화시켜 나가는 방법인데 학자들은 전자를 각성교육 또는 의식교육으로, 후자를 일컬어 노작교육 또는 생활화 교육으로 표현하는데 충·효·예 교육은 후자에 속한다. 예컨대 부모에게 편지 쓰고 전화를 하면서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끼고 양로원이나 고아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배려와 사랑을, 그리고 국토 대청결 운동과 환경보호활동 등을 통해서 나라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충·효·예 운동은 생활과 연계하여 인성을 계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은 “먼저 인간이 되라, 그러고 나서 석공이 되라(페스탈로찌)”고 한 말과 마찬가지로 한국인으로서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기본윤리이자 생활규범인 충·효·예 정신을 내면화하게 될 때 비로소 가능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충·효·예 운동과 전인교육은 여러 면에서 연계되지만 크게 보면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 전인교육의 개념과 충·효·예 본질에 나타난 공통점이다. 전인교육은 「한 인간이 독립적 완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조화를 통해 함께 형성해 가는 통합적 인격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한편, ‘충·효·예 ’는 언제나 나라를 위하는 참된 마음으로 자기직분에서 성심으로 최선을 다하고(忠), 인간으로서 조직의 조화와 질서를 유지케 하며(禮),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과 정성으로 상하 인간관계를 유지(孝)하는 덕목“이다. 따라서 공통점으로 발견되는 것은 개인보다 사회 속에서의 조화, 그리고 통합적 인격, 조화적 성장발달을 도모한다는 점이다. 둘, 知,情,意의 조화를 이루려는 공통점이 있다. 전인교육은 “知·情·意와 知·德·體의 제반요소가 조화된 인격자를 기르는 교육이며 인간이 지니고 있는 모든 자질을 조화적으로 육성하려는 교육(장진호)”으로 정의되고, 충·효·예 교육 또한 知(알고)→情(느끼고)→意(다짐하고)→行(실천)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교육이다. 다시 말하면 “전인교육이 온전한 인간을 육성하는 교육이라면 충·효·예 교육은 온전한 인간으로서 행동하고 실천하게 하는 교육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셋,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 의식을 키운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인교육이란 「문화적 소양을 갖추고 그것을 즐길 수 있게 돕는 문화적 소양교육이다. 그러므로 이는 문화권의 전통에서 발전시켜 그것을 위한 개혁이 전통과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하며, 전통적 因子(인자)의 재생으로 교육이 살찌고 토착화되도록 해야 한다(김정환)」고 하여 교육에 있어 전통문화와의 연계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충·효·예 교육이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이며 가정 윤리, 사회 윤리, 국가 윤리로서 공동체 의식을 함양시키는 덕목 즉, 부모와 자식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孝), 사회인으로서 이웃끼리, 공동체 생활에서 도리를 다하며(禮), 조국의 소중함을 알고 행동(忠)하는 덕목임을 볼 때 문화를 통해서 사람다운 사람 즉, 전인을 양성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셋째, 기본적 윤리이자 생활규범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은 옛부터 법보다는 예로써 다스려져 온 민족이다, 이를테면 언제나 나라를 걱정하면서 부모님 섬기는 것을 도리중의 으뜸으로 여겨왔으며 상호간에 예를 어기지 않는 것을 규범시 하였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첨단 과학화된 컴퓨터 시대에 무슨 충·효·예 교육이냐 고루하다”는 식으로 말을 하지만 이는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아무리 첨단 과학화 시대라 하더라도 그때에 맞는 윤리의식은 있어야 하고 그것도 한국적 정서에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170만대의 컴퓨터가 보급되었지만 글 프로그램을 돈주고 구입한 사용자는 고작 2만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168만 명은 불법복제를 해서 사용하고 있다”, “컴퓨터 사용자들의 인터넷망에서 이루어지는 십대의 성(性)매매, 음란사이트, 전자상거래를 비롯, 과학화된 장비로 성행하고 있는 전화방, 비디오방, PC방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탈선행위 등을 보더라도 윤리적 기준이 적용되지 않으면 인류에게 해악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알다시피 과학화 시대가 도래하여 인간복제가 가능할 정도로 첨단기술은 발전되었지만 그 필요성만큼이나 역기능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으며, 그에 대비한 윤리성 회복을 바라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보더라도 윤리운동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개화기 이후, 전통예절이나 정신문화 적인 것은 ‘낡은 인습’으로 착각한 나머지 전통적인 것을 천대하고, 반면에 서구적인 것은 훌륭한 것으로 여기는 등 시행착오를 범하고 말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서구인과 우리 민족은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그들은 합리성에 바탕을 둔 ‘논리구조’인 반면 우리는 정에 바탕을 둔 ‘마음의 구조’라는 점이다. 그리고 생활양식 면에서 볼 때도 우리 민족은 법보다는 정과 관습을 우선시 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 예로 명절이면 어김없이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어도 고향을 찾는 성향, “피는 물보다 진하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등의 표현 속에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기본 윤리이자 생활규범인 충·효·예 정신을 확산하자는 운동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