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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안에서 깨어 기도하라. - 신상래 목사

Joyfule 2014. 8. 7. 09:56

 

 

  성령안에서 깨어 기도하라. - 신상래 목사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곧 성령의 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는 계시였다. 성령은 창조주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실 때 함께 하신 분으로, 성자 예수님과 함께 삼위일체를 이루시는 분이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려면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하며 그분의 감동이 있어야 가능하다.

필자가 새삼 신학교의 성령론 강의시간처럼 지루한(?) 얘길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성경에서 여러 번 강조한 것을 다시 옮겨놓자는 게 아니다. 올 초부터 하나님은 필자의 아내를 통해 예언으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예언으로 주신 말씀을 통해 그동안 궁금해 오던 성경말씀들을 좀 더 자세히 그리고 환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부부에게 주시는 예언들은 성경의 말씀을 개인의 상황에 맞게 강조하신 것에 불과하지만, 성경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되었으며, 성경에 기록한 말씀들이 다시 살아서 역사하는 광경을 확신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무엇인가?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성령 안에서 혹은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랫동안 필자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주제였다. 위의 말씀처럼,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한다는 의미의 언급은 성경에 넘쳐난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다면 기도의 응답이나 열매는 따 논 당상이 아닌가? 그래서 각종 기도회 때마다 성령 충만으로 위해 간절히 기도하지 않은가?

 

필자가 평신도 시절 다녔던 교회도 이를 무척이나 강조했다. 그래서 금요기도회 시간이면 뜨거운 찬양과 웅장한 악기 그리고 걸쭉한 목소리의 기도인도자가 성령 충만한 분위기를 북돋웠다. 사실 웅장한 드럼소리가 예배당을 울려 퍼지면서 성령의 내주를 강조하는 빠른 찬양을 몇 곡이고 반복하면 감정이 뜨거워지는 게 당연한 느낌 아닌가? 그래서 예열된 분위기에서 온 교인의 커다란 기도소리가 웅웅거리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들뜨고 고조된 감정으로 기도하게 된다. 그리곤 그게 성령이 충만하다고 생각되기 마련이다. 필자도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기도의 응답이 없고 신앙의 힘이 없어지자 그 때의 기도분위기가 과연 성령충만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성령충만한 기도였다면 성경에서 약속한 응답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겠는가? 필자뿐만 아니라 그때 같이 기도했던 친한 교우들의 신앙형편도 별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진실을 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무심한 세월만 흘러갔다.

 

그러다가 필자가 사역을 시작하고 성령이 내주하시는 기도훈련을 시작하면서 그 원인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감정이 격앙된 집회분위기가 곧 성령 충만을 나타내는 증거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 때를 돌이켜보면, 교회에서 뜨겁게 기도할 때는 성령충만한 느낌으로 기쁘고 즐거웠지만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금방 식어 냉랭하고 건조한 마음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감정이 격앙되고 고조되는 분위기는 뜨거운 찬양을 불렀을 때만은 아니다. 쿵쾅거리는 음악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한 나이트클럽에서 막춤으로 온몸을 흔들어댈 때도 기분이 좋지 않은가? 세속적인 음악과 찬송을 같이 비교하는 것은 불경한 일이지만, 음악에 심취한 그 느낌과 집에 돌아와 냉랭해진 기분도 별 차이가 없다.

 

필자가 오랜 기도훈련 끝에 성령충만한 마음의 상태를 알고 나서야, 그때 그 시절의 기도가 성령충만하지 않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성령충만한 상태는 기도할 때보다 기도가 끝나서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성령충만한 상태는 먼저 마음이 기쁘고 평안해진다. 감정이 격앙되지는 않더라도 잔잔한 평안과 넘치는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의 상태가 개인적인 성향이나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서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적어도 서너 시간은 명확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찬양이 흘러나오고 영으로 기도하는 상태가 반복된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머릿속에서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성경말씀이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그러한 마음의 상태가 성령 충만한 상태이다. 그렇지 않고 그냥 감정이 격앙되었다가 30분도 안되어 사그라졌다면 들뜬 집회분위기에 휩쓸린 탓일 경우가 크다.

사실 필자는 침묵기도를 하기 때문에 기도분위기에 휩쓸려 감정이 격앙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렇기에 기도회 때마다 집회분위기를 띄우려고 막대한 재물과 많은 인원을 동원해서 웅장한 악기를 동반하려고 애쓰는 교회의 의도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뜨거운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만으로 족하다. 그러나 감정을 격앙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꼼수에 불과하다. 성령 충만은 성령이 주시는 느낌이지 물리적인 방법에 의해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

그렇다면 성령이 내주하시는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가 관건이다. 성령인 내주하시는 기도를 하려면 만만찮은 기도훈련을 수료해야한다. 그리고 늘 성령의 느낌에 대해 민감하여야 한다. 필자는 아침기도를 시작하면 20~30분 동안은 하나님의 임재를 요청하는 것과 찬양 그리고 감사 이외의 어떤 기도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교적 자유로운 낮기도 시간에는 더욱 그렇다. 이러한 기도방식은 오랫동안 성령의 내주를 간구했던 기도훈련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필자가 성경적인 기도훈련을 시작하면서 먼저 하나님을 찾는 기도만 거의 6개월을 했다.

6개월 동안 틈만 나면 하나님의 이름을 간절히 불렀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려면 간절히 찾으라는 말씀에 의해서이다. 정규적인 기도시간외에도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으니 하루에도 수백 번도 넘었을 것이다. 그러한 습관이 지금의 기도방식으로 굳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는 기도는 찬양과 감사이다.

 

어떤 기도내용도 찬양과 감사를 뛰어넘지 못한다. 필자는 오랜 기도시간동안 다양한 기도내용을 반복하며 요청하곤 했는데, 요청하거나 중보 기도하는 기도방식으로는 성령충만의 감정이 더해지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지만 찬양과 감사를 드릴 때는 언제나 기쁨과 평안으로 영혼과 마음이 가득 차는 것은 느낀다. 그래서 자고난 아침에는 늘 마음이 건조하고 무덤덤하기 십상이라, 항상 기도를 시작하면 약 30분 동안 집중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하고 감사하는 내용을 반복한다. 그러면 언제나 성령이 마음속에 벅차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 다음 다른 기도내용을 요청한다. 악기나 찬양의 도움을 받아 통성으로 기도하는 습관을 들인 이들은 이런 기도방식에 어려움도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침묵기도를 습관으로 들였기에 내면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활동에 민감하다.

 

그렇다면 기도 중에 성령 충만하다는 느낌을 어떻게 알게 되는가? 개인적인 느낌이니까 개개인의 성품이나 성향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개인편차가 좀 있겠지만, 잔잔한 평안과 넘치는 기쁨은 공통점이다. 그렇지만 그보다도 기도에 몰입되고 있다는 신호가 성령 충만한 증거로 칠 수 있다.

침묵기도를 해보면 처음에는 잡념 때문에 기도집중이 되지 않는다. 잡념이 오래되면 이내 졸음이 쏟아진다. 전날 밤 늦게 잤다면 여지없이 졸다가 기도를 마쳐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아침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항상 양치질과 샤워를 꼭 하고 있다. 언젠가 겨울에 친척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찬방에서 기도하다가 감기에 된통 걸리기도 했다. 졸음을 쫓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걸어서 교회에 가서 기도회를 하는 이들은 가는 동안 잠이 깨겠지만 집에서 기도를 하는 이들은 잠에서 깨자마자 기도를 시작하지 말고 샤워를 하거나 밖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잠을 깨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물론 기도훈련을 통해 습관이 되면 조는 일은 거의 없고 잡념이 들어도 쫓아내는 방법을 알게 되므로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기도를 시작해서 찬양과 감사를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머리가 졸려오는 느낌이 든다. 정신집중을 하게 되면 으레 느껴지는 현상인데 머리가 느슨하게 압박받는 현상을 말한다. 이때가 바로 기도에 몰입이 되는 시점으로 이때 다른 기도를 해보면 기도가 술술 풀리면서 성령이 인도하는 기도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상태가 되지 않으면 다른 기도내용에 들어가도 내 힘이나 의지로 기도해야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안함과 기쁨 그리고 정신집중이 되었다고 해서 성령 충만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성령 충만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성령충만한 기도는 적어도 1시간을 기도해야 좋다. 최소한 30분은 찬양과 감사를 드리고 나머지 개인적인 요청과 중보기도 등도 30분이상 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령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기도를 자주 하는 이들이라면 기도를 시작하기 무섭게 금방 기도에 몰입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이들은 30분만 기도해도 성령충만 해진다. 말하자면 기도의 시간보다도 성령에 몰입되는 기도를 하느냐에 달려있는 셈이다. 그러나 성령과 교제하는 기도습관이 덜 되어있다면 적어도 1시간은 기도해야 성령 충만해 질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성령충만한 상태는 기도를 하는 중이 아니라 기도가 끝나서 제대로 알 수 있다. 기도가 끝나서도 무언가 구름위에서 걸어 다니는 듯한 가벼운 느낌이 들기 일쑤이고 머리가 압박받는 현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잔잔한 평안과 넘치는 기쁨, 찬양과 기도가 저절로 입에서 나온다. 무엇보다도 성경말씀이 머릿속에 빼곡하여 수시로 생각나는 것이 성령충만한 확실한 증거이다. 깊게 기도했다면 성령충만한 상태가 서너 시간 지속되는 게 보통이다.

 

그렇다면 하루 종일 성령 충만한 기도를 하려면 어느 방식으로 기도하며 기도분량을 채워야 할까? 성령충만한 기도를 하려면 성경의 권유대로 끊임없이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말이 그렇지 쉬운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틈만 나면 자신도 모르게 기도하는 상태를 말한다. 물론 일상의 삶에서 다양한 일을 하면서 동시에 기도하는 습관은 기도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필자도 처음에는 과연 그런 기도가 가능한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기도훈련이 끝나갈 무렵 끊임없이 기도하는 능력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성령충만한 기도를 하려면 방해받지 않고 깊게 기도하는 시간이 절대로 필요하다. 이런 기도는 앞서 언급했듯이 1시간 이상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가장 좋은 시간은 새벽시간과 잠자기 전의 시간이다. 또한 아침과 밤에 나누어서하는 것이 좋다. 다니엘의 기도처럼 아침, 낮, 밤 시간을 나누어 기도할 수 있다면 최상적인 조합이다. 나누어해야 하는 이유는 기도가 끝난 이후에 성령 충만한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시켜주기 때문이다. 나누어서 할 수 없는 형편이라면 한번이라도 충분히 깊게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도훈련이 안된 상태에서 1시간 이상 기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20~30분부터 시작하여 점차 시간을 늘려 기도하는 훈련을 거쳐야 할 것이다. 시간도 중요하지만, 기도에 몰입하여 집중력을 가지고 기도하는 습관은 정말 중요하다. 아무리 오래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성령에 몰입되는 기도가 아니라면 헛수고이기 때문이다.

낮 시간 때에는 방해받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과 중에 틈틈이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부르며 찬양하고 감사하는 짧은 기도를 반복하는 것도 성령충만을 유지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이렇게 방해받지 않고 기도하는 시간을 정규적으로 하면서 낮에도 틈틈이 기도하다보면 어느새 하루 종일 끊임없이 기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 상태까지 되기까지는 뼈를 깎는 고통스런 과정을 통과하여야한다.

 

성령 충만이 안 된 상태에서 오랫동안 그리고 자주 기도하는 것은 적지 않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 물론 오래지 않아 성령이 내주하는 신호가 간헐적으로 오기 시작하는 데, 이 때 더욱 힘을 내서 기도를 하다보면 자주 그리고 확실한 느낌이 온다. 그 느낌은 평안과 기쁨이 복합적인데, 이때부터는 그 느낌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므로 기도가 덜 힘들어진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한 느낌이 오기 전의 상태가 기도 훈련 중 가장 힘들 때라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