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 그 아름다운 삶
찰스 스탠리 지음 - 최원준 옮김
두란노/1999년 3월/372쪽/9,800원
13.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 : 13)."라는 말씀에 담긴 네 가지 핵심적인 진리를 먼저 살펴보자.
첫째, 성령이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는 분이지 우리를 통제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성령의 인도를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할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의 말과 행동에 항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둘째, 성령은 신뢰할 수 있는 인도자이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므로 신자를 진리로 인도하며, 진리에 따라 인도한다. 성령은 신자들이 진실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현명한 것과 어리석은 것을, 최선의 것과 단지 괜찮은 것을 구분하도록 도와준다.
셋째, 성령은 하나님의 대변인이다. 그리스도처럼 삼위일체를 구성하는 한 존재인 성령은 기꺼이 하나님의 권능에 머리를 숙인다.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모든 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성령은 자의로 말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당신의 자녀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신다(행 11 : 12)."
넷째, 성령은 말씀하신다. 나를 포함한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체험한 것을 놓고 볼 때, 성령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오늘도 신자들과 교통하고 계심이 분명하다. 성령은 기꺼이 우리와 교통하기를 바라시며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나는 항상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지하지는 못했다. 성령께서 나를 인도하는 일에 관심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내게는 없었으며, 매일매일 내가 처리해야 할 일들에 대해 하나님이 일일이 신경을 쓰실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루는 낯익은 성경 구절 하나가 나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벧전 5 : 6~7)." 갑자기 이 말씀이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염려를 당신께 맡기라고 하셨다면 그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 : 31-32)." 이 얼마나 큰 위로인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가장 하찮은 부분까지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직업, 집, 자녀들, 휴가, 우리의 교회, 우리의 재정 상태, 심지어 우리의 취미에까지 신경을 쓰신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게도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만큼 중요한 존재들이다.
14. 중립의 원칙
변화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항상 너무 빠른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잘못된 것이 없으면 고칠 이유도 없다.”는 철학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있다. 변화란 결정을 의미하는데, 우리가 내린 결정은 수백 세대에 영향을 끼친다. 지난 2년에 걸쳐 우리 교회에 대해 하나님이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신지 알아내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러는 가운데 성령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계심을 나는 여러 번 깨달을 수 있었다. 큰 결정뿐만 아니라 조그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도 성령은 우리와 함께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내용보다 우리가 당신께 기꺼이 순종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완벽하게 조화될 수 있는 심령과 마음을 소유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궁극적 바람인 것이다. 그러므로 중립적인 심령이란 자신의 상처와 임무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심령이다.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찾고자 자신의 이해 관계는 뒷전으로 미루고 항상 영광의 면류관을 향해 나가는 심령이다. 성령은 훌륭한 전달자이다. 그러나 그가 말씀하시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해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가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의 응답을 듣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중립적인 자세를 갖게 될 때까지, 결국은 순종하게 될 때까지 그분은 기다리신다.
15. 표적 1: 평안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나타내시고 신자들에게 그것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해 몇 가지 표적을 보이신다. 첫 번째는 평안의 표적이다. 성령이 함께하심을 첫 번째로 알려 주는 것이 바로 이 평안의 열매(성령의 9가지 열매 중 하나)이다. 내적 평안이 어떤 것인지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의 유, 무는 쉽게 알 수 있다. 기쁨처럼 그것은 단순한 감정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며 분명 환경도 초월하는 것이다. 저녁에 잠자리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서 실제로 모든 것이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평안이다. 우리의 내면이 차분하게 정화된 상태, 그것이 평안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빌립보서 4 : 6~7을 좋아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옳지 않은 영향력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파고들 때 우리는 불길한 예감이 들고 주저하게 된다. 항상 그 원인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 해도 우리는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만은 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상식적인 이해의 수준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적으로 말해 평안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때때로 납득이 안될 때가 있다. 평안은 인간의 이해를 거부한다. 성령을 통해 주어지는 평안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고 있을 때 그에 대한 확신을 줌으로써 우리가 안심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환난으로부터 보호하기를 원하신다.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를 무시하면서까지 우리에게 옳은 일을 하도록 강요하지는 않으신다. 우리가 실수할 수 있는 자유를 잃어버리는 경우는 결코 없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평안이 있는지를 순간순간 민감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령의 음성을 더 많이 듣고 그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마음 자세를 더욱 확고히 하면 할수록 우리는 성령과 더욱 친숙해질 수 있다. 우리의 주의를 끌려고 하는 다른 음성들로부터 성령의 음성을 구분하는 일이 더욱 쉬워질 것이다. 진정으로 성령을 찾기 시작할 때, 성령이 주시는 평안의 유무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할 때, 우리는 성령이 항상 우리 안에 계신다는 사실에 몹시 감격하게 될 것이다. 성령이 기꺼이 우리를 인도하고자 하신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을 확신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 사랑은 우리 삶의 구석구석, 아주 조그만 부분까지 미치는 그런 사랑이다.
16. 표적 2: 양심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 2 : 14~15)." 이처럼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당신의 도덕적 강령을 새겨 놓으셨다. 그것은 때로 내면으로부터 주저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식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는 단지 평범한 죄 의식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선한 일을 할 기회가 찾아왔을 때 우리 내면의 무언가가 그것을 하도록 부추기기도 하는데 그 무언가가 바로 양심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양심에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주님을 영접했을 때 원래부터 갖고 태어난 우리의 근본적인 도덕 강령은 새롭게 거듭나게 되고, 진리의 영이 여러분의 심령에 자리를 잡으시는 것이다. 성령은 즉각적으로 우리의 양심을 재프로그램하는 일을 완수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반면에 우리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하는 일반적인 지각력을 갖기에 앞서 더욱 구체적이며 완전한 진리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갱신하는 작업도 시작한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예배에 참석할 때마다, 성경 구절을 암기할 때마다, 또는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이 갱신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양심은 성령이 사용하는 주된 도구 가운데 하나로서 성령은 그것을 통해 신자들과 교통하신다. 특별히 세 가지를 들자면, 첫째, 즉각적인 경고 장치로 양심을 사용하신다. 둘째, 정확한 평가자이며 판단자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성령은 양심에 힘을 불어넣는다. 셋째, 판사나 배심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성령은 양심에 힘을 불어넣는다. 양심의 경고와 가르침을 무시하지 말라. 만약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17. 표적 3: 하나님의 말씀
성령이 당신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세 번째 도구는 성경이다. 하나님 아버지가 인간에게 보내신 전령인 성령이 신약과 구약에 담겨 있는 영원 불변의 진리를 우리에게 전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울 것이 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첫째로, 어떤 것에 대한 성령의 생각을 알고 싶다면 성경을 읽으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조금의 이해도 없이 하나님의 평안이나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다. 둘째로,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이 금한 곳으로 인도하는 일이 결코 없다.
성령은 하나님의 생각과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 끝없이 애쓰고 계신다. 신자들의 마음과 심령을 열어 우리로 하여금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생각을 이해하도록 한다. 어떤 성경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와 놀라운 방법으로 여러분에게 영향을 끼친 적이 있는가?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 속에서 성경을 펼친 순간 여러분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딱 들어맞는 구절을 발견해 본 경험이 있는가? 이런 일은 결코 우연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성령이 역사하신 것이다. 성령이 우리의 마음을 밝히시고,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셨으며, 그 당시 우리에게 필요한 진리를 우리 심령에 불어넣어 주신 것이다. 성령이 행하는 이러한 현현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한다. 매일 조금씩 읽어 나가라. 그래야만 성령이 아무 제약 없이 여러분의 생각과 심령에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18. 표적 4: 지혜
성령의 인도하심을 나타내는 네 번째 표적은 지혜다. 성령은 현명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해 지혜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현명하게 살기를 거부하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 : 15~18)."
지혜는 원칙과 약속,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 사이에 있는 틈새를 메꾸어 준다. 이 세 가지 모두를 고려하고 난 뒤 “하나님,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것입니까?”라고 묻는 것이 바로 지혜인 것이다. 지혜는 일반적인 하나님의 뜻을 우리 개개인의 독특한 상황에 딱 들어맞도록 하기 위해 성령이 종종 사용하는 도구이다. 내 경우에 현명한 것이 여러분에게는 현명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성령은 지혜를 사용해 우리를 곤경으로부터 건져 주신다.
우리는 세 가지 측면에서 예리한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 첫째,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롭게 행하는 것인가? 둘째,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롭게 행하는 것인가? 셋째, 장래 계획과 꿈에 비추어 볼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롭게 행하는 것인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지혜로워야 한다! 우리에게는 맹인처럼 살아갈 여유가 없다. 즉 다가오는 모든 것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이하며 살 수 없는 것이며 그래서는 안 된다. 가능한 한 멀리 내다보고 앞에 닥쳐올 고난에 대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악한 것을 피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자기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갈등을 일으킬 때면 우리는 쉽게 하나님의 뜻을 무시한다. 우리는 시간만 충분하다면 어떤 것이라고 정당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의 그런 행동은 성령을 슬프게 만드는 것이며 결국 자신을 재난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우리의 심령이 어떤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할 때 우리는 지체없이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길게 끌면 끌수록 우리의 변명은 길어지게 되며, 변명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에게 다가올 위험은 커지는 것이다.
성령의 경고는 선과 악이 구분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제 어려움이 있는 지점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적어도 아직까지는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곳에서부터 성령의 경고는 시작된다. 우리를 사랑하는 성령은 우리가 벼랑 끝에 다다르기 전에 경고하신다. 때로는 내가 벼랑에 대한 생각을 하자마자 성령의 경고가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하다! 성령의 책망을 회피하지 말라.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 주는 마음속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아슬아슬한 장난을 즐기지 말라. 그러면 고통과 죄악, 후회로부터 해방될 것이며, 죄악으로 인해 인간 관계가 깨어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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