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 그 아름다운 삶
찰스 스탠리 지음 - 최원준 옮김
두란노/1999년 3월/372쪽/9,800원
2부 내면을 들여다보라 - 신자들 안에서 행해지는 성령의 역사
9. 창조주의 권능
성령은 신자들을 참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어떤 방법으로든 당신의 권능을 발휘하신다. 성령은 여러 가지 방식을 택하는데 그것이 어떤 방식이 되었든 그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목적은 그 한 가지뿐이다. 성령은 그 한 가지 일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보내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목적이 무엇인지 이해하면 우리의 삶을 통해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그런 체험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성령을 우리 뜻대로 움직일 수는 없다. 믿음으로도 못하고, 기도로도 안 된다. 그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그의 권능을 이용하려는 노력을 멈추고 대신 그가 우리를 이용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성령의 권능은 두 가지 채널을 통해 신자들의 삶 속에 나타난다. 하나는 성령의 은사이며 또 다른 하나는 성령의 열매이다. 이 관계가 종종 간과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성령의 권능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많은 혼란을 들 수 있다. ‘권능’ 또는 ‘힘’이란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쉽게 소경이 눈을 뜨게 된 일, 예수님의 부활, 재림 등을 연상한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놀라운 사건이나 기적 같은 일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의 권능이 인간들 위에 임하는 목적은 단 한 가지, 신자들을 참된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으로 만드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를 통해 나타나는 권능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만드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하나님의 권능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이끈다. 둘째, 하나님의 권능은 신자들이 조화를 이루며 함께 일할 수 있도록 그들 사이에 유대 관계를 형성해 준다. 셋째, 하나님의 권능은 죄악으로 인한 파멸로부터 신자들을 보호한다.
성령은 우리를 유능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만들고 싶어하신다. 성령은 우리를 통해 당신의 권능을 나타냄으로써 그 목적을 이루고자 하신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두 가지가 준비되어야 한다. 첫째, 우리에게 기꺼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둘째,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어야 한다. 일단 이 두 가지가 준비되었다면, 이제 할 일은 주의를 기울여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권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이전에는 두려워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들을 하게 될 것이다.
10. 은사를 베푸는 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내에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우리가 받은 성령의 은사가 어떤 것인가에 따라 정해진다. 성령의 은사는 특별한 능력을 의미한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신자는 그 받은 은사에 합당한 일을 담당할 때 발군의 실력을 보인다. 성령의 은사나 천부적 재능은 모두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의 은사를 신자들에게 고르게 나누어 주신 뒤 그들간에 네트웍을 구성해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셨다. 그래서 모든 신자들은 저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내에서 한 지체로서 담당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으며,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 12 : 4~11)."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세 가지 진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성령의 은사는 성령을 나타낸다. 둘째, 각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심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다. 셋째, 성령은 그 뜻대로 은사를 나누어 주신다.
그렇다면 내가 어떤 은사를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가를 보면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를 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없어서는 안될 일원이다. 여러 부서들을 돌아다니며 열심을 다해 우리에게 맞는 일을 찾으라. 이렇게 열심히 사는 것 또한 성령 충만하여 아름다운 삶의 한 모습이다.
11.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라
하나님의 종 된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하나님의 방법을 택하고 있지 않은 이들이 많다. 결국 실패는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 : 6)."
하나님의 일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교회에 참여해 봉사하는 일만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일의 전부는 아니다.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3 : 23~24)." 하나님은 세상적인 일과 종교적인 일을 구분짓지 않으셨다. 유감스럽게도 사탄의 꾀임에 넘어가 우리의 삶 속에서 세상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서로 싸우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라는 생각을 갖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의 일을 행하기 위한 주무대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금의 자리에 세워 놓으신 데는 목적이 있다.
하나님의 일을 행할 때 사람들은 두 가지 접근 방식을 보인다. 첫 번째 방식은 인간적인 또는 육신적인 방식이라 하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을 맡기셨을 뿐이고 그 일을 해내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다가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방식으로 당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을 내리시지 않는다. 육의 생각을 좇아 행하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두 번째 방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리고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그 일을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이 하나님의 방식으로 행해질 때 그 곳에서는 명백한 성령의 표적이 나타난다. 인간의 영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뿐이다. 육신의 생각을 좇아 행해진 일은 우리의 감정 그 이상의 더 깊은 부분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런 일은 겉보기에는 매우 인상적이나 그것으로 인해 변화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감정을 휘저어 놓을 수는 있어도 마음을 변화시키지는 못하는 것이다!
종종 하나님의 방식으로 오인되는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도인데, 단순히 기도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식으로 행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육의 일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내용의 기도를 나는 많이 들어 왔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도움 없이 혼자서 죽도록 일하고 난 뒤 두 손을 들고는 “포기했어요. 하나님께서 내 대신 이 일을 감당하소서. 나는 더 이상 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 일종의 자포자기이다. 마지막으로 “내버려둬.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실 거야.”라는 식의 접근 방식도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방식은 무엇일까? 나는 성경을 연구하던 중 하나님의 방식으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의 특징 다섯 가지를 발견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으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둘째, 그들에게 있어 하나님은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시는 유일한 공급원이다. 셋째, 그들은 성령이 함께하신다는 증거를 찾는다. 넷째, 그들은 스트레스로 쓰러지는 일이 없다. 다섯째, 그들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는 것보다 그분께 감사하고 그분을 칭송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 약속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만큼 그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없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궁극적 표현이다.
성령을 좇아 행할 때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증거가 보일 때 나는 일종의 흥분을 느끼고 내 어깨 위를 짓누르던 중압감도 사라진다. 주위의 사람들을 이용하기보다는 그들을 마음껏 사랑하게 되고, 내 기도는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 차게 된다. 또한 전보다 적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내가 끝내지 못한 일에 대한 걱정도 없다. 이러한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나 자신의 힘을 의지해 살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쉽다.
12. 성령 세례
나는 성령 세례에 대해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살펴보기 위해 성경을 뒤져보다가 두 가지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첫째로, 성경은 성령 세례에 대해 분명하고도 일관된 설명을 하고 있어 혼란이 야기될 이유가 전혀 없다. 둘째로,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일에 대해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내용과 성령 세례를 체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이 모든 혼란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분명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확신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는 회심과 성령 세례간의 시간적 간격이 혼란의 주원인이다. 어떤 이들은 그런 시간적 간격이 있는 것이 정상적인 형태라고 믿기에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해 힘쓰도록 신자들을 고무시킨다. 사도들도 나중에야 성령 세례를 받았고, 바울도 그랬으며, 세례 요한의 제자들도 그랬다. 그 당시로서는 그런 시간적 간격이 필요했다. 그것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까지는 성령이 강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예정하신 순서대로 사건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있기 이전에 구원을 받은 이들의 성령 세례는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신은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까, 아니면 받지 못했습니까?”라는 질문이 이분법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내에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성령의 역할 중 하나는 신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교회 내에서 화합과 단결을 이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라. 신자들이 성령 세례를 받은 이들과 받지 못한 이들로 구분되어 있다는 생각을 뒷받침해 줄 만한 기록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이런 식의 사고는 영적 은사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대해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모든 내용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다면 우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성령은 우리 속에 거하시며 우리를 가득 채우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충만하여 아름다운 삶을 경험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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