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의 힘은 고난을 통해 찾아온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양치기소년 이야기를 잘 알고 계실 것이다. 하도 거짓말을 많이 해서 정작 늑대가 와서 영들을 물어갔을 때는, 정작 동네사람들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목회자들로부터 듣게 되는 순종이라는 말이, 어쩌면 양치기 소년의 경우와 비슷하게 생각이 되어서, 오늘 칼럼에는 그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은 사무엘이 사울에게 한 말이다. 사울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든 전리품을 불에 태워 없애라고 하였는데, 사울은 아각왕의 소유인 가축들 중에서 좋은 양들을 자기 소유로 빼돌리고 가치 없는 짐승들만 죽여 없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고 하시자, 사울을 찾아가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제사를 드리는 행위보다 낫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을 목회자들이 너무 남발을 한다는 것이다.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이 성경말씀을 들이대고 복종을 강요하는 도구로 써먹곤 하다. 그렇다면 목회자가 하는 말이 죄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된다는 뜻인가? 교회에서 목사를 ‘하나님의 대언자’나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고 있으니, 자신이 하나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기 일쑤이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하나님의 자녀는 종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목회자를 하나님의 대언자라로 말씀하신 적이 없으시다. 성경에서 말하는 대언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신 것이다.(요일2:1) 그렇다면 목회자들이 죄다 예수님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가지고, 말하는 목적과 동기와 속뜻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할 때, 비로소 성경적으로 권면하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언자라고 지칭한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그런데 이 호칭을 남발하고 있으며, 스스로 하나님의 대언자라고 밝히며 복종을 강요한다면 가증스러운 일일 뿐이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히6:8~10)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대언자’이신 예수님의 순종의 근원은 어디에서 출발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드높은 신분이셨지만, 스스로 낮고 천한 인간으로 오셔서 온갖 고난을 자초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즉 고난은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순종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고난이다. 초대교회시절에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재산을 뺏기고 고향을 등지고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지는 것은 물론, 붙잡히면 끔찍한 고문 끝에 목숨을 잃는 일도 허다하였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불행한 삶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좇는다면 많은 돈과 시간,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할 것이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도 참고 견디며 묵묵히 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전도를 하면서 듣게 되는 냉대와 조소, 심지어는 욕설까지도 달게 들어야 할 판이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선호하는 모든 것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고 안락한 삶이 전혀 보장되지 않더라도 따라나서야 할 것이다.
즉 성경적인 순종의 과정은 필히 고난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당신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와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필자가 말하는 고난은 교회에서 요구하거나 강요하는, 다양한 종교적인 봉사와 전도행위 혹은 막대한 헌금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신앙행위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성경에서 말한 적이 없다. 그런 예배행위나 희생적인 신앙행위는 교회에서 관행적으로 시행하는 종교적인 관습이거나 담임목사의 요구사항일 뿐이다.
성경에서 순종을 말하는 중심에 기도가 있다. 성경에서 요청하는 기도를 하려면 적지 않은 고난을 감내해야 한다. 왜냐면 성경의 기도방식은 새벽기도회나 교회에서 요구하는 기도회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부르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실행에 옮기려면 엄청난 고난을 받아들여야 한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습관을 들인 사람은 죄다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접은 사람들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고뇌와 눈물과 갈등이 있었겠는가? 그게 바로 고난인 셈이다. 그 고난을 통과해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을 배워 완전한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다. 예수님은 그런 고난에 순종하여 완전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면,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서 맞닥뜨리는 데서 오는 필연적인 고난을 참고 견디면서 기꺼이 순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힘이나 의지, 노력이나 땀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성령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데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즉 고난은 참고 견디는 힘이 바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영적 습관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제껏 당신이 담임목사가 권면하는 예배의식이나 희생적인 신앙행위에 순종하면서 겪은 고난 때문에, 천국의 자격이 얻어지고 상급이 엄청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어서 꿈을 깨기 바란다. 천국은 당신네 교회의 담임목사가 건설한 곳이 아니며 상급을 줄만한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고난은 담임목사가 말하는 희생적인 종교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며, 그 힘의 공급원이 바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고 유지하는 것에 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은 끔찍하고 혹독한 고난을 겪었지만, 쉬지 않고 기도하는 기도의 습관으로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누렸기 때문에 참고 인내할 수 있었다. 어떤가? 당신도 그런 영적 능력을 얻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싶다면, 어떤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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