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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꽃 4. - 양귀자

Joyfule 2015. 10. 13. 00:54

 

단편소설:

숨은꽃 4. - 양귀자

 

    숨은꽃:만남

     

처음에는 시야를 부옇게 가리고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었다.

눈을 뜨고 나서 한참 동안은 내가 누워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어 멍한 상태였으므로 그것이 만개한 벚꽃이었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창을 온통 가리다시피 한 벚꽃 무더기와 한 짝짜리 이불장, 손잡이가 고장난 텔레비전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늦잠을 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머리의 무게가 천근만근인 양 고개를 들어올리기가 몹시 힘이 들었다. 어젯밤 김종구의 집에서 돌아온 시간이 몇 시였던가. 아무래도 자정은 넘지 않았을 것이란 추측만 있을 뿐 정확한 시간은 알 수가 없다.

김종구는 나를 경운기로 여관까지 데려다 주었다. 물론 황녀도 함께였다. 우리는 경운기가 낼 수 있는 가장 최대의 속력으로 유쾌하게 시골길을 달렸었다. 깊이 잠든 산과 들이 경운기의 털털거리는 엔진 소리에 화들짝 잠을 깨어 미풍에 가지와 잎사귀를 흔들던 모습이 생각난다. 공기는 달콤했고 구름에 숨었다 나타나는 달은 신비로웠다.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지만 달빛만이 따르는 적막한 시골길을 경운기로 달리던 어젯밤을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가 번져 온다. 황녀는 흥에 겨워 시종 노래를 불렀었다. 공동묘지 앞을 지날 때는 귀신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며 김종구까지 흘러간 유행가들을 합창했었다. 그들과 함께 바라보는 공동묘지는 전혀 음산하지 않았다. 그것은 잘 다듬어진 둥근 나무들로 가득 찬 아름다운 정원처럼 보였다.

삼거리의 느티나무 아래 나를 내려놓고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도 선연히 떠오른다. 어둠 속으로 경운기가 사라진 뒤에도 얼마 동안 엔진 소리와 황녀의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이 들려왔었다. 방에 들어와서도 나는 멀어지는 노랫가락을 들었다. 내 마음의 귀는 그들이 다시 공동묘지 앞을 지나 귀신사 근처의 자기 집에 다다를 때까지의 시간 동안 내내 그 소리들을 듣고 있었다.

소리가 스러질 무렵, 아마도 나는 불편한 베개에 얼굴을 묻고 뒤척이다 잠이 들었을 것이었다. 아니, 잠들기 전에 나는 하나의 옛 기억을 떠올렸었다. 십오 년 전의 김종구를 말해 주는 네 번째의 삽화. 이 삽화에는 온통 안개만 자욱하게 묻어 있었다.

그날은 가을 들어 가장 짙은 안개가 몰려온 날이었다. 밤물을 보러나간 십여 척의 배가 채 들어오기도 전에 이미 안개는 욱욱거리며 삽시간에 연안을 휩싸고 말았다. 그 섬에 살면서 나는 기척도 없이 숨어 들어오는 안개의 너울을 여러 번 보았었다. 비릿한 안개 냄새, 거대한 동굴에 갇힌 듯한 그 막막한 느낌. 바다의 안개는 육지의 안개와는 달리 또 얼마나 두텁고 깊던가.

잠깐 사이에 시야는 차단되고 눈감고도 다니던 뱃길을 삼십 센티미터 앞조차 내다볼 수 없는 위험한 길로 만드는 것이 바다의 안개였다. 바로 코앞에 선착장을 두고도 배 댈 곳을 못 찾아 빙빙 돌며 쩔쩔매는 것도 군데군데 자리잡은 자그만 돌섬들에 부딪혀 배가 전복되고 마는 사고도 모도 안개바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밤에 안개를 만나면 마을에서는 안개 길잡이를 벌였다. 길을 잃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배들을 불과 소리로 인도하는 길잡이판은 주로 마을 청년들에 의해 주도되곤 했다.

그날도 안개가 심하다는 이장의 방송이 있었고 마을 청년들은 모두 선착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내 한쪽에서는 석유를 먹인 솜뭉치에 불을 댕겨 흔들어 대고, 한켠에서는 징이며 꽹과리를 동원해 두드릴 수 있는 한 힘껏 두들겨 대는 길잡이 잔치가 벌어졌다.

거기다 돌아오지 않은 배의 가족들이 총출동하여 식구의 이름을 부르거나 문자로 기록해 낼 수 없는 괴성들을 질러 대기 시작하면 좁은 선착장은 잠깐 사이에 용광로처럼 들끓게 마련이었다.

타오르는 횃불과 징, 꽹과리의 요란한 소리에 못지않게 가족들이 있는 힘을 다해 내지르는 육성 또한 안개를 뚫고 먼 바다까지 도달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 안개 속에 길을 잃고 헤매는 배들은 어디선가 들려 오는 아내와 자식의 목소리만은 반드시 가려 듣게 돼 있다는 것이었다.

저녁밥을 먹고 난 뒤 나는 자취집 마당에서 소란스런 선착장을 내려다보았다. 꽤 높은 지대에 있었던 자취집에서는 선착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당에 나오기 전에는 틀림없이 동네 어느 집에 왁자한 놀이판이 벌어진 줄 알았다. 그만큼 안개는 갑작스러웠고 생명을 구하는 횃불의 난무와 소리의 혼란은 축제일의 그것과 너무 흡사했다.

 

아른아른 흔들리는 수많은 횃불들과 목청이 터져라 불러 대는 절박한 외침이 안개바다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안 나는 겉옷을 찾아 입고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지만 배들이 무사히 포구에 닻을 내리는 순간에 나도 거기 함께 있고 싶었다.

선착장에 가까이 갈수록 소리의 혼란은 더욱 극심해져서 무슨 소리들이 한데 섞이어 들려 오는지 전혀 구별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마을의 스피커까지 합세해서 바다 쪽을향해 최대한 볼륨으로 조미미의 노래를 퍼부어 대고 있었기 때문에 징소리, 꽹과리 소리, 울부짖음 같은 고함 소리,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불러 제끼는 스피커 유행가 가락의 합성음은 귀를 막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냥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꿈 많은 내 가슴에 봄은 왔는데, 봄은 왔는데...... 애절한 호소 속에 시들어지던 그 구성진 노래는 지금도 내 귓전에 가늘게 들려 온다.

그때도 나는 소리의 숲은 헤치고 간신히 그 가사를 가려 들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득한 안개에 사로잡혀 어디쯤에선가 배의 키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느라 이마에 구슬 같은 땀이 맺혀 있을 어부들은 아스라이 먼 곳에서 들려 오는 ‘봄은 왔는데, 봄은 왔는데’에 온 희망을 걸고 한번 더 힘을 내어 다시 시작해 볼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래서 어느 한순간 모든 소리들을 중단시킨 채 바다 저편에서 행여 구조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들리는지 가늠하는 그 긴장된 시간에는 나 또한 숨도 크게 쉬기 힘들었다.

 

그날 선착장의 흥분과 열기는 유별났다. 안개가 워낙 짙었고, 배들이 먼바다에 있을 때부터 안개가 포위해 들어온 까닭에 그날의 길잡이는 한층 많은 소리와 불빛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좀처럼 플래시 신호도 보이지 않았고 응답하는 구조의 외침도 들려 오지 않아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애를 태우는 중이었다. 그럴수록 횃불은 거세게 타올랐고 징과 꽹과리는 깨질 듯이 두들겨졌다.

그리고 나는, 그 가운데서도 유독 안간힘을 써가며 징을 두들겨 대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얼굴의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오도록 신들린 사람처럼 마구 징을 두들기느 남자의 곁으로 다가가던 나는 한순간 멈칫했다. 바로 김종구였다. 굳게 닫힌 입술, 뚫어질 듯 안개바다를 노려보는 두 눈, 제 가족 아무도 바다에 나가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저처럼 전심전력으로 징을 두들기고 있는 이는 김종구였다.

소리의 혼란 속에서 나는 하염없이 그런 김종구를 바라보았다. 이제까지 보아 왔던 그의 얼굴 중에서 그때처럼 진지한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이마를 적시는 땀방울은 횃불에 비쳐 다이아몬드의 광휘를 내고 있었고, 신명 들린 어깻짓은 몰아의 자세가 흔히 그렇듯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그가 내려치는 징소리는 땅 밑에까지 그 울림이 전해질 만큼 폭넓은 진동음을 가지고 있어서 주위의 다른 소리들을 다 제치고 저 멀리 바다로 내달리고 있었다. 김종구는 마치 자신의 징소리가 달려가야 할 길을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어디로 어떻게 소리를 보내야 먼바다의 길 잃은 배들한테 닿을지 그만은 알고 있다고 나는 믿었다.

나는 정말로 그의 징소리가 안개 한 겹을 뚫고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을 본 느낌이기도 했다. 이 느낌은 너무나 생생한 것이어서 그 순간 나는 분명히 두터운 안개 장막이 찢어지는 비명을 들었었다.

그 밤, 김종구는 곁에 있는 나를 보지 못했다. 그는 다른 어떤 것도 보지 않고 있었다. 그는 단지 바다만 보고 있었다. 들어가서 보는 것만큼만 보여 주는 바다, 어느 정도의 깊이를 넘기고 나면 수억만 년 침잠해 있는 심연의 세계도 가지고 있는 바다, 김종구는 오로지 그 바다만 보며 열심히 징을 내려치고 있었다.

그 징소리는, 안개 장막을 찢고 먼바다로 내닫던 그 징소리는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을 때까지도 한결같은 폭으로 울고 있었다. 내가 선착장을 떠날 무렵에는 가족들과 몇 명의 마을 청년만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초저녁부터 시작된 길잡이에 지칠 대로 지쳐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갔다.

 

안개는 여전히 두텁고 칙칙했지만 배들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말했다. 아마도 배들은 초저녁 일찌감치 근처 무인도로 대피했기가 십상이라고, 그러니 너무 걱정할 것은 없다고 서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김종구는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내 방에 누워 끊임없이 들려 오는 그의 징소리에 잠을 설쳤었다.

모든 소리와 횃불은 새벽이 되어서야 중단되었다. 마침내 배들이 돌아온 것이였다. 나는 징을 내던지고 지친 걸음으로 돌아가는 김종구의 모습을 되찾은 새벽의 정적 속에서 떠올렸다. 그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다음날 아침, 간밤의 지독한 안개를 화제삼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누구는 횃불에 손을 데였고 누구는 완전히 목이 잠겨 숨도 못 쉴 지경이라는 말들은 갖가지로 들려 왔지만 마지막까지 울려 대던 김종구의 징소리에 관한 언급은 스치는 말로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그를 본 사람이 나 혼자이기나 한 것처럼, 그 영혼을 울리는 징소리는 아예 있지도 않았다는 듯이.

그토록이나 집요하고 그토록이나 땅과 바다를 울리던 그 징소리를 정말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이었을까. 한켠에 우뚝 서서 새벽까지 쉬임 없이 징을 울려대던 그의 모습을 정말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이었을까.

 

길 잃은 배는 돌아왔지만, 길 잃은 배를 이끌던 김종구와 그의 징소리는 두터운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만 이 일에 대해 나는 오랫동안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대체 그는 어디로 숨어 버렸을까. 아니, 사람들은 대관절 그를 어디에 숨겼을까......

그리고 십오 년 후에, 그는 나한테 나타났다가 내가 잠들 때까지 경운기의 엔진 소리와 풍상에 젖은 노랫가락을 들려주며 사라져 갔다. 하지만 이렇게 잠에서 깨어나 생각해 보면 어제 있었던 일들이 실제로 내게 일어난 일인지 나는 정말 믿을 수가 없다. 황녀의 단소에 젖어 한 줄기 눈물을 흘리던 그 김종구를 실제로 내가 보았던가.

나는 일어날 생각도 없이 자리에 엎드려 눈물 이후의 시간들을 더듬어 본다. 하지만 그 이후의 시간들은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다. 그때부터 난 술잔에 입을 대었고, 덕분에 그 뒤론 더 이상 기름으로 맨송맨송 떠 있지는 않았던 까닭이었다. 지금 이렇게 머리는 아프지만 이 두통이야말로 어젯밤에 실재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나는 여관 앞에 약국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두통을 참고 견디는 일처럼 미련한 짓이 없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우선 약부터 사먹을 일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늘어진 벚나무 가지 사이로 내다보이는 하늘이 충충하다. 비가 올 것 같다. 나는 습기를 머금어 무겁게 축 처진 벚꽃 한 송이를 따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나이가 들면 하늘을 많이 보게 돼요. 젊어선 땅만 쳐다보고 살지요. 이제는 땅을 보더라도 풀이나 나무, 꽃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그런데 더 관심이 간답니다. 어느 땐 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길을 가다가도 우뚝 멈춰 서곤 하지요. 생각해 보세요. 산을 뭉개고 길을 뚫기 위해 산에 갔다가도 행여 풀포기를 밟을까 봐 비칠거리는 이 김종구 꼬락서니를.”

김종구는 풀이나 꽃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꽃송이 하나를 창틀에 얹어 놓고, 약국에 다녀와서 짐을 꾸리고 있을 때도 김종구의 목소리는 들려 왔다.

“내가 사람을 사귀는 방법은 간단해요. 냄새로 구분을 해버리지요. 진짜 인간의 냄새하고 가짜가 풍기는 악취하곤 엄청나게 다르거든요. 난 금방 알 수 있어요. 피해도 소용없어요. 내 코가 더 빠르니까.”

계산을 마치고 여관을 나와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가 앉아 있는데도 김종구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소설을 팔아 밥을 먹는다구요? 아니, 아직도 그런 것을 읽는 사람이 있답니까? 대체 무슨 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소설인가요? 작가 선생님, 이런 말은 어떤지 한번 들어 보세요. 하나님이 인간의 눈을 만들 때 흰자위와 검은자위를 동시에 만들어 놓고도 왜 검은자위로만 세상을 보게 만들었는지, 그거에 대해서 선생님은 혹시 아십니까? 아, 이거야 나도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긴데, 그게 말예요, 어둠을 통해서 세상을 보라는 신의 섭리라는 거예요. 세상을 보는 일이야 우리 같은 떠돌이들말고 선생님 같은 분들한테 떠맡겨진 숙제 아닙니까. 그러니 애시당초 편하게 앉아서 헤드라이트 비춰 놓고 들여다보듯 그렇게 수월한 일은 아닐 거리 이 말씀이죠. 흰자위 놔두고 검은자위로 세상을 보랄 적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삼거리 느티나무 아래서 시내로 나가는 차편을 기다리고 있을 때 마침내 후드득 빗방울이 돋았다. 바람에 밀려가는 구름장들을 올려다보지만 저 구름이 얼마나 많은 비를 숨기고 있는지는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낮은 하늘과 습습한 바람 사이에서 나는 숙자의 등에 매달려 있던 동그란 눈의 어린아이를 본다. 낮선 사람이 말을 걸면 제 고모의 등에 납작 엎드려 한없이 까맣고 맑은 눈만 소리 없이 깜박거리던 김종구의 아들. 그 아들에 대해 왜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가.

참고 참았으니 끝까지 묻지 말았어야 했을 것을. 그러나 어젯밤에 나는 기어이 그의 아들에 대해 묻고 말았었다. 김종구는 한동안 멍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그 애를, 그 애의 모습을 기억하세요?” 하고 되물었다.

“다섯 해를 살고, 그것도 많이 살았다고 하나님이 데려가 버렸어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그뿐이에요. 자식 하나 없이 죽어 버린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죠. 그래요. 아직은 그게 끔찍해요. 난 이 세상에 자식 하나는 남겨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가끔씩 하늘에서 굽어보면서, 내 자식아, 뭐가 걱정이냐, 아무 걱정 말고 그런 덜 떨어진 놈들은 좀 패줘라, 이렇게 일러도 주고 그럴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 자식을 데려가 버렸어요. 정말 끔찍한 일이지요......”

버스가 왔다. 가을에는 단풍의 터널을 이루는 국도를 버스는 쉬엄쉬엄 달렸다. 사람들은 우산을 받쳐 들고 아무 데서나 손을 들었다. 지금은 푸른 터널인 이 길, 황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린 다음달에 떠나요. 이어서 김종구의 투덜거림도 들려 온다. 제길, 뻔한 소리를 하고 자빠졌네.

 

초파일이 지나면 그들은 여길 떠난다. 어디로 갈지는 그들도 모른다.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그를 만났다는 사실조차 의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그를 만났음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나는 다시 소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상행 열차는 한 시간 뒤에 있었다. 그렇게 되면 어두워지기 전에는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차표를 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좀 어이가 없기는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즉시로 약국에 들러 두통약을 사먹고 끼니를 애웠을 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시내로 나와 버린 것이었다.

금산사까지 산책삼아 다녀올 수도 있는 일이었고 하다못해 기념품 가게에서 무언가를 사서 딸아이에게 갖다 줄 생각쯤은 했어야 했다. 어두워서 서울에 도착한다 해도 걱정할 일은 없었고 어쨌거나 오늘 밤 안으로 집에 들어갈 수 있기만 하면 되는데도 나는 골똘한 생각에 떠밀려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었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김종구에 대해서, 나는 이제 그만 머리를 뒤적거리기로 했다.

좌석권도 겨우 얻은 것이어서 불평을 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열차에 올라 확인해 보니 내 자리는 맨 뒤쪽, 끊임없이 사람들이 드나드는 출입문 바로 옆이었다. 그것도 창가 좌석이 아니어서 홍익회 밀차라도 지나가면 옆으로 몸을 비켜 주어야 할 그런 상황이었다.

차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들어간 다방에서 나는 좌석을 구하지 못해 입석표를 끊은 사람을 보았었다. 그들은 말하자면 나보다 일 초 늦게 매표구에 도착한 사람들이었다. 주말도 아니고 평일에, 그것도 일부러 한 시간 전에 나왔는데도 좌석이 없다면 말이 되냐고 다방 아가씨를 상대로 불평을 털어놓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슬그머니 내 좌석표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히 내 것에는 좌석번호가 또렷이 찍혀 있었다. 그들과 나는 거의 엇비슷하게 다방에 들어왔는데도 그랬다. 매표구에서의 찰나가 그렇게 매정한 선을 그어 버렸음을 깨달은 뒤에도 나는 행운보다 기묘한 두려움을 느꼈었다.

 

언제 어느 순간 내 앞에 선이 그어져 버릴지 아무도 모른다. 우연히 행운이 왔다면 불행도 똑같은 모습으로 올 것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우리는 거부할 수도 없다. 어떤 것도 불확실하며 어떤 것도 전혀 보장받을 수 없다. 어떤 것도 불확실하며 어떤 것도 전혀 보장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은 행운으로 마지막 좌석을 차지하고 나서, 나는 어느새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 나를 발견했다. 나는 아직,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칼릴 지브란이 떠올랐다. 내가 생각하는 지브란은 1931년 4월에 영원히 잠든, 시인이고 화가였으며 철학자이기도 했던 칼릴 지브란이 아니다. 그는 아직 살아 있고 앞으로도 살 날이 많은 사람이다.

여고 시절 내가 속한 서클에서 나는 그를 처음 만났다. 고향 도시에서는 소위 명문으로 청해지던 남녀 고등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그 서클에서 여학생들은 그를 ‘지브란’이라고 불렀다. 그가 『예언자』를 잘 외우고 다닌 것이 직접적인 빌미는 되었지만 사실은 문학말고도 그림·철학 등에 조예가 깊은 그의 천재성이 칼릴 지브란과 닮았다는 데서 기인한 별명이었다.

진정으로 그는 내가 만난 가장 뛰어난 천재였다. 학생 잡지의 문예 현상을 휩쓰는 그의 시, 진작에 실력을 인정받고 있던 그림, 막힘이 없고 거침이 없는 지독한 독서편력, 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도 그는 전과목에 늘 우등생이었다. 또 한 그는 진지하고 겸손했다. 타고난 품성조차도 뛰어났던 것이다.

지브란으로 불리던 그는 당연히 수재들이 모인다는 서울의 명문 국립대학에 들어갔다. 내가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이십 년의 세월이 지난 뒤의 일이었지만 그 동안에도 이 천재의 행적에 대해 전혀 몰랐던 바는 아니었다. 나는 주로 신문에서 그의 이름을 보았다.

신문은 그가 어떻게 온몸을 던져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또 신문은 그가 왜 수배되었으며, 어떤 불온조직의 괴수인가도 소상하게 일려주었다.

 

칠십 년대와 팔십 년대에 걸쳐 얼마나 많은 순결한 정신들이 국가 권력에 유린당했는지, 그것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의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굳이 지브란이라고 부른다.

그와 함께 학생운동을 시작해서 지금은 두리뭉실하게 물러앉은 한 친구는 대학에서도 그는 천재였다고 전한다. 사태를 파악하는 분별력이 명확하고 빨랐으며 지도력이 뛰어난 그는 늘 운동의 핵심에 있었다.

대학 제적 후 그와 함께 세상의 변혁을 꿈꾸며 일했던 한 인사가 그를 가슴이 따뜻했던 운동가라고 회고하는 글을 읽은 적도 있다. 그는 팔십 년대의 종반까지 재야 조직에 몸담고 있었지만 한 번도 과격한 운동권이란 평을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긴장과 억압의 시대에 누구보다 과격하게 자신을 던져 일해 온 운동가였다.

지금에 와서 나는 그에 대해 누누이 설명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의 진실한 헌신은 개혁의 의지가 급격히 쇠퇴한 90년대 들어서도 전혀 폄하되지 않은 채 순결한 운동의 전범으로 남아 있으니까.

만약 그를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한 천재가 보여 준 이 격렬한 생이야말로 불행한 시대를 만난 위대한 숙명이 아니었겠는가 정도로 그를 이해하고 말았을 것이었다. 운동에 있어서도 그는 분명 범인과는 달랐으니까.

그가 다시 지브란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지난 겨울이었다. 나는 그때 무슨 일로 한 화가를 만나고 있었다. 강남 어디에 있는 화가의 작업실에서였다. 화가와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도중에 그가 들어왔다.

나는 그때 끝내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도 갈래머리 여고생 시절의 나를 기억할 리 만무했다. 격식도 없이 불쑥 들어온 이 방문객은 화가가 권하지도 않는데 의자 한쪽에 주저앉아 조용히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집주인인 화가 또한 이 방문객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서로가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투로 행동했다. 아마도 불청객이었을 그 남자는 거기에 있는 동안 두 번 입을 열었다. 두 번 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똑같은 말이었다.

“청와대에서 왜 날 안 부르지?”

청와대 ? 아무 데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지만, 방문객은 옷차림도 그런대로 깔끔했고 나직이 내뱉는 청와대 운운하는 말도 극히 고요한 어투여서 나는 그가 내가 모르는 다른 청와대를 말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 두 번의 나직한 중얼거림을 남기고 방문객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화가의 작업실을 나가 버렸다. 방문객이 사라진 사실을 화가가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그에게 손님이 가버렸음을 일깨워 주었다.

“손님? 아, 그 친구. 괜찮습니다. 사나흘에 한 번씩 와서 저러다 가니까요. 밥이나 한번 사주려 해도 꼭 자기 있고 싶은 만큼만 있다 가는 친구라서 이젠 나도 신경 안 씁니다. 느닷없는 청와대 소리만 빼면 다른 정신은 멀쩡해서 실은 아까운 폐인입니다. 가만있자, 혹시 모르십니까? 저쪽에선 상당히 유명한 인사인데.”

그 다음에 나온 것이 그의 이름이었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았다는 말은 나도 들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 뒤에도 민통련이나 전민련 간부 명단에서 나는 그의 이름을 보았었다. 나는 그가 불사신처럼 다시 일어났다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불사신이 아니었다. 화가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난 이후 나는 그를 알 만한 사람들한테 그의 소식을 물었다. 사실이었다. 아는 사람들은 다 그의 병을 알고 있었고 그가 하필이면 청와대를 들먹이고 있다는 것으로 그는 재기 불능이었다.

사람들은 육체의 병에는 너그럽지만 정신의 병은 이유 없이 혐오한다는 것도 나는 알았다. 그들의 이해가 미치는 범위는 한 순결한 천재의 과대망상이 전부였다. 모두 거기서 멈춘다. 더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정신은 비바람에 뒤집혀지는 종이우산처럼, 그렇게 정반대의 방향으로 뒤집히며 잠재된 무의식을 드러내고 만다는 것이다.

속을 발랑 까보였으므로, 그건 수치다, 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런데, 나는, 지브란의 그 한 말씀이, 청와대에서 왜 날 안 부르지? 하는 그것이, 어떤 은유 혹은 어떤 기호처럼만 여겨진다. 그날 화가의 작업실에서 아무 선입견 없이 그냥 들었을 때도 나는 그것을 하나의 암호로 이해했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나는 뜻을 담은 기호거나 암호를 입 안에 굴려 보고 뒤집어 보고 했지만 그것이 수치스런 뜻을 담은 기호거나 암호는 아니라는 것만 확인했을 뿐 풀어 내지는 못하였다.

 

지브란의 암호는 일종의 꽃말 같은 것이었다. 세상에 불경스럽고 추악한 꽃말을 담은 꽃은 없다. 꽃말을 모르는 꽃이 있다 해도 우리는 그것에서 당연히 사랑이거나 그리움, 기다림 따위를 유추하지 않던가.

“청와대에서 왜 날 안 부르지......”

지브란은 무슨 말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나는 왜 그 말에 무언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지브란에게서 예언자의 잠언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그의 잠언이 난해하다는 것은 시대가 난해하다는 뜻이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간절히, 그 꽃말이 알고 싶다.

그 꽃말을 알고 싶다. 한 천재가 온 힘을 다해 퍼뜨리고 다니는 꽃말의 비밀을 알고 싶다. 그걸 알 수 있다면 내가 빠져 있는 이 미로에서 헤어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미로는 사실 처음부터 미로였다. 그러나 전에는 출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었다. 그 믿음은, 지금 생각하면, 작가에게 던져진 구명줄이었다. 차라리 안락의자였다. 거기에 편안히(역시 지금 생각하면 편안히, 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앉아 밤이 새도록 쓰고 또 쓰고 또 쓰면 언젠가는 출구에 닿는다는 가냘픈 희망이 있었다.

상처가 없이 어떻게 사람들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지, 소설은 또한 상처 자국의 조명 없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의자에 앉기만 하면 고인 물이 넘쳐나듯, 먼동이 트는 줄도 모르고 열정을 다해 써나갈 수 있었던 그때가 이토록이나 아득하게 느껴지다니, 믿을 수가 없다.

 

지금 내 앞에 주어진 미로는 너무 교활하다. 지식과 열정을 지탱해 주던 하나의 대안(代案)이 무너지는 것을 신호로 나의 출구도 봉쇄되었다. 나는 길 찾기를 멈추었다. 길 찾기를 멈추었으므로, 나는 내 소설의 새로운 주인공을 찾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작은 꿈, 작은 눈물, 그런 것들로 무찌르기에 이 세계는 너무나 거대하고 음흉하다. 문학은 곧 폐기 처분될 위기에 몰린 듯하다는 글쟁이들의 엄살은 결코 엄살이 아닌 현실이 되어 버리고 진실이나 희망이란 말은 흙더미에 깔려 안장되었다.

그 순간 나의 출구도 파묻혔다. 나는 두 팔을 묶였다. 지브란 같은 이의 위대한 헌신조차 낭비되고 말았는지 거기에 생각이 이르면 두 다리까지 꽁꽁 묶인 절박감을 느낀다. 기립 박수는 아니더라도 그를 숨게 만드는 세상은 믿을 수 없다. 그토록이나 상처가 많던 시절에도 그들은 우리의 숨통이었고, 짐승으로의 추락을 막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브란이 무슨 꽃말을간직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기차는 달린다. 비는 그쳤다. 빗물 머금은 라일락이 담장 너머로 뭉게 구름처럼 피어 있는 동네를 지나 기차는 달린다. 라일락 뒤로 굽은 길을 달리는 기차의 꼬리가 보였다.

나는 쏠리는 몸을 바로 추스르기 위해 더욱 꼿꼿하게 앉아 있다. 등산복 차림의 젊은 처녀가 내 옆을 지나다 흔들 하며 잠시 균형을 잃는다. 미리 굽은 길을 알아채고 꼿꼿하게 힘주어 앉은 덕분에 나는 그녀를 받아 낼 수 있었다. 처녀가 말한다. 죄송합니다.

그 말이 예쁘고 살짝 붉어지는 얼굴도 예쁘다. 전에는 스물두어 살의 그 또래 처녀들을 보면 지나간 나의 젊음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 딸이 자라면 저런 모습이 될지 그런 것을 생각한다.

 

나는 이제 나를 포기했다. 나는 과거의 사람이라는 것을 수긍한다. 그래도 미래가 이토록 중요한 것은 자식이 있기 때문이다. 자식은 희망의 담보물이다. 희망이 경매 처분되는 것을 한사코 막아야 하는 것은 자식을 맡겨 놓은 인간의 업보다.

내가 <희망>이란 제목의 장편을 펴냈을 때 사람들은 제목의 미미함을 지적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희망이, 자식이, 그런 것이 미미하다면 대체 무엇이 강렬한 것인가. 끓기도 전에 퍼져 버려 설익은 밥처럼, 이해되기도 전에 진실은 쓰레기통으로 처박힌다.

등산복 차림의 처녀는 내 자리에서 대각선으로 건너다 보이는 곳에 앉아 있다. 일행은 서너 사람, 그들은 북쪽의 산을, 어쩌면 설악 쯤을 목표로 하는 듯했다. 선반 위에 얹혀진 팽팽한 배낭과 진흙 한점 묻지 않은 깨끗한 등산화가 그런 짐작을 하게 해준다.

스스로를 산에 미쳤다고 평하는 한 의사가 있다. 그는 신경외과 의사고 동시에 소설가인 사람이다. 의학이란 학문이 결코 수월한 연구가 아님을 감안하면 그가 의사면서 소설가고 또한 전문 산악인에 겨룰 만한 산행 경력을 지녔다는 것은 나 같은 위인한테는 늘 놀라운 경이로 다가온다.

내 삶은 그에 비하면 삼분지 일이다. 나는 요즘 분수의 분자로 삶을 계산하는 버릇이 생겼다. 모두 초조함 때문이다. 나는 늘 셋이나 다섯의 분모를 두고 하나로 쪼개진다. 나는 누군가의 몇 분지 일이다. 나는 전생애를 소설에 투자했다. 문학 증발의 시기에 초조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산에 푹 빠진 의사 소설가는, 아니 소설가 의사는, 틈만 나면 산에 가지 못해 애를 태운다. 그 애태움은 소설을 향해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그에게 산과 소설은 같은 말의 다른 표현이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도 플래시 하나 없이 그대로 산으로 달려간다. 힘든 수술을 끝낸 날에도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산에 오른다. 가다 날이 저물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는 환부의 실핏줄이 어디로 뻗어 있는지 상세히 알 듯이 산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환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부천에서 그가 살고 있는 북한산 가까이로 이사 오면서 나도 그와 함께 근처의 산을 오를 기회가 몇 번 생겼다. 그는 산에서 절대로 서두르지 않는다. 계곡의 물소리나 이름 모를 꽃들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무턱대고 급하게 산을 타는 사람을 그는 가장 경멸한다. 산중턱의 소나무 가지가 오른 쪽으로 뻗었는지 왼쪽으로 뻗었는지까지 다 외우고 있는 그는 마치 산의 비밀을 송두리째 알아내려고 작정을 한 사람처럼 내게 보인다.

 

그는 의사면서 부자도 아니다. 의사라고 다 부자라는 법은 없지만 적어도 마음만 먹으면 부자일 수 있는 것이 이 땅의 현실이다. 보자이기를 한사코 피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것이 가난한 의사의 모습인 것이다.

그는 늘 산에 대해 이야기한다. 산이 그에게 준 위안들, 산으로 갈 수밖에 없는 허기진 정신, 이런 것들을 나는 그의 말로, 그의 소설로 끊임없이 듣고 읽는다.

그에겐 산만이 대답해 줄 수 있는 해묵은 숙제가 있다. 대답해 줄 수 있는 무엇을 하나 꽉 붙들고 있는 그가 때로는 행복하게 보이기도 한다. 내 해답지는 아직 인쇄되지 않고 있으니까.

그가 한 말 중에서 내게 가장 오래, 가장 깊게 남아 있는 것은 그러나 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의사였기 때문에 경험한 이야기다. 아직 산 어귀의 사람 사는 마을에서 발을 빼내지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이야기는 수술에 관한 여러 불가사의를 주제로 한다. 흰 가운을 입고 수술실에 들어가 환부를 열면 의사로서 오는 직감이 있다. 이 수술은 성공이다, 혹은 무의미하다. 직감에 관계없이 어떤 수술이든 최선을 다하고 나서 운명에 맡기는 것이 의사의 진심이지만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수술 마지막의 환부 봉합에 이르기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성이 들어간다. 회복 후의 삶을 생각해서 촘촘히, 가능한 자국이 작게 남도록, 치밀하게 바늘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환자를 영안실에서 만날 때 그는 절망한다고 했다. 예쁘게 꿰맨 수술 자리를 보면 더욱 할말이 없어진다고 했다.

 

반대로, 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 않은, 사망 진단 직전의 형식상의 수술을 받은 환자가 며칠 후 눈부시게 회복해서 침상에 앉아 웃고 있을 때도 그는 말을 잃는다고 했다. 거의 시체나 다름없는 환자의 환부에 무슨 흥으로 봉합 바느질이 세심했겠는가.

삐뚤삐뚤 듬성듬성 지나가 버린, 자신이 남긴 환부의 실 자국을 보면 등에 식은땀이 난다고 했다. 드러나지 않는 이 힘, 그러나 분명히 작용하고 있는 이 힘이 보여주고자 하는 뜻은 무엇인가. 그런 날에는 산에 가지 않고는 도저히 배길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었다.

촘촘한, 혹은 삐뚤삐뚤 봉합 바느질의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 서울을 향하는 기차 안에서 떠올려도 큰 떨림을 안겨 준다. 이 떨림을 나는 설명할 수 없다. 설명되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뚫고 나가라고만 말한다. 단지 그렇게만 말한다.

어떻게?

미로에서 출구를 잃은 나, 아침 저녁으로 먹히고 아침 저녁으로 우는 시인의 뜸부기, 안개 속으로 사라진 김종구, 자신의 꽃말을 암호로 만든 지브란, 그리고 의사의 바느질, 설명되어지지 않는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뚫으라는 것인가.

어디서부터 어디를. 나는 짓밟힌 귀신사에서 본, 모래 더미에 파묻힌 이름 모를 꽃을 생각한다. 그 숨어 버린 꽃 속으로 삼투해 들어간다.…….

기차는 자꾸 달린다. 아직 부옇기는 하지만, 서울에 닿으면 그래도 나는 기계 앞에 앉기는 할 것이다. 나는 아마도 한 거인을 그리려고 덤빌지도 모르겠다. 와해된 세계의 폐허 어딘가에 숨어 사는 거인, 결코 세상에 출몰하지 않는 거인의 초상, 그리고 숨어 있는 꽃들의 꽃말 찾기.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이 세상살이가 돌아가는 이치의 끝자락이나마 만져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영원히 설명되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그것은 거인의 초상을 그린 후, 그때 생각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사상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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