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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꽃 2~2. - 양귀자

Joyfule 2015. 10. 10. 11:11

 

단편소설:

숨은꽃 2~2. - 양귀자

 

      숨은꽃:만남

 김종구에 대한 첫 번째 삽화는 내가 숙자의 담임이었으므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섬의 중학교가 나에게 첫 발령지였다. 남녀 한 학급씩 전교 여섯 반의 단출한 섬 학교는 운동장 발치에 시퍼런 바다가 누워 있었다. 밤이고 낮이고 불어 대는 바람에 성한 게 하나도 없던 교사(校舍)의 문짝들,폭풍이 불면 바다가 갤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갇혀 있어야 했던 우울한 나날들.

 단지 바다 때문에 거기까지 갔으면서도 사방이 바다인 그곳의 일 년은 극도의 우울과 조바심뿐이었던 것을 지금도 나는 명료하게 풀어 낼 수가 없다.

 젊은 날의 한때를 해석해야 하는 일처럼 난감한 게 어디 또 있을까. 젊음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욱 어긋나는 분석.

그것보다는 숙자의 무단결석을 이야기하는 일이 훨씬 쉬울 것 같다. 삽화는 거기서부터 시작하니까.

 그곳에서 나는 전 학년의 국어를 가르쳤고 2학년 여자반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 제 나이대로 진급을 할 수 없었던 낙도의 사정으로 아이들은 모두 숙성했고 3학년쯤 되면 교사인 나보다 더 어른스럽게 세상을 굽어보는 아이들도 많았다. 실제로 그 애들이 나보다 더 현실적으로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부인할 수 없다. 교실에 뱀이 들어오면 아이들이 쫓았고, 가정 방문을 하게 되면 노를 저어서 이웃 마을로 나를 데려다 주는 일도 그 애들이 했다.

 집에서도 어른 몫을 단단히 하는 아이들이어서 멸치잡이가 한창일 때나 김을 뜨는 겨울이 오면 학과 진도를 나가기 어려울 만큼 교실이 텅 비곤 했다.

 숙자의 무단결석도 그 때문이었다. 새 학기를 두 달도 채우지 못하고 그 애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을 시켜 사정을 알아본즉 오빠가 살림을 맡으라고 윽박질러서 학교에 올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숙자 오빠를 ‘징허게 독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이 마을이 고향인 수산 선생도 ‘자칫하면 깡패로 풀렸을 망나니’라고 평했다.

 뭍에서만 떠돌다가 숙자 큰오빠가 바다에서 실종된 작년에 어디선가 소식을 듣고 돌아와 늙은 어머니와 여동생을 거두는 시늉은 하고 있으니 그만해도 기특하지 않으냐는 것이 수산 선생의 설명이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 만삭의 여자 하나를 데려왔다는 것, 그 여자는 몸을 풀자 이내 다시 뭍으로 도망을 쳤다는 것, 결국 숙자가 어미 없는 갓난 조카까지 돌봐야 한다는 것 등, 여러 가지 가정 형편들을 수소문한 다음 나는 직접 숙자네 집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번번이 허탕이었다.

 세상 가난에 시달려 이미 기력이 다한, 늙고 병든 숙자 엄마는 눈곱이 잔뜩 낀 눈을 껌벅이며

 

 “이 늙은 것이야 자식이 시키는 대로 헐 뿐이지요”라고 말만 되풀이할 뿐이고, 나만 보면 얼굴이 빨개져서 마당에 널린 멸치나 뒤적이며 고개도 못 드는 숙자한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터였다. 나는 별 수 없이 해변가의 멸치 막으로 직접 숙자 오빠를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바다에서 건져 온 멸치는 멸치 막에서 삶는 과정을 거쳐 햇볕에 말려진다. 마을 동편의 돌밭에는 커다한 가마솥을 걸어 놓은 막이 여러 개 있었다. 데리고 온 숙자는 그중 새로 지은 듯싶은 하나를 가리키며 저기 오빠가 있다고 말했다. 김이 오르는 가마솥과 시뻘겋게 타고 있는 아궁이의 장작불 앞에 웃통을 벗어부친 한 사내가 보였다. 숙자가 먼저 가서 내가 왔음을 알리는 동안 나는 멀찌 감치서 짐짓 바다를 보며 기다렸다.

 김종구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하던 일을 다 끝낸 뒤에야 어슬렁어슬렁 돌밭을 가로질러 내게로 왔다. 제 오빠와 서너 걸음을 차이 두고 잔뜩 오그라든 몸으로 뒤를 따르는 숙자를 보면서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귀찮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수다. 이해해요. 선생 경험이 없으니 교과서가 시키는 대로 할밖에.”

 

 수인사 따위는 주고받을 시간도 없었다. 김종구는 다짜고짜 그렇게 말을 꺼냈다. 굵은 눈썹 아래의 부리부리한 두 눈은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내가 무어라 응수를 하기도 전에 돌밭에 침을 찍 뱉고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집에 여자라곤 신경통으로 기어 다니는 늙은 어머니하고 숙자 저년밖에 없어요. 보셨으니 그거야 알고 계실 테고, 또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거요?”

 

 그 다음에 내가 할 말은 없었다. 얼굴에 칼자국이 두 군데나 그러져 있는 사내한테 나의 교사 체면이 어떻게 구겨지고 말 것인지 그것이 약간 불안할 뿐이었다. 이 학부형한테 교사의 학생에 대한 애정, 혹은 학생의 장래 따위를 말할 생각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판이었다. 그리고 김종구 본인이 그런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말라는 듯 단단히 못을 박고 있었다.

 

 “왜들 이 뻔한 사실을 잊고 있는지 모르겠소만, 사는 일이 가장 먼저란 말이오. 사는 일에 비하면 나머지는 다 하찮고 하찮은 것이라 이 말입니다. 먹고 사는 데 질서가 잡히면 선생이 말려도 숙자는 다시 학교에 나가요. 아마도 내년에는 숙자 년이 교실에 앉아 있는 것을 볼 거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선생이 내년에도 여기에 있기만 한다면.”

 

 그리고 김종구는 괜한 장작불만 타고 있다면서 역시 인사도 없이 멸치 막으로 돌아갔다. 오빠의 무례에 거의 사색이 되다시피 한 숙자는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처음의 초조함에 비하면 김종구가 보여 준 행동은 오히려 예상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말로 자기를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 또한 새겨들을 만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기도 했다.

 숙자의 손을 잡고 돌아오면서 잠깐 돌아보니 김종구는 다시 웃통을 벗어부친 채 끓는 가마솥에 멸치를 집어넣는 삽질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 삽화는 초여름의 햇살이 따가운 바다를 배경으로 한다. 그는 바다에 누워 있었다. 정말이었다.

 그는 한 치의 거짓도 없이 현실을 떠나 바다에 누워 있었다.

 

그때 나는 종선에 옮겨 타기 위해 금어호의 뱃전에서 대기중이었다. 아마도 주말을 맞아 고향의 집에 다녀오던 길이었을 터였다. 뱃길 두 시간에 버스 다섯 시간을 견뎌야 집에 닿았으므로 섬에서의 외출은 한 달에 한 번도 어려웠다. 그랬으므로 돌아오는 길에는 두 손에 다 들 수 없을 만큼 짐이 많았고 멀리 마을의 집들이 보일 무렵에는 차멀미에 반죽음이 되어 있기가 십상이었다.

 

마을의 선착창은 위치가 썩 좋지 못하여 밀물 때나 겨우 선착장에 금어호를 댈 수 있을 뿐 그다지 크지도 않은 금어호는 대개 바다 한가운데에서 종선을 기다려 손님들을 하선시켜야 했다. 게다가 이 종선 또한 어찌나 칠칠치 못한지 저만큼 중학교 뒤로 금어호가 나타나면 대뜸 출동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배가 바다 복판에서 기관을 끄고 있을 즈음에야 닻을 걷어 올리고 노를 삐거덕거리며, 수없이 옹송그리고 있는 거룻배 사이를 밀고 밀리며 느릿느릿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바로 그러한 때에 나는 김종구를 보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를 싣고 있는 배를 보았다. 양수기를 단 통통배였다. 배는 엔진이 꺼진 채 일엽편주처럼 흔들흔들, 마침 알맞은 물때를 만나 저 멀리에서 우리 배를 향해 흘러오고 있었다. 배가 어느 정도 가까이 와서였다. 쌀가마 위에 올라앉아 늦은 종선을 타박하고 있던 마을 사람 하나가 기가 막히다는 듯 소리쳤다.

 

“웨따메 저기 종구놈 아녀, 잉?”

“맞네, 종구여. 허어, 하여간 배포 하나는 클씨. 저 자슥 팔자 좋게 처자는 것 좀 보소.”

“자가 해우 말목 빼러 갔다가 정신 빼불고 오네 그랴. 얼메나 처먹었으면 조로콤 시상 모르고 자버린디야. 엥간히 자라고 소리 좀 쳐!”

“냅둬, 머 할라고 깬디야. 지놈 알아서 허겄지. 저러다 북풍이나 불믄 저기 여우섬으로 떠내려갈 거구만.”

 

그가 타고 있는 배는 마을 사람들의 입방아에도 불구하고 잘도 흘러 금어호를 지척에 두고 스쳐갔다. 출렁이는 나뭇잎 배에 네 활개를 펴고 잠들어 있는 김종구의 모습도 똑똑히 내려다보였다. 시퍼런 바닷물이 밑그림이 되어 그는 영락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누워 있는 듯이 보였다. 등짝 밑으로 험상궂은 파도가 으르렁거리고 있을텐데도 잠들어 있는 그의 얼굴은 낙조에 물들어 그럴 수 없이 평화스럽게 보였다. 그 평화가 부러웠던가. 부럽고 아득해서 뱃전에 달라붙어 그리도 오래 흘러가는 배를 눈을 좇았던가.

 

 

지금도 나는 그날 바다에 누워 있던 그의 얼굴과 팔뚝을 물들이던 황금빛 노을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물결에 출렁일 때마다 사방으로 부서지던 그 눈부신 빛살. 요람 속의 평화를 가득 싣고 있던 그 통통배.

 

그러고 보면 지금도 서편 하늘에 투명한 노을이 걸려 있다. 그러나 여기는 바다가 아니다. 산이다. 나는 새삼 김종구의 외양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남자는 지금 마흔을 훨씬 넘었을 것이다.

 

그러나 순간적이긴 하지만 쏘는 듯한 시선, 팔뚝에 드러난 굵은 힘줄, 근육으로 뭉쳐진 상체의 단단함은 도저히 마흔을 훨씬 넘긴 그것이 아니다. 하지만 가끔씩은 쉰 살은 예전에 지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가기도 한다. 이마의 잔주름과 눈꼬리에 엉겨 붙은 피곤함이 의심의 근거랄 수 있다.

 

“그렇게 한심한 눈으로 사람을 뜯어보지 맙시다. 선생님이 무슨 생각하는지 내 다 알지요. 늙어 죽을 때까지 공사판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가련한 인생이구나 여기겠지만, 천만에요. 이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지붕 씌운 곳에서 갇혀 일하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숨이 콱 막히거든요. 마흔 지난 지 몇 해가 되었지만 아직 이 몸뚱어린 쓸 만하죠. 몸뚱어리 하나 믿고 하늘에 구름 가듯 떠도는 게 좋아요 훌쩍 떠날 수 있으면 훌쩍 오는 거예요.”

 

그랬다. 김종구에게는 예전부터 사람의 마음을 읽어 내는 재주가 있었다. 그의 말에 언제나 가시가 박혀 있는 것처럼 들리는 것도 숨겨진 마음을 환히 보아 버리는 자의 별수 없는 어투일 것이었다. 섬에서의 요란한 싸움들도 대개는 그의 사정 봐주지 않는 야유가 발단인경우가 많았었다.

 

김종구는, 많이 달라진 것 같으면서도 가끔씩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내게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 대한 진전 없는 탐색을 멈추기로 했다. 또한 그는 이제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그러나 김종구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잠시만 기다리라면서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벌떡 일어나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기다리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동산을 내려갈 생각은 없었지만, 기다리라는 말 때문에 동산에 더 남아 있으려던 원래의 마음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간으로 봐서 김종구의 하루 일도 다 끝나 갈 때였다. 일을 마감하고 돌아온 그와 마주 앉아 특별히 더 할 이야기가 있던가. 김종구의 생에 대한 관심이야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시간을 연장해 가면서까지 캐낼 만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의심스러웠다. 설령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십오 년 전에 잠깐 알았던 사람과 이 이상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이 내게는 못내 불편한 일이었다. 길어지면 외로움이 덤벼서 그렇지, 혼자의 시간이 편한 법이었다.

 

어쨌거나 그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는 기다려야 할 일이었다. 그저 바람이나 쐬려고 나선 여행이라는 말을 이미 해버린 터에 급작한 볼일이라도 있는 듯이 사라져 버릴 수 는 없었다.

 

나에게는 그래도 섬 생활 일 년의 의미가 묻어 있는 해후일 수 있지만 그한테는 거의 아무 의미도 없을 이 만남이 내가 원하지 않는 한 길어질 턱은 없을 것이었다. 십오 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도 김종구한테 그런 곰살맞음이 있었던 것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그러기는커녕 내가 간직한 그에 관한 세 번째 삽화는 상당히 진저리쳐지는 구석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삽화는 소재부터가 섬?하다. 날이 새파란 손도끼, 염소의 골통, 그리고 이중(二重)의 죽음과 구역질. 그 속에 김종구가 있었다. 섬에서는 특별한 날이 돌아오면 곧 잘 풀어 놓고 먹이던 검정 염소를 잡곤 했다.

 

학교에서 자취방으로 가는 길의 야산이 검정 염소들의 방목장이었다. 육고기에 주려 있게 마련인 섬사람들한테는 염소가 잡아야 푸짐하게 고기 맛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잔치에는 열 명도 못되는 중학교 선생들이 총동원되어 잔치의 상석을 차지하고 앉는 것도 관례였다.

염소를 식용으로 생각해 보기는커녕 되레 그 짐승에게 강한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염소띠 인간인 나로서는 마지못해 가는 자리였지만, 다른 남자 교사들은 섬생활 서너 달이면 염소고기에 맛을 들이고 절대 사양을 하지 않았다. 마음 사람 거의가 고기 맛을 봤던 육성회장 집 잔칫날, 그날 김종구도 거기에 있었다.

 

염소를 잡게 되면 죽인 직후의 생피를 마시는 것과 삶은 골통을 쪼개 골을 꺼내 먹는 것이 제일 알짜라는 이야기는 누누이 들은 바가 있었다. 그러나 자리에 앉자마자 쟁반 세 개가 동원되어 각각에 염소 머리 하나씩이 담겨져 나오는 광경은 너무 끔찍하고도 갑작스러웠다.

 

대개는 손님을 청한 쪽이 부엌에서 적당히 처리해 내오게 마련인데 머리가 세 개나 되다 보니 곧바로 쪼개 먹는 쪽이 편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모양이었다.

마루 한가운데 염소머리 세 개가 놓이자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김종구를 쳐다보았다. 마치 너 말고 누가 이짓을 하겠느냐는 듯이. 그러고 누군가 그에게 날이 새파랗게 선 손도끼를 건네 주었다.

 

김종구는 사람들을 휘둘러 본 다음 말없이 손도끼를 받았다. 그의 입가에 맴도는 냉소를 본 것이 나뿐이었을까. 그는 잔인함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하게 읽어 낸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새삼스럽게 숫돌에 도끼를 날을 벼리는 일부터 시작할 이유가 없었다.

 

쓱싹쓱싹. 음산한 숫돌의 마찰음을 들으며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과 공포의 순간에도 사람들은 침을 삼킨다. 마치 기름진 음식을 상상하듯.

 

이윽고 숫돌작업이 끝나자 그는 마술사들이 흔히 시도하는 시선 끄는 도입부도 실천해 보였다. 손바닥으로 슬슬 손도끼의 날을 쓸어 보는 그 유혹의 순간들이 흐르는 동안 김종구 주위의 몇몇이 슬쩍 뒤로 물러섰다. 사람들은 김종구의 눈에서 살기를 읽었고, 나는 경멸을 읽었다.

 

 

마침내 털 뽑힌 염소의 둥근 두상 하나가 통나무를 큼직하게 반 잘라 만든 도마 위에 얹혀졌다. 반쯤 눈이 감겨진 염소의 머리는 시장바닥의 좌판에서 흔히 보는 돼지머리와 사뭇 달랐다.

 

삶은 돼지머리가 감은 눈과 위로 치솟은 콧구멍, 그리고 투정하듯 내밀어진 입으로 인해 희화된 모습이라면, 염소의 그것에는 비애가 서려있다. 죽음 앞에서 깜짝 놀란 모습이 어김없이 담겨 있기로는 염소를 따를 짐승이 없다. 염소는 유독 겁이 많은 짐승이니까.

 

김종구는 염소머리를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며 도끼의 날이 박힐 자리를 신중하게 모색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부러 그러는 게 분명한 , 과장된 몸짓을 보여 주며 잔뜩 시간을 끌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걸 원할 때까지는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다는 자세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손도끼가 번쩍 허공을 가르며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김종구의 입에서 야릇한 기압 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합과 함께 땅, 하는 암팡진 소리가 울렸고 벌어진 골통 속으로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하얀 골이 드러났다. 젓가락을 들고 그 순간을 기다리던 남자들은 너나 할 것 업이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골통 속으로 젓가락을 들이밀었다. 천 번째 염소머리가 상으로 올라간 지 몇 분,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리는 두개골로 변해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사람들 뒤에서 담배 한 대를 피고 난 김종구는 묵묵히 도마위에 두 번째의 염소머리를 얹었다. 이번에는 시선끌기 같은 광대짓은 없었다. 두 번째, 세 번째의 골통 또한 단 한 번의 도끼질에 어김없이 두 쪽으로 갈라졌지만 첫 번째 이후로는 사람들의 탄성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들 뜨끈뜨끈한 골이 식을까 봐 정신없이 젓가락질에만 매달렸다.

 

그러나 내가 지켜본 바로는 그 손길 속에 김종구의 젓가락은 없었다. 내가 본 것은 세 개 의 염소머리를 해치운 뒤 황급히 소주 한잔으로 목을 적신 다음 말없이 육성회장 집을 빠져나가는 그 뒷모습이 전부였다. 둘러앉아 허겁지겁 염소의 골통을 파먹고 있던 사람들은 김종구가 사라지는 줄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세 번째 삽화는 진저리쳐지는 느낌말고도 묘하게 비애를 깔고 있다. 그러고 보면 김종구는 그때 이미 위선과 타협할 수 없는 국외자로서의 비애를 깨닫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뒤 십오 년의 세월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공사판을 떠도는 김종구의 지금 삶은 필연적인 것이리라. 삶의 비밀을 엿본 자에게 붙박이 삶이 가능하기나 할 것인가.

 

나는 조금씩 이 예기치 않은 조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십오 년은? 그리고 나의 십오 년은? 마침 그때 김종구가 말끔한 모습으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옷도 갈아입었고 세수도 한 모양이었다.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머리칼에는 눈에 보이게 먼지가 끼어 있었지만 귀가하는 가장으로는 손색이 없는 차림새였다.

“갑시다.”

 

그는 마치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던 일이라는 듯 단호하게 나를 재촉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났다.

“우리집으로 가자는 겁니다. 아까 보신 팔팔 뛰는 잉어 같은 그 계집이 내 마누라예요. 일이 끝난 뒤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황녀한테 먼저 문안을 드려야 한답니다. 갑시다, 황녀한테.”

나중에야 눈치를 알아차린 사실이지만, 성이 황(黃)가인 마누라를 그는 마치 황녀(皇女)인 듯이 호명했다.

 

“갑시다. 벌써 기가막힌 찌개를 끊여 놓고 담장에 매달려 나 오기만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황녀는 낮잠 자다가도 이 김종구 생각나면 맨발로 뛰어서 달려온답니다. 아주 화끈한 여자지요. 황녀는 손님 오는 것을 아주 좋아해요. 그래야 지가 왕년에 뽐냈던 솜씨를 보 여 줄 수 있거든요. 솜씨요? 아, 그거 별거 아녜요 고게 단소를 좀 불어요. 단소 , 아시지요? 화녀의 단소 가락, 그거 사람 죽여요.”

 

자신의 말이 좀 많다 싶었는지 김종구는 거기서 자르듯이 말을 끊고 가만히 내 반응을 기다렸다. 나는 역시 의례적인 말로 그의 초대를 사양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관심이야 있었지만 관심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래도 관습이었다. 이제 와서 십오 년 전의 학부형을 만났다고, 그것도 서로간에 깜짝 놀랄 만큼 반가운 사이도 아닌 약간의 인연을 빌미로 남의 거처에 불쑥 뛰어들어 저녁을 얻어먹는 일은 관습적으로 영 어긋나는 것 같다는 것이 여태도 내 판단이었다.

 

김종구는 나의 사양에 굉장히 실망스럽다는 얼굴이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 한 뼘 위에서 차랑거리는 감나무 줄기 하나를 확 나꾸어챘다. 그리곤 가지 끝을 입에다 쑤셔 넣고 그것을 잘근잘근 씹으며 아주 잠깐 숨이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이, 아직도 이조시대 말을 사용하고 있어요?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하는 식의 원님 동헌 마루에서나 굴러다니는 말본새라면 이가 갈리는 놈이 난데, 제길, 작가 선생까지 그러시깁니까? 제발 덕분에 그런 허깨비 같은 말씀일랑 고만두시고, 우리 집에 갑시다. 밥 한 끼는 대접해야지요.우리 황녀 좋아하는 얼굴도 좀 보시고. 그거, 아주 괜찮은 계집입니다.”

 

그리곤 두말도 없이 앞장서서 휘적휘적 걸어갔다. 나는 별수없이 김종구의 뒤를 따라 언덕을 내려왔다.

 

가족이나 허물없는 친구가 아니라면, 남하고 같은 상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일이 나는 여태도 불편하기가 짝이 없다. 다른 일이라면 적잖이 누그러진 구석도 없지 않으면서 밥은, 삼키고 씹어야 하는 식사는 잘 안 된다. 한 상에서 같이 밥을 먹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는 사이가 되기까지는 얼마나 같이 밥을 먹어야 할 것인가, 나는 그게 아득하다. 너무 아득해서 시작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귀신사 뜨락은 그새 아무도 업이 텅 비어 있다. 인부들은 절담 너머, 아까 나를 주시하던 할머니 집에 다 모여 있었고 김종구는 절 앞에 이르자 또 한번 나를 기다리게 하고 그 집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마당에 피어오른 연기, 불꽃 위에 얹혀진 슬레이트 조각으로 미루어 인부들은 거기서 돼지고기를 구워 먹을 모양이었다. 철판보다는 요철이 있는 슬레이트가 기름도 잘 빠지고 돌구이 맛을 낼 수 있어 공사장 같은 데서 곧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김종구는 주머니에 무언가를 쑤셔 넣으며 곧장 돌아왔다.

“오늘이 간조날이거든요. 비 땜에 이번 간조는 형편없어요. 초파일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내기야 하겠지만, 인부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김종구는 품삯이 들어 있는 바지 주머니를 보란 듯이 두들기다 말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웃기는 일입니다. 대체 뭐 하러 이 짓을 합니까? 목수하고 이 절에 처음 온 날이 마침 비 오는 날이었어요. 첫눈에 야, 이건 굉장한 절이다, 라는 느낌이 확 들었지요. 전국의 이름난 절들 나도 숱하게 봤지만 이런 절은 처음이었거든요. 작가 앞에서 문자 쓰기 거북하지만, 뭐 생사를 초월한, 그런 인생무상 같은 게 가슴을 찍어 누르대요. 그런 절을 싹 뜯어서 울긋불긋하게 만들겠다니 얼마나 웃기는 짓이에요. 말도 안 되는 짓을 한다길래 첨에 이 일에 손뗄라고 그랬지요. 그런데 왜 마음을 바꾸었는지 아십니까. 조금이라도 덜 웃기게 만들기 위해선 내가 있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지요. 이건 정말이지 순순한 내 충정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짓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구요.”

 

 

나는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김종구도 그렇게 느꼈던가. 귀신사에 대해 그도 남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던가. 그래서 기꺼이 제동장치의 역할을 맡아 보수 공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단숨에 나를 그에게로 끌어당겼다. 그 말은 김종구라는 인간을 재고 있던 나의 잣대를 사라지게 하였다. 그에게 잣대를 들이밀다니, 나는 얼마나 교활 인간인가. 십오 년 전의 그와 지금의 그를 수시로 비교하며 인간을 저울질하는 나는 얼마나 편협한가. 다소 무참해진 나는 귀를 열어, 소위 청취의 자세로 돌입하였다. 그리고 이 자세는 그와 헤어질 때까지 여일하였다.

 

 

“참 한 가지 당부가 있는데 이건 꼭 유념을 하셔야합니다. 우리 황녀의 단소 가락을 듣게 되면 무조건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세요 나야 황녀가 부는 단소 외엔 들어 본 적이 없어 갈등 없이 마구 추켜세울 수 있지만 선생님은 혹시 아니올시다일지도 모를 일이잖습니까. 그러니 눈 딱 감고,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황녀 입이 찢어지게 띄워 버리세요. 황녀 고게 또 청중은 어지간히 가리는 못된 버릇이 있어서 아무한테나 단소 가락을 맛뵈 주지도 않아요. 황녀가 제일 기뻐하는 일이 뭔 줄 아십니까? 내가 지 단소 소리를 헤아려 들을만한 고급 청중을 데불고 집에 가면 그저 팔팔 뛰도록 기뻐하지요. 선생님을 데려가면 아마 까무라칠 것입니다.”

 

 

자신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김종구가 내게 한 당부 또한 은근히 내 마음을 찌르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자기의 마누라한테까지 세상의 잣대를 들이미는 허튼짓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만나자마자 부득불 자기 집에 가자고 우기던 것이나,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나를 만나고 그토록 반가워했던 것도 모두 그의 황녀를 위한 헌신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 서먹한 초대를 물리칠 어떤 방법이 없을까 거듭하던 궁리 따위 홀가분하게 물리쳐도 무방한 일이었다. 그의 황녀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몇 마디의 격찬과 감동의 시늉으로 가능하다면 못 할 것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제는 나의 이 여행이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기대도 적잖아 생겨 있는 판이었다. 그 기대가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로, 삭막한 공사현장으로 둔갑한 귀신사를 마지막으로 이 여행에 은근히 기댔던 모든 것이 다 사라진 뒤에도, 나는 전혀 헝클어진 사념에 발목을 묶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새도 없이 김종구가 나타났고 그 다음부터는 완전히 김종구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뿐이었다.

 

그는 여전히 예측불허의 인간이었고 이 예측불허가 나를 생각의 진흙탕에서 구해 주었다. 이 진흙 뻘밭에서 기어나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김종구와의 만남은 수확이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또 뭔가를 그가 보여 준다면 그것이야 말로, 천박한 표현이긴 하지만, 보너스에 다름없는 것이었다.

 

미리 말한다면 그는 그 이후에 더 많은 것을 내게 보여 주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리고 같은 사람이라도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보여지는 것에의 느낌이 다르겠지만 그때의 나한테는 그의 말 한마디도 새롭고 새로웠다. 설령 나의 막막한 상황이 새롭고 새롭기를 희구해서 자기 최면으로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라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아니, 진실을 말하자면 오히려 그쪽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와 아주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그 욕망말고 다른 것으로 해명할 수 있는 진실이 세상에 어디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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