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숨은꽃 3. - 양귀자
김종구는 나와 황녀의 대면에 약간의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를 집으로 데려간 뒤 그는 곧바로 여자를 부르지 않았다. 대신 마당에 나를 세워 놓고 자기가 먼저 부엌으로 들어갔다.
여자가 부엌에 있다는 것은 새어나오는 불빛으로 금방 알 수 있었다. 바깥이야 아직 잔광으로 견딜 만하지만 안에서는 불을 밝혀야 할 시작이었는데 그 집에서 불빛이 있는 장소는 부엌뿐이었다. 나는 인기척이라곤 없는 그 집의 다른 문들을 살펴보면서 그녀와 정식으로 인사를 나눌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시간 전에 우연히 마주쳤던 황녀의 맨발과 흐트러진 머리칼, 번쩍거리던 눈 빛 따위를 떠올리면 그 기다림에 약간의 불안이 섞여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는 내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나를 맞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게 어떤 것일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내 예상은 들어맞았다. 먼저 부엌으로 들어간 김종구가 어디를 어떻게 했는지 여자의 자지러지는 웃음 소리가 들리더니 곧 이어 반쯤 열려 있던 부엌문이 뒤로 발랑 나자빠지도록 거세게 열렸다. 그리고 내가 물러설 새로 없이 확 구정물이 뿌려졌다.
다행히 나한테까지 구정물이 튀긴 것은 아니지만 그제서야 나를 발견한 여자의 놀라는 시선을 받아 내는 일은 좀 괴로웠다. 여자도 조금 전에 나를 본 걸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이런 시골에서 낯선 사람을 구별해 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닐 것이다.
“이런, 누굴 데려왔잖아! 왜 말을 안했어? 이 쓰레기 같은 인간. 언제나 날 속이기만 하고.”
여자는 남자를 돌아보면 냅다 소리를 지르더니 얼른 부엌문을 닫아 버리고 만다. 물론 나한테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였다. 황당한 일이었지만 예상은 한 것이라서 견디기 어려울 만큼은 아니었다. 이윽고 들려오는 김종구의 퉁명스런 목소리.
“야, 싫으면 그만둬. 네 생각하고 일부러 귀한 손님을 모셔 왔는데 싫으면 집어치라고. 제길, 괜한 수고를 했잖아.”
“누가 싫댔어? 근데, 누구야?”
그 다음부터는 목소리가 낮추어져서 바깥에서는 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누구일까. 김종구는 나를 어떻게 설명할까. 간간히 들려오는 여자의 “정말? 진짜야?” 하는 확인을 말은 왜 필요한 것일까. 초조하게 황녀(皇女)의 알현을 기다리는 신하처럼 나는 그들이 나누는 모든 말이 다 궁금하기만 했다.
황녀의 닦달이 어지간히 끝난 뒤에야 부엌문은 다시 열렸다. 치마는 여전히 큼직한 목단꽃 무늬의 그 치마였지만 맨발은 아니었다. 머리도 적당히는 간추려서 아까의 탱탱한 긴장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새롭게 등장한 여자는 완연히 수줍음을 타고 있었다. 마치 아까 보여 준 모습은 다 잊은 것으로 믿겠다는 태도였다. 수줍어하면서 나를 방으로 안내하는 황녀의 뒤에서 김종구는 그것 보란 듯이 매우 당당했다.
그렇다고 황녀의 수줍음이 길게 가지는 않았다. 김종구가 그녀를 수줍어하게 내버려두지도 않았다. 황녀는 황녀다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고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조신함을 걷어치운 채 거들먹거리기 시작했다.
선술집에서 만나 그 밤으로 만리장성을 쌓고 단소 가락에 혼까지 앗기운 채 다음날로 데리고 나와 같은 이불 속에서 자기 시작했다는 황녀와의 인연에 대해서 김종구가 하는 말은 이런 것이었다.
“난 저것의 야비함에 반했어요. 우리 황녀의 매력은 야만스럽고 교활하다는 것이지요. 그게 편해요. 난 베일로 얼굴을 가린 성처녀한테는 아무런 흥미도 없어요. 그짓 할 때 베일을 벗기는 수고나 한 가지 더해질 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김종구는 황녀가 자기의 여자인 것을 단숨에 알아보았다고 했다.
“정말 굉장한 여자였어요. 나는 저 여자를 보자마자 저 불룩한 가슴 밑에 내 갈빗대 한 짝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챘지요. 이건 행운이에요. 마침내 잃어버린 갈빗대를 찾은 거라구요. 말도 마세요. 그거 찾겠다고 밤마다 계집들 눕혀놓고 맞춰 보느라 힘깨나 뺐지요. 당분간은 힘 좀 아껴도 되겠으니 행운이 아니고 뭐겠어요. 아, 왜 당분간이냐구요? 글쎄, 그놈의 갈빗대가 계속해서 맞으라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뼈다귀도 자꾸 자랄 텐데. 그럼 다른 것을 찾아야지요. 얼마든지 또 다른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이거, 선생님 앞에서 별말을 다 하는군요.”
김종구는 그러나, 조금도 별말을 다 했다는 표정이 아니다. 그의 말은 고해투의 어조나 자기 변론의 투와는 정반대의 느낌을 준다. 그는 어떤 일이든 다 자신이 개입했고 통합했으며 조종하고 있다는 어투로 말하고 있다.
그런 자한테 해서는 안 될 별말이 있을 리가 없다. 별말을 하더라도 이미 조절이 끝난 뒤다. 그래서 나는 그가 만난 지 두 달 만에 황녀를 버리고 훌훌 떠나 버렸다는 말을 할 때도 의아해하지 않았다.
“문제는 바로 이 김종구한테 있었지만 다른 갈빗대를 찾아가느라 저걸 버렸던 것은 아니었어요. 계집 데리고 세 끼 밥을 꼬박꼬박 찾아 먹고 살자니 숨통이 확확 막히고 가슴에선 열불이 치솟는 걸 어떡합니까. 황녀도 그런 날 잘 알지요. 저건 또 보통 계집입니까? 갈 테면 가라, 이런다구요. 그러다 몇 년 뒤에 술청마루에서 저걸 다시 만났지요. 그래 또 서너 달 같이 살다 보니 이번엔 저게 먼저 튀는 거예요. 이젠 끝이다, 하고선 미련도 없었는데 작년에 저걸 또 만났지 뭡니까. 세 번째라구요. 이게 사람 힘으로 되는 겁니까. 도망갈 일도 아니구요. 그래서 요즘엔 아예 데리고 다닙니다.”
황녀가 부엌에서 밥상을 차리는 사이 김종구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한 곳에 일 년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고 했다. 한 고장의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을 보고 나면 미련 없이 짐을 챙겨서 다른 일거리를 찾아 나서곤 했다.
그가 거금도를 떠난 것은 고흥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아우가 돌아와 멸치어장과 해우 농사를 떠넘기고 난 뒤였다. 그렇다면 내가 일 년간의 섬 생활을 청산하고 그곳을 떠난 다음해였다. 그는 다시 돌아와서도 고작 삼 년을 다 채우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섬을 떠난 뒤에 그는 주로 산간지방으로 맴돌았다고 말했다. 그래야 바다가 보고 싶어지고, 바다에 갈증이 나면 고향으로 갔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영영 늙은 어머니와의 만남을 미루기만 할 것 같아서 그렇게 일부러 갯가는 피해 다녔다고 했다.
일 년 혹은 이 년에 한 번씩 집에 들러 보게 되는 어머니는 언제나 그만큼만 늙은 채 그대로더란 말도 그는 했다. 젊어서의 풍상으로 앞당겨 미리 늙어 버린 어머니한테는 남은 세월은 모두 덤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어머니는 방안을 기어다니며 살아 있다고 했다.
산간지방을 떠돌며 그는 많은 일을 했다. 지리산 노고단까지의 관광도로도 그가 참여한 공사 중의 하나였고 댐공사에도 여러 번 끼여들었다. 세상에 삽질이나 지게질이 필요치 않은 공사는 없었고, 따라서 그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는 공사장도 없었다.
원하는 대로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직업의 재미라고 그는 말했다. 세 끼의 밥과 누워서 잠잘 자리만 해결되면 어디라도 관계가 없는 것이다. 꼬박꼬박 부어야 할 월부금이나 은행통장 같은 것은 한번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주소나 전화번호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주민등록등본이나 신원증명을 요구하는 직장은 애시당초 흥미도 관심도 없었다. 그는 자신을 얽어매려는 어떤 수작도 모두 거부했다. 그는 말했다.
“그렇게 살아서 벌써 내일 모레 오십인데 새삼스레 무얼 바꾸겠어요. 나는 이대로가 편해요. 난 계속 김종구로 지지고 볶고 할 테니까.”
그 말 끝에 그는 갑자기 눈을 빛내며 내게 말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어디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구요? 거기서 내가 이 년 가까이 살았거든요. 말씀드렸지요? 어디라고 일 년 이상은 머무르지 않았다고. 근데 그곳은 도저히 일 년 갖고는 모자랐어요. 그래서 이 년이나 썩었어요. 뭐, 짐작하시는 것 같은데, 그래요. 거기에 또 내 갈빗대가 하나 있었다구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지요. 그 여자는 자기가 내 갈빗대로 만들어진 여자라는 것을 도저히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자기의 갈빗대는 도시에서 넥타이 매고 커피나 홀짝거리며 종이를 만지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여자가 그렇게 나오면 할 수 없는 거예요. 그걸 패겠어요, 업고 야반도주를 하겠어요? 난 절대 그런 짓은 안 해요. 그런데 하루는 한밤중에 그 여자가 내 숙소에 찾아와 훌쩍훌쩍 구슬피 우는 게 아니겠어요?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이건 참, 기가 막혀서. 지금 저 윗마을에 자기가 좋아하는 총각이 와 있는데 제발 좀 어떻게 해달라는 거예요. 서울로 유학 가서 거기에 유망한 직장까지 잡아 놓은 남잔데 한때는 그 치도 자길 좋아하는 눈치를 보였다는 거죠. 그런데 이 친구가 서울 처녀 하나를 데리고 와서 부모님께 결혼할 사이라고 그런다는 겁니다. 시골에 형제가 득시글거리고 장남인데 부모님도 모셔야 할 형편에 그 여우같은 서울 처녀하고 결혼하면 집안이 편할 리가 있겠느냐고 여자가 울면서 쫑알거리데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알았다, 그 친구가 너하고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마. 여기서 기다려라, 이랬답니다.”
그런 뒤 김종구는 밤중에 풀숲의 이슬을 헤치고 윗마을로 올라갔다. 그리고 친구라고 속인 뒤 남자를 마을 뒷산으로 불러내 늘씬하게 두들겨패 줬다. 그는 그 처녀의 사촌오빠 되는 사람인데 알고 보니 너, 내 동생 책임져야겠더라, 안 그러면 오늘 밤 내 손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줄 알아라, 그렇게 겁을 줬다. 그런데 남자는 몇 대 맞지도 않고 쓰러져서 정신을 잃어버렸다. 아무리 흔들어도 정신을 못 차리길래 김종구는 그 길로 자기 숙소에도 들르지 않고 그 마을을 떠났다.
얼마 후에 그 친구가 죽었으면 죄값이나 받아야겠다고 어슬렁어슬렁 그 마을로 돌아가 보니 한 집에 잔치가 벌어져 있는데, 알고 본즉 자기가 좋아했던 그 처녀와 죽은 줄 알았던 남자가 그날 결혼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또 뒤도 안 돌아보고 그 마을을 빠져나왔죠. 그런데, 한번 물어나 봅시다. 그거, 내가 잘한 일이오, 못한 일이오? 암만해도 그것을 잘 모르겠단 말이오.”
그게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 내가 어떻게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꿈에서조차 삶의 다른 방식을 생각해 보지 못하는 나 같은 위인한테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그때 다행히도 황녀가 밥상을 들여왔고 그와 나는 시침을 떼고 밥상 앞에 둘러앉았다. 황녀가 나타남과 동시에 김종구는 다시 황홀한 시선으로 황녀를 더듬고, 나는 김종구가 보여주는 수천 개의 얼굴에 거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가 사실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는 나의 해석은 그러나, 어떤 망설임도 없이 그를 휘어잡는 황녀 앞에서 또 다른 해석을 새끼 친다. 여자는 남자를 단숨에 제압하고 남자는 투덜거리면서도 기꺼이 여자에 복종한다. 때로는 여자가 끊임없이 그를 짓밟도록 은근히 유도하는 경향까지 있다. 김종구는 그렇게 결코 간단히 해석되어지지 않는다.
“당신은 두부를 먹어야해. 한 조각이라도 남겼단 봐라. 잘 때 입에 쑤셔 넣을 테니까.”
밥상을 가운데 두고 여자가 잔뜩 무례하게 명령하면 그는 꾸역꾸역 두부를 해치웠다.
“얼마나 처먹어야 이놈의 세상에서 두부가 사라지려나.”
김종구의 탄식에도 아랑곳없이 두부접시가 비워지자 여자는 잽싸게 또 한 접시의 두부부침을 내왔다. 그의 고역은 다시 시작되고 황녀의 채찍질은 한치의 동정도 용납되지 않았다.
“이 사람은 고기를 입에도 안 대요. 이이가 하는 일이 얼마나 고된 것이지 알면 선생님도 제 심정을 이해하실걸요. 글쎄, 콩으로 만드는 것까지 다 싫대요. 뭐래나 식물성 고기라는 그 말이 구역질난대나, 그런 시시한 소리나 지껄이고.”
“그 말은 정말 구역질나요. 어떻게 식물과 동물을 생피 붙게 만드는 그런 말을 만들어 내는지, 하여간 뭐 좀 배웠다는 사람들 잔인한 것은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그 말 때문에 세상 모든 풀이 다 더렵혀지는 것 같잖아요. 제길, 먹고 싶은 놈은 동물성 고기나 실컷 먹으래지.”
저녁상을 물리고 난 뒤에 황녀는 술상을 보겠다고 했다. 손님이 여자인 만큼 과일이나 차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그들에게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술상은 그만두고 단소 소리나 한 가락 듣고 가겠다고 했지만 두 사람 모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가로막았다.
“선생님, 무슨 답답한 말씀을 하십니까. 우리 모두가 이렇게 즐거운데. 하긴 선생님 같은 분이 이런 기분을 알긴 뭘 알겠습니까. 우리 황녀라면 모를까. 머릿속에 생각이 많으면 행동이 굼뜨고, 그러기 시작하면 인생은 망하는 겁니다. 그럼요, 자신할 수 있어요. 뭐든 너무 많이 가지면 걸그적거린다, 이 말입니다.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죽을 수도 없다니까요.”
그사이 황녀는 잽싸게 술상을 들여왔다. 따로 차리고 말 것도 없이 먹던 반찬 몇 가지에 됫병으로 파는 막소주가 병째로 따라 들어왔다.
“평생 내가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는 신조가 하나 있다면 그게 뭔 줄 아세요? 머릿속에 먹물 담아 놓고 주위에 검정물 뿌려 대는 인간하고는 길게 상종하지 말 것, 바로 그겁니다. 잠깐은 되지요. 하지만 길게는 안 돼요. 이거 선생님 듣기에 섭섭해도 할 수 없어요.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다는 것은 욕이에요. 그건 모두 쓰레기거든요. 머리는 즉시즉시 청소를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알맹이를 발견했을 때 얼른 쓸어 담지요. 곰팡이가 가득 차기 시작하면 정말 끝장이에요.”
그의 격렬한 말에 나는 웃었지만, 그러나 속으로는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김종구 앞에서 그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할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나는 곰팡이 핀 머리를 가리고 싶었다.
“난,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때려쳤어요. 도대체 뭘 배우라는 건지 답답하기만 하더라구요. 보세요, 그따위 자잘한 셈본이나 배우고 현미경으로 눈에 뵈지도 않는 벌레나 쳐다본다고 세상 사는 이치를 터득할 수 있겠어요? 아주 꽉꽉 막혔어요. 어떻게 해볼 수도 없을 만큼. 이러다 영 바보 되겠다 싶어서 그 당장 집어쳤지요. 그 뒤로 충고하기 좋아하는 사람마다 그러는 거예요. 검정고시라나, 뭐 그런 것도 있다구요. 젠장, 새삼스럽게 허접 쓰레기를 채워 죽도 밥도 안 되면 그 사람들이 내 인생 책임집니까. 지금 생각해도 아주 잘한 짓이에요. 넓은 세상 어디든 뛰어들어 북대기치다 보면 막힌 머리도 확 뚫리게 돼 있다구요. 그게 진짜예요. 살아 있는 거지요. 팔십을 산다 해도 못 해 보고 죽을 일이 수두룩한데 끝도 안 보이는 그 짓을 왜 하겠어요. 그거, 중독되는 거 아닙니까?”
그의 말은 당당하다. 조금도 야비하지 않다. 음해(陰害)의 의도도 없고 방약무인한 자의 무례나 열등감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의 얼굴을 보면 그걸 알 수 있다. 그의 말은, 그가 마시는 소주가 그렇듯 맑다.
김종구는 얼굴을 찡그리며 소주잔을 비웠다. 나야 술을 전혀 못하는 형편이었지만 다행히 황녀의 주량이 대단했다. 황녀는 남자의 얼굴을 홀린 듯이 바라보다가 한번씩 자랑스럽게 나를 돌아보았다.
“그거 중독되면 평생 돌다리 두들기다가 인생 재미 하나 못 누리고 황천 가는 거예요. 거기 가면 염라대왕이 뭐랠 줄 아십니까. 너 이놈들. 한평생 기회를 주었는데도 고작 그것만 맛보고 들어와? 에이, 뜨거운 맛 좀 봐라! 이러면서 화탕 지옥을 빠뜨리는 겁니다. 펄펄 끓는 물에 집어넣는다 이 말이지요.”
흡사 끓는 물에 손이라도 닿은 것처럼 흠칫 놀라면서 김종구는 또 한 잔을 성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빈 잔에 철철 넘치도록 술을 채우면서 황녀는 말했다. 역시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않고.
“이까짓 한 되들이 가지고는 우리 두 사람, 입이나 겨우 축인답니다.”
세상에 쉬운 것이 술에 맛들이는 것인데 그것도 못 하냐는 듯이 나를 가엾게 쳐다보는 황녀의 얼굴은 그제서야 발그레하게 물들어 한층 싱싱하게 보였다. 밝은 불빛 아래 드러나는 황녀의 얼굴은 결코 미인은 아니었다. 눈은 가늘게 찢어졌고, 휘어진 매부리코는 여자의 인상을 몹시 강퍅하게 만들고 있기는 하나 오히려 그런 약점들 때문에라도 황녀는 황녀답게 보였다.
나는 이제까지 연루된 모든 것들, 한마디로 뭉뚱그려 놓은 도덕과 긴 역사의 문화라고 하는 것들이 이들 앞에서 얼마나 하찮게 무너지는가를 절감했다. 내가 영향받고 그에 의해 단련되던 것들이 사실은 아주 작은 세계에 불과하다는 것, 나는 평생 이 작은 세계 밖으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은 절망이었다.
나는 비어 있는 황녀의 잔에 술을 채운 다음 이제는 단소의 가락을 들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넌지시 일깨웠다. 나 같은 위인한테는 궁지에 물렸을 때 어떻게 장면 전환을 해야 하는지 정도는 저절로 떠오르는 법이니까.
“가만, 악기를 꺼내오는 수고를 저한테 맡겨 주시면 영광이겠나이다.”
김종구는 그 큰 덩치를 흔들며 방의 윗목으로 갔다. 그들이 기거하는 이 방에 유일하게 가구가 있다면 그것은 낡은 텔레비전을 받쳐 놓은 허름한 서랍장이었다. 그것 외에는 몇 개의 종이상자와 벽을 따라 외엔 볼 만한 세간이라곤 없었다.
단소는 서랍장의 맨 위칸 깊숙이에 소중하게 간수되고 있었다. 김종구는 서랍을 빼는 동작부터 이미 잔뜩 과장을 하고 있었다. 황녀는 남자의 흔들거리는 몸짓에 무릎 장단을 맞추었다. 그리고 나는? 나는 아직도 그들과는 겉도는 기름으로 거기에 있었다. 그런 스스로가 너무나 한심스러웠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용해될 수 없는 것도 할 말은 있는 법이니까.
“이 여자를 처음 만난 데가 어딘 줄 아세요? 아니, 언제, 어디서, 라고 말해야 선생님 같은 분은 금방 알아듣겠군요. 그해, 오월에, 나도 광주에 있었어요. 더럽게 걸린 거지요. 동생놈한테 멸치어장이랑 노모와 여동생까지 쓸어 넘기고 갑갑한 세상 네 활개치고 살아 볼까 나온 것이 우선 광주였던 거지요. 그런데 재수 옴 붙게도 거기가 전쟁터였다구요. 거기서, 이 여자가, 술청에 턱 퍼질러 앉아 단소를 불고 있지 뭡니까. 그 난장판 속에서, 단소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요·····.”
김종구는 비단주머니에서 조심스럽게 단소를 꺼내며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정중하고도 엄숙한 자세로 황녀에게 그것을 바쳤다.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황녀는 오만하게 단소를 받았다. 단소를 진상한 남자는 뒷걸음으로 물러나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죽여주지. 암, 죽여줄 거야” 하고 말했다.
나는 김종구의 신호를 알아들었다. 지금처럼 허튼 잣대를 대지 말 것. 무조건 죽어 줄 것. 나는 입속에 몇 개의 칭송 어구들을 굴리며 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렸다.
황녀는 구멍에 입술을 대고 숨을 불어넣으며 한참 동안 소리를 골랐다. 저 여자가 아까 맨발로 동네 고샅을 헤매며 비명 같은 웃음을 흩뿌리던 여자였던가. 심심하면 남자가 일하는 곳에 찾아와 돌멩이를 던지며 같이 놀자고 유혹하는 여자였던가. 나는 황녀의 단아한 자세와 지그시 감은 눈의 위엄에 미리 마음을 빼앗겼다.
피리가 남자의 성대를 닮았다면, 단소는 여자의 가늘고 맑은 음성에 더 가깝다. 그래서 때로는 요요(寥寥)하고 때론 청청(淸淸)하다. 단소 연주에 대해 내가 알고 있거나 느낀 바가 있다면 이것이 전부였다.
김종구가 걱정할 것도 없는 것이, 이만큼 알아 가지고는 그저 찬사나 바치는 외에 논평은 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황녀의 소리 한 가락이 끝났을 때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어휘를 다 동원해서 표현한 찬사까지 의심할 수는 없다. 적어도 나는 이미 한 경지를 더듬은 여자의 소리를 느꼈던 것은 사실이니까.
“이건 <천년만세>라는 곡이었구요, 이제는 <청성곡> 가락을 불 겁니다. 나도 우리 황녀 덕분에 단소 가락에도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저 내키는 대로 불어 젖히려니 했지 저것에도 정해진 음계가 있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어요.”
김종구가 내 청취 태도에 만족했다는 것은 그의 벌어진 입으로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비록 황녀에게 앙코르를 청하는 예의를 깜박 잊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천년만세>라는 가락의 흥겹고 빠른 장단은 진실로 유쾌하고 화사했다.
“<청성곡>은 저 사람이 매일 밤 불어 달라고 조르는 곡이랍니다. 소리가 잘 안 되는 날도 있는 법인데 그저 막무가내라구요.”
“잔말 말고 빨리 불기나 하라고. 대가는 사설이 없는 법여. 구멍으로 말해야지.”
“아이구, 언제 적부텀.”
여자는 눈을 흘겼고 남자는 비스듬히 누워 눈을 감았다. 그것이 <청성곡>을 듣는 그의 고정적인 자세인 모양이었다. 황녀는 남자가 들을 준비가 다 되었다는 신호로 눈을 감자 고요히 구멍에 입술을 댔다. 닐닐리 삘릴리, 나니르 나니르. 음공(陰功)을 누르는 황녀의 손가락이 점차 춤을 추듯 빨라지고 그런가 하면 어느 순간 벼랑에 밀리듯 소리가 천길 나락으로 툭 떨어지고 만다. 마치 격랑에 휩쓸리는 듯하다가 때로 깊은 바닥으로 잠수하는 그 거침없는 소리들, 나는 김종구가 이곡에 빠져 버리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도 그렇다. 감은 눈꺼플이 파르르 떨리도록 그는 소리에 온몸을 싣고 소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는 지금 바다에 있다. 바다는 김종구에게 있다. 밀리고 밀려서 부숴지는 바다. 퍼내도 퍼내도 줄어들지 않는 바다, 멍들고 멍들어서 퍼렇기만 한 바다.
닐니리 삘릴리,. 나니르르 리르르르…….
마침내 긴 가락이 끝났을 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단소에서 고요히 입술을 떼던 황녀의 손짓이 나를 그렇게 하도록 했다. 여자는 대나무 악기로 막았던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아무 소리도 하지 말라는 주의를 주었다.
그제서야 나는 남자의 볼에 흐르는 한 줄기 눈물을 보았다. 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 이미 희끗희끗 흰머리가 터전을 이루고 있는 귀밑머리를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나는 아득했다. 지금 김종구가 소리에 실려 떠내려와 배를 댄 기슭은 어디일까. 아무도, 지금, 바로 이 순간,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단소를 내려놓고 황녀는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남자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는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밤, 나는 몇 번인가 내 손으로 내 잔을 채웠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씩 서로의 비어 있는 술잔을 채워 주기도 했다.
'━━ 감성을 위한 ━━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길 - 이청준 (上) (0) | 2015.10.15 |
---|---|
숨은꽃 4. - 양귀자 (0) | 2015.10.13 |
숨은꽃 2~2. - 양귀자 (0) | 2015.10.10 |
숨은꽃 2~1. - 양귀자 (0) | 2015.10.09 |
숨은꽃 1.- 양귀자 (0) | 2015.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