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에서 양 극단으로 치우치면 마귀가 틈탑니다.
신앙생활에도 균형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균형이 깨지면 그 신앙은 더는 신앙이 아니게 됩니다.
세상일도 그렇고 신앙생활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양다리신앙을 말함은 더더욱 아닙니다.
성경 말씀은 조금 읽으면서 영적인 것에만 치우친 분들이 있습니다.
어디 누가 영성이 좋다더라,
어디 누가 엄청난 은사가 나타난다더라,
어디 어디 가면 병도 고친다더라,
누가 그러던데 어떤 현상이 있다더라,
이는 아주 위험합니다.
마귀가 틈타기 딱 좋은 환경이 됩니다.
이단으로 빠지기도 아주 쉽습니다.
실제 마귀는 이런 타입의 사람을 좋아하고, 이런 사람들을 통해 마귀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마귀는 교만하고 높아지려는 존재입니다.
마귀가 틈타면 당연히 교만하게 되어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자신은 당연히 구원받은 줄 확신합니다.
이러다 마귀의 영을 받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말씀의 진의를 알지 못하니 마귀의 소행인지 성령의 역사인지
분별하지 못하여 마귀의 역사도 주님의 역사로 받습니다.
이런 분들은 주변 분들에게 아주 피곤한 존재가 됩니다.
성경 말씀으로 알려줘도 이미 마귀에게 잡힌바 되면 자신은 특별한 존재로 각인되어
성경 속에 기록된 말씀조차 인정하려 하지 않고 무시합니다.
자신에게 역사하는 마귀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는 그날이 언제인지 주님만 아신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이 알려주셨다며 휴거의 날짜를 서슴없이 예언합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셨다며 서슴없이 전쟁예언을 합니다.
하늘에서 왔다며 전쟁 시기를 확신하여 예언한 홍혜선류와
자기에게만 휴거 날짜를 알려주셨다 하여 휴거 날짜를 남발하는 이런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또한, 상대의 약점을 말하고 자기의 영적 노예로 삼으려 이러이러하지 않으면 이러이렇게 된다며
겁을 주는 입은 옷만 다른 무당들을 조심하십시오.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위로부터 왔기에
절대 진리라고 확신하여 100% 자신감에 차있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의문을 가지면 성령훼방 죄라며 날서게 정죄합니다.
사람들을 아랫사람 취급하며 이러저리 휘두르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영적인 것은 전면적으로 다 터부시하며 말씀에만 치우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성경을 잘 아는지 줄줄 외울 정도이고 바로바로 성경 몇 장 몇 절이라고 입에서 튀어나옵니다.
남들이 보면 믿음이 아주 좋아 보입니다.
성경 박사처럼 보입니다.
스스로도 그로 말미암아 믿음이 좋다 여기며 우쭐합니다.
구원받은 줄 확신합니다.
이런 분들도 교만의 길로 가게 됩니다.
오직 말씀으로만 외치면서 영적인 것에 무지하여 영적인 것을 대부분 믿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은혜로 부어지는 은사 등등...
대부분의 역사를 부정하거나 마귀의 소행으로 몰아갑니다.
바리새인 화 되어가는 현상입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주님께서 역사하기 참 힘듭니다.
말씀을 생명으로 받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나타내는 도구로 활용하여 제 생각과 다르면 판단 정죄하는 데 앞장섭니다.
이단 감별하는 분들중에 이런 분들이 상당히 많은데 성령님의 역사가 없으니
오직 배운 지식으로만 겉으로 보인 것만 가지고 함부로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성령께서 함께하는 분들은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에 이단 감별사들이 없습니다.
거듭나면 더이상의 정죄 판단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판단의 근거가 자신의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이런 분들 상대하다 보면 머리가 아파옵니다.
판단하고 정죄하는 게 입에 배어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모두 행위적 믿음 혹은 행위 구원으로 몰아세우고
성경적인 이론에만 박식하여 믿음의 삶이 없습니다.
육의 악한 속성이 거침없이 자신을 통해 나와도
성경 지식을 아는 것만이 거듭남이고 믿음이라고 철석같이 믿습니다.
이런 사람 역시 마귀가 역사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 됩니다.
목이 뻣뻣한 이런 사람들을 이용하여 귀한 종들마저
이단으로 만들어 복음을 훼방하며 숯을 머리에 쌓는 줄도 모릅니다.
성경 지식은 우리가 성령으로 회개하여 거듭나 주님의 보호 하심 아래 순종하며
구원받게 하기 위한 살아있는 생명인데, 이를 생명으로 받지 않고 이론적 지식으로만 다루기에
믿음의 삶이 없이, 말만 앞세우는 입술 믿음의 현상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론적 지식으로만 주님을 알고 있으니 성령의 역사가 없어서
십자가 피 흘림의 의미도 문서적 이론으로만 받고, 성경에 기록된 구원의 말씀도 영성으로 받지 아니하여
마치 수학 방정식처럼 다루기에 그 부분을 읽은 것만으로도 자신은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자신하게 됩니다.
믿음과 은혜는 내가 뭘 읽었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내가 가난한 심령으로 간절히 주님께 요청하고 구할 때
주님의 절대주권으로 우리에게 부어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여 거듭남의 영적 체험도 없이
성경을 읽은 것만으로 의지적 관념적으로 스스로 동의하여 성경에 그렇게 나왔으니
나는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는 위험한 확신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만 뜨겁고 가슴은 얼음장 같은 현상이 생기고 머리로만 믿으니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없기에 이웃에 대한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실적 믿음의 삶이 없으니
올바른 믿음으로 가는 성도들을 행위 믿음 혹은 행위 구원으로 치부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지식으로는 율법적인 것을 매우 배격하면서도
자신들은 이미 영적 율법의 올무에 걸려서 영성 없는 육적 지식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고 믿습니다.
영성이 없는 육적 지식으로만 나오는 관념적인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
지식 자체가 우상이 되어 지식만을 숭배하게 됩니다.
기록된 말씀은 영적으로 살아 움직일 때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영성 없는 지식 믿음은... 매우 교만해져서 비판, 정죄, 판단의 영이 역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식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결코 남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하여, 신앙적인 논쟁이 극심할 정도로 강하게 나타납니다.
또한, 성경 지식의 분량에 따라 믿음의 척도를 재려고 합니다.
성경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을 믿음이라 착각합니다.
아무리 아는 게 많아도 그게 믿음의 삶에 관여하지 못한다면
그건 그저 말씀을 받은 게 아니라, 문서적 지식을 머리로만 메모리한 것입니다.
믿음은 목마른 심령으로 내가 간절히 주님께 원할 때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지식적으로 내가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면 구태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이유가 없습니다.
선지자들을 보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냥 성경에 기록된 말씀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내 믿음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으로 아는 것은 권장할만하지만 그것 자체가 우상이 되면 안 됩니다.
신앙은...
좌로나 우로나 한쪽으로 치우치면 이미 믿음이 아니게 됩니다.
영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치우침 없이 균형을 이룰 때 마귀의 역사를 무력화시키는 깨끗한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현상을 말씀에 의지하여 분별하고, 배운 말씀은, 영성이 있을 때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분별하여 상호 보완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침 있는 신앙을 경계하십시오.
중심을 잃은 치우침은 마귀의 놀이터가 됩니다.
성경을 아는 만큼 믿음의 삶에 균형감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일수록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거듭남 없는 지식은 그냥 지식일 뿐입니다.
지식이 생명력을 가지려면 성령님의 능력으로 거듭나 주님의 인도를 받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침 있는 신앙은 주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치우치게 되면 주님을 의지하기보다는 내가 만든 틀에 더 의지하기에 아주 위험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양 극단으로 치우침이 없는 균형 있는 신앙생활이 되시길 권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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