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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위인 - 전주의 한알의 밀 - 데이비스 선교사

Joyfule 2021. 6. 19. 08:09



신앙위인 전주의 한알의 밀 - 데이비스 선교사               


오늘은 미국 남장로교에서 조선에 , 파송되어 최초로 순교한 여자 선교사님이신 데이비스
선교사님의 조선 사랑 이야기를 통해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조선 선교의 시급성에 대한 호소를 듣고 , 데이비스는 조선에 선교사로
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데이비스가 조선에 오기는 어려움이 많이 있었습니다.

당시 어머니가 중병으로 사경을 헤메고 있었기 때문에 , 데이비스는 떠나는 날을 늦추려 하였지만, 

어머니가 강력하게 떠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데이비스는 그래도 어머니를 돌보면서 떠나는 날을 늦추었지만 , 

어머니는 내 말에 순종하라고 하면서 야단치듯 빨리 떠나라고 강권하였습니다. 

데이비스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역만리 한국 땅으로 향한 것입니다.

남장로교 7인의 선발대로 오신 선교사님중, 처녀 선교사는 데이비스와 메티 선교사 두 분이었습니다.
데이비스 선교사는 7인의 선발대중 가장 먼저 한국에 도착하는데 ,
그날이 1892년 10 월 17일이었습니다. 나머지 6명은 11월 3일에 도착하였습니다.

서울에 도착한지 9일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데이비스는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너무 먼 거리여서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뵐 수 없지만 , 천국에서 어머니를 다시 만날때는 한국의 수 많은
영혼들과 함께 만나겠다고 눈물로 기도하면서 , 오직 한국인을 위하여 최선의 삶을 살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7인의 남장로교 선교회 선교사님들은 한국에서 추운 겨울을 나면서 어학공부와 기도로 호남선교를 준비하였습니다.
준비하는 기간에 각 지역을 전도하고 다녔습니다. 그들은 언어와 한국의 풍습을 배우며 ,
선배선교사들의 선교현장을 방문하면서 , 철저히 호남선교를 위해 준비하였습니다.

드디어 1896년 군산으로 내려가 어린이들과 부인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시작하였고 학교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데이비스 선교사는 그 후 전주로 이전하여 헤리스 선교사와 결혼하였습니다.
헤리슨 선교사는 서문밖에서 약방을 개설하고 환자를 치료하면서 선교하고 있었습니다.
데이비스는 결혼하여 더욱 더 안정되게 선교에 힘쓸 수 있었습니다.

전주의 선교의 문이 더욱 더 활짝 열렸습니다.
선교부는 정식으로 전주에 잉골드라는 여의사를 파견하여 병원사역을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지금의 전주 예수 병원입니다.
그녀는 남편 해리스 선교사를 도와 전북지방선교를 위해 헌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은 역사하셨습니다. 그녀는 집집마다 가정방문을 통해 전도에 힘썼습니다. 

한해에 1885명을 전도하는 열매를 맛보기도 하였습니다.

데이비스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따라다니면서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심방하고 전도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전도의 열정이 강하였습니다.
데이비스는 어린이를 누구보다도 사랑하였습니다.
전주 예수 병원에서 입원해 있는 어린아이들을 돌보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모두 예수님께 인도하였습니다.

누구보다도 혼신의 힘을 다해 환자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병들어 힘들어하는 어린아이를 보면 견딜 수 없는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아 주면서 예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그러다 그녀는 열병에 전염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데이비스는 그 병으로 41세의 나이로 , 1903년 6월 20일 소천하였습니다.
동료 선교사들은 그녀를 가리켜 "" 생명을 바쳐 선교한 여장부 "" 라고 하며 애도 하였습니다.

데이비스 선교사의 희생적인 삶을 잊을 수 없었던 군산 영명고등학교 학생들은 성금을 모아
1958년 군산 선교지였던 구암에 기념비를 세웠으며, 그 땅이 개인에게 팔리게 되자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부에서 전주시 화산동 외국인 묘지에 기념비를 옮겼습니다.

데이비스는 호남지방의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 순교의 피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순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됩니다. 지금의
호남지역의 모든 교회와 그 성도들을 생각해 보면 ,
데이비스 선교사의 순교가 얼마나 귀하고 값지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