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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비만

Joyfule 2005. 11. 16. 02:45
"세 살 비만 여든까지 간다는데… 지금 빼야죠"


[조선일보 글·김성윤 기자]

지난 22일 오후 2시 제주시 사라봉 장수산책로. 북쪽으로 제주 앞바다의 절경(絶景)이 펼쳐지고, 남으로는 제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산책로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오동통한 초등학생 80여명이 챙 넓은 모자로 따가운 가을 햇살을 가린 40~50대들 사이에서 병아리처럼 재잘대며 나타났다.

학생들을 인솔하던 교사는 “아이스크림, 과자, 청량음료 사주면 먹습니다, 안 먹습니다?”라고 물었다. 학생들은 “아~니요!”라고 힘차게 대답했다. “그래도 몰래 사먹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학생 20여명이 쭈빗쭈빗 손을 들었다.

“돈 있으면 몰래 사먹습니다?”(교사)

“아~니요!”(아이들)

“우리 몸은 몇 년 동안 써야 하나?”

“100년이요!”

“누구 위해서 운동하나?” “저요!”

◆아동비만, 어떻게 관리하나

‘통통’에서 ‘뚱뚱’을 넘나드는 체형을 가진 이 아이들은 사라봉 인근 제주동초등학교 기초체력반 학생들. 아이들은 일주일에 4번 담임선생님과 함께 2시간씩 산책로를 걸으며 운동한다.

기초체력반 소속 초등생 130여명은 매일 아침 학교에 도착하면 수업을 받기 전 30분씩 줄넘기나 조깅을 한다. 방과 후에는 일주일에 네 번 산책로를 2시간 걷는다. 방학에도 기초체력반 학생들은 학교에 나와 2시간씩 운동한다. 지난 여름에는 수영을 했다. 이렇게 운동하면 하루 350~400㎉를 소비한다.

학생들은 매일 ‘건강일기장’에 그날 먹은 음식, 운동량 등을 적어 교사에게 제출한다. 교사들은 매월 체격과 체력을 측정해 학생들에게 알려준다. 어린이 스스로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정신교육도 끊임없이 실시한다.

급식은 다른 학생들과 똑같다. 기초체력반을 만든 이용중 교사는 “아이들이 살 찌는 건 군것질과 같은 잘못된 식습관 때문이지, 급식 때문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기초체력반, 왜 만들었나

기초체력반은 지난 2002년 이용중 교사가 10여년만에 교단에 복직하면서 만들어졌다. “쉬는 시간 아이들이 바깥에 나가 놀지 않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뚱뚱한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과거에 비해 아이들 운동량이 1/5로 줄었습니다. 하루 3000보도 걷지 않는 아이들이 많아요. 성인은 하루 1만보, 아동은 1만2000보 이상 걸어야 하는데 말이죠.”

기초체력반은 몸무게가 표준체중보다 10% 이상 나가는 과체중 학생들을 대상으로 부모의 동의를 받아 편성됐다. 지난 2003년 4학년 1학급이 편성됐다가 지난해 2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 학급씩 5개반으로 확대됐다. 비만 어린이를 위한 ‘살빼기반’을 운영하는 초등학교는 전국 처음이다.



◆아동비만, 어째서 위험한가

이용중 교사는 “비만은 모든 성인병을 조직원으로 거느린 우두머리”라고 표현했다. “살이 찌면 심장에 무리가 갑니다. 관절이 약해지는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피가 탁해져 고지혈증, 동맥경화, 뇌졸중이 쉽게 찾아옵니다. 비만인 사람은 정상체중보다 암이 5~7배 더 많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저출산이 100만쌍이라는데, 그 중에는 불임부부도 많습니다. 불임은 비만도 한 원인이 됩니다. 수명도 현격하게 짧아집니다.”

이 교사는 성인 비만을 예방하려면 어릴 때부터 체중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상 성인은 체세포가 250억~300억개라고 합니다. 그런데 비만 아동이 성인이 되면 체세포가 500억개나 된답니다. 체세포는 한 번 늘어나면 줄어들지 않아요. 그래서 어려서 뚱뚱했던 사람은 살 빼기가 만만찮아요. 30대부터는 체중을 유지하기도 버겁습니다. 어려서 살 찐 사람은 노력으로 살을 빼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됩니다.”

◆부모들, 아동비만 방조

기초체력반은 평균 7㎏의 감량 성과를 거뒀다. 6학년 27명의 체중이 지난해 초보다 평균 7㎏ 줄어든 것으로 나타난 것. 18㎏이나 감량한 학생도 있었다. 2학년 기초체력반은 2~3㎏, 5학년은 4.5㎏가 줄었다.

하지만 자녀를 기초체력반에 보내지 않으려는 학부모는 의외로 많다. ‘과외를 보낼 시간이 없어진다’며 싫어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비만아동이 운동을 시작하면 첫 3개월은 힘들어서 집에 가면 ‘퍼져버린다’고 한다. “보기 좋은데 뭘 빼느냐” “키 크면 빠진다”고 반발하는 학부모도 많다. 이용중 교사는 “특히 저소득층에서는 아이가 통통해야 잘 키운다고 생각하는 가정이 여전히 많다”고 했다.

◆습관, 바꾸면 살 빠진다

이 교사는 “생각을 바꾸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생각이 바뀌면 생활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자연 살이 빠지고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이용중 교사는 학부모가 청량음료를 사들고 찾아오면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뚜껑을 열어 쏟아버린다. ‘마시면 안 되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생활습관이 바뀐 뒤에는 3년은 유지해야 한다. 3년만 유지하면 그 후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관리한다. 지난 1년 동안 3㎏(성인으로 치면 9㎏에 해당)을 뺐다는 4학년 강지영 어린이에게 “살을 빼면 뭐가 좋으냐”고 물었다. “왜 좋은지는 몰라요. 그런데 운동이 그냥 좋고 재미있어졌어요. 청량음료가 마시기 싫어졌어요.”

(제주=글·김성윤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gourme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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