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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의 사상이 현대에 미친 영향

Joyfule 2017. 12. 11. 09:54

 

 

  어거스틴의 사상이 현대에 미친 영향 

 

V. 현대로의 변천

 

전장에서 어거스틴의 사상의 역동성에 헬레니즘과 기독교의 창조적 종합이란 점과 이 창조적 종합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전 존재가 참여하는 385년의 8월 밀란에서 경험한 회심의 강한 역사 등을 살피면서 간략히 그의 역사 이해에 접근하여 그의 사상의 역동성이 그의 역사 철학이요, 신학의 골자라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섭리 사상에 기초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가 제시하고 있는 역사 발전의 여러 요인들을 그의 저술을 분석함으로 점검해 보았다. 그러면 그가 갖고 있는 영적인 동력이 바로 후대 거성들의 중심 사상이 되고 있고 현대라는 사유 체계 속에 미치고 있는 영향이 되고 있음도 분명히 점검해야 하는 데 이 장은 그런 면으로 관심을 기울여 보려고 한다. 먼저는 종교 개혁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그의 영향력을 먼저 점검하고자 한다.

 

종교 개혁자 루터가 (1483-1546) 1505년, 문학 석사가 되고 법률 공부를 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를 하게 될 때 갑작스런 친구의 죽음으로 (낙뢰로 인한) 자기 생애의 길을 포기하고 영혼 구원의 깊은 번민으로 1505년 7월17일 에르푸르트의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갔다. 이때 독일의 그 수도원은 안드레아스 프로레스(1492-1501)와 요한 본스타우피츠 승원장의 개혁으로 중세 수도원으로서는 가장 대표적이라 할만 하였다.

 

이같은 그의 신학적인 첫 출발이 어거스틴적이었다는 점은 그의 사상 가운데 나타난 「두 왕국설」을 통해 특히 어거스틴의 개념이 재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자유의지의 개념에 있어서도 완전한 자유의지의 개념보다도 이성의 지배하에 있는 세상적인 관심사에는 자유의지가 가능하지만 믿음과 영적인 관심사의 경우에는 자유의지를 가질 수 없는 「형식적인 자유」(a libertas in externis)를 언급한 점은 완전히 어거스틴의 자유의지와 은총의 역동적인 관계를 정리한 어거스틴의 입장과 본질상 일치를 이루고 있다. 
 마니교와의 논쟁을 통해 분명히 나타나고 있는 어거스틴의 자유의지는 가능성을 소유한 선으로 소개되면서 펠라기우스와의 논쟁,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인간 자유의지의 비참성을 잘 변증적으로 정리하면서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만 낙관적임을 밝히고 있다.

 

루터가 두왕국설을 정리한 Gerhard Ebeling의 「Luther, An introduction to his thought」란 저서를 살펴보면 그리스도의 왕국과 세상의 왕국을 양분하면서 서로 뒤섞여 있다(intermingled)고 보고 있다. 이 점은 바로 어거스틴의 비유 가운데서 두 나라는 한 강물이 되어 흐른다는 입장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특히 우리가 루터의 교황의 권위에 관한 반박에서 「만인 사제설」이 주장되고 있는데 어거스틴이 힙포의 주교가 될 때 크리스챤들의 적극 지지로 되었던 (특별한 주교의식에 의해서가 아닌) 사실을 암브로시우스의 경우와 함께 들고 있음도 찾아 볼 수 있다. 결국 루터의 사유 안에는 어거스틴의 사상이 재발견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베를린 대학에서 죠지 빌헬름 프레드리히 헤겔(1777-1831)은 고전 철학의 최종 단계의 철학자라고 볼 수 있으며 13년 동안 슐라이허마허의 동료였다. 그는 일찍이 튜빙겐에서 신학을 공부함으로 크리스챤 이상에 기울어 졌으며 마튜 마놀드가 제기한 " Hebraism, Hellenism"에 관한 문제를 헬라 휴머니즘 즉 합리적 완전의 높이에서 본성과 네메시스(운명)에 도전하는 인간의 비극의 심연을 묘사하는 사유 체계와 원리로 물들어져 있으나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구원하는 은총의 수락자로서 인간에 관한 기독교적 이해를 어떻게 철학적인 종합을 구하는 데 주력했다.

 

1806년 헤겔은「Phenomenology of spirit」「영혼의 현상」이란 저술을 통해 윤리적 질서, 문화, 문명, 그리고 예술과 종교와 철학 속에 절대정신(Absolute spirit)의 객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그의 철학 체계의 중심 사상이 바로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providence)를 논했던 어거스틴 사상의 재건임을 알 수 있다.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그는 옛 그리스의 문화에서, 로마제국 내에서 그리고 독일의 세계에서 세계 정신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혹자는 Herder가 열어 놓았던 길을 답습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세계사는 자유 정신의 발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는 그의 입장은 인간 역사 속에서 그가 읽을 수 있는 내적 의미와 상승한 목적의 철학적 양태를 발견하려 하는 그의 의도와 함께 구체성의 배후에 있는 즉 전체를 포괄하는 어거스틴의 사유의 연결임을 찾을 수 있다.

 
헤겔 이후 현대의 정신 사조 속에 있는 전체와 주체의 대립에서 헤겔은 바로 구체적인 현실을 일맥상통하게 묶는 절대정신의 개념을 강조하고 있는 데 이것은 곧 어거스틴의 신학적 역사관에 기초하고 있다고 사려된다.
현대의 실존주의 철학과 심층 심리학과 실존주의적 위기 신학의 주창자가 된 이는 네덜란드의 소크라테스란 별명을 가진 Soren Kierkegaard(1813-1855)이다. 그는 당시대의 네덜란드 주교였던 Mynster와 가족적인 차원에서 친분이 있었기에 매주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자기가 안수를 거부한 이유와 1850년에 출판한 "기독교 안에서의 훈련"이란 저술을 Mynster가 악평한 이유로 결별한다.
이와 같은 상황은 곧 키에르케골을 통해 동시대의 기독교가 부르조아적이며 신약 성서적 기독교가 되지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란 저서를 통해 우리는 본질과 의미, 주어와 존재, 현실과 논리적인 것, 무한과 유한, 본능과 영, 인식과 믿음, 경험과 초월 등 대칭 상태에 있어서 사람은 의무적으로 하나를 택하든 다른 하나를 택하든 새로운 삶의 선택을 기회로 가져야 하며 결코 제 3의 선택은 없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키에르케골의 수도사적인 삶과 그 개인의 생애를 통해 나타난 삶의 경험을 철학화하고 있었던 그 점은 철저히 「고백록」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 이전의 상태와 믿음 이후의 상태를 술회해 나간 어거스틴의 상황과 일맥하고 있어서 키에르케골의 삶과 학문은 어거스틴 적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자유, 평등, 박애의 기치를 들고 인간성 회복을 위해 일어난 운동은 프랑스 혁명인데 이 엄청난 비중을 갖고 있었던 사건을 냉소적인 자세로 바로 보고 있었던 이는 독일의 시인이요, 사상가인 괴테였다.(1749-1832) 괴테에게 있어서 어거스틴과의 관계를 찾을 수 있다면 우선 그의 역사를 바라보는 견해와 사랑하는 아들 아우구스트의 죽음이 어거스틴의 아들 Adeotatus의 사망과 서로 연대되면서 그들 작품의 비극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그의 아들, Adeotatus의 의미를 자기의 저서 고백록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그는 그의 아들과 대화 형식으로 엮은 「 」(선생)이란 책을 저술했는데 그는 거기에서 그의 아들의 영특함에 놀라며 더 나아가 그들에게 큰 기쁨이 되었음을 상세히 기술한다. 그것처럼 괴테의 비극「faust」엘레니란 장에서 괴테는 주인공, 낭만주의로 상징되는 파우스트와 고전주의로 상징되는 엘레니를 결합시킴으로 거기 둘 사이에서 태어나는 에브포리오나스란 아들을 극중에 등장시켜 그를 통해 새로운 자유와 삶의 용기를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삶속에 이뤄지는 비극적 더 나아가 희망적인 요소들을 긍정적으로 정리하여 그들의 사상을 표현해 나가는 방법들의 유사성은 어거스틴 사유와 계속성이 오늘의 정신계 속까지 미치고 있음을 제시해 주고 있다.


VI. 나가는 말

 

인간 문화재 중 불굴의 작품이라 할 고백록을 통해 우리는 그 사상적 다이내믹이 신플라톤주의의 에로스의 길, 복음서와 바울이 준 깊은 영적인 강화력이 합치된 성숙된 인격 형성으로 이뤄진 드디어, 하나님이 존재함을 안다는 그런 지성적인 인식에서 더 깊이 전진하여 (루터는 이런 회의적 인식은 곧 무신론에 도달한다고 지적한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깊이 체험함으로 통달의 지식에 도달했던 어거스틴이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는 새롭게 된 인격이 전 존재 그리고 전존재가 터득한 삶에서 축적된 교육적 자양분들을 사용해서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확실한 근거를 밝히려는 분투하는 그의 삶도 살펴 볼 수 있었다.

 

특히 그의 사상적 동력이 16세기, 18세기, 19세기 루터를 비롯 헤겔, 키에르케골, 괴테, 오늘의 현대까지도 사상적 거성들 속에 전개되고 있음은 A.D 3세기에 한 국지적인 영역에서 세계 속의 종교로 기독교를 부상케 한 그 때, 그 상황만 그의 중요성이 인지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우리의 상황 속에서도 다시 읽혀져야 할 그의 사상을 우리 인간성의 구원의 길잡이라고 사려된다.

 

한결같이 그 감동 어린 고백록을 칭찬하는 데 그와 같은 장르의 저술도 기독교 문학사에서 처음의 것이며 옛 시대의 저술이라기에는 너무 현대인들의 메마른 가슴에 고전으로 와닿는데 그 이유는 내용에서도 물론이지만 그 명확한 설득력을 동원한 수사학적 기법에 있음도 알아야 한다. 동시에 그의 예리한 통찰력은 현대의 사유 속에서 마치도 여러 가지 사유의 체계들이 각기 나름대로 콜롬버스의 발견처럼 새로운 사유의 체계인 냥 주장하지만 이미 어거스틴의 영적인 투쟁 속에서 그 같은 주장들이 서로 연관을 갖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본 논술은 현대의 거성들과 어거스틴 사상의 대화를 시작하는 정도에서 끝을 맺고 있는 데 한 시도에 불과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앞으로 이런 방향의 연구 시도가 활발히 전개되어야 하리라 보며 "사랑하라 그리고 모든 것을 행하라"한 그의 중심 사상은 사랑의 사도 바울을 거슬러 올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 사상까지 도달하고 있으며 그를 통해 다시 예수의 뜻이 오늘날도 선포되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교훈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