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yful자료실 ━━/신상래목사

어떻게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만나게 할 것인가

Joyfule 2014. 8. 19. 22:57

 

 

어떻게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만나게 할 것인가

신상래 목사

 

나라의 미래는 자녀이고 가정의 미래도 자녀이다.

이 새대는 예전처럼 자녀를 많이 낳아 기르는 때도 아니고, 고작 한두 명만 낳아 기르기에 부모가 자녀에게 쏟는 정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기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태교음악은 기본이고, 낳아서 겨우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면서부터 외국어 열풍이 대단하다. 영어유치원이 따로 있다니까 할 말을 잊을 정도이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대학생보다도 더 많은 학문(?)을 닦아야 하니, 자녀에게 거는 부모의 열정이 실로 놀랍다. 그런데 그런 모습은 우리네 부모들도 그래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자녀들이 많아서 한 자녀에게 들이는 돈과 시간은 지금만 못했겠지만 그 정성만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가르치고 비싼 돈을 들여 학원에 보내고 고액 과외교사를 붙여준다고 죄다 우등생이 되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해 어렵사리 명문대학에 들어간다고 해서 부모의 가슴에 빛나는 훈장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도 반거충이가 되어 삼십세가 넘어서도 직장을 잡을 생각은 안하고 집에서 부모의 용돈을 받아쓰는 자녀가 수두룩하다. 어디 그뿐인가? 결혼을 시켜주었더니 이혼을 해서 낳은 아이를 부모에게 훌쩍 던져주어, 황혼의 나이에도 손자들을 키우느라 그렇잖아도 휘어진 허리가 더 굽어진 노인네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이쯤 되면 자녀가 아니라 애물단지요 웬수임에 틀림없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어릴 때부터 금이야 옥이야 길렀는데, 왜 자신의 인생에 무거운 짐이 되어 평생 고단하고 팍팍한 삶의 빌미를 제공하는가 말이다.

 

그 이유를 말해드리겠다. 부모가 학교공부를 시키는 데는 물불 가리지 않고 전 재산을 아깝지 않게 들이면서 정작 신앙공부를 시키는 데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어렸을 때부터 주일학교에 빠지지 않도록 신앙훈련을 빡세게 시켰다고? 아하! 그런가. 그래서 당신이 성인인 된 자녀로부터 얻은 게 무엇인가? 당신이 어릴 적부터 심어준 돈독한 신앙을 바탕으로 반듯하게 자라서 나라에 소중한 일꾼이 되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기뻐하시는 도구로 살아가고 있는가?

필자는 평신도 시절에 중등부교사로 오랫동안 봉사했었다. 그래서 교회교육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주일날 성인과 다름없이 예배를 드리고 공과공부시간에 교재의 내용을 읽고 설명하는 게 전부이다. 말하자면 예배의식과 성경공부가 전부인 신앙교육이다. 아니라고? 여름이면 여름성경학교를 열고 청소년수련회도 가서 열심히 배운다고? 그런 세미나 형식의 행사도 예배를 드리거나 성경공부를 하는 게 고작이다. 아니, 그래서 작금의 교회교육으로 열매가 풍성하게 맺었다면 필자가 할 말이 없다.

사실 중학교 시절에는 교회에 열심히 나오던 아이들도 고3이 되면 공부핑계로 시들해지다가 대학에 가면 부모의 통제를 벗어나서 제멋대로 하기 일쑤이다. 대학시절에도 잘 하던 아이들도 군대에 다녀오거나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신앙을 잃어버리는 자녀들이 부지기수이다. 설령 주일예배는 성실하게 참석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신앙의 전부이다.

 

자녀도 성인이 되어 세상살이에 찌들면서 신앙의 동력을 잃고 살아가는 게 당신과 판박이가 아닌가? 당신이 과거에 지나온 젊은 날들을 회상해 보라. 당신이 걸어가는 삶과 자녀와 별반 차이가 없지 않은가? 사실 성인이 되어 하나님을 만나는 계기는 삶의 풍파를 만나 고난과 역경 속에서 고통에 신음하다가 하나님을 만나야겠다고 결심을 해서 만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도 모태신앙이나 아니면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성실하게 출석하던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사회에 나가면서 해왔던 형식뿐인 신앙생활은 삶과 영혼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이다.

 

자녀가 명문대학을 나와 고소득을 얻는 직장에 들어가거나, 누구나 부러워하는 지위를 얻고 고위층의 신분이 되어 폼 나게 살아가는 게 대다수의 부모가 가진 자녀에 대한 기대감이다. 그렇게 살아준다면 부모의 가슴에 빛나는 훈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소득의 직장에 들어가고 남부럽지 않은 지위나 신분으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행복의 조건은 돈도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요소들도 수도 없이 충족되어야 한다.

대인관계도 원만해야 하며 가정생활도 그렇고, 배우자도 잘 만나고 자녀들도 잘 자라 주어야 한다. 게다가 몹쓸 질병에 걸리지도 말아야 하고 예기치 못한 불행한 사건에도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자녀가 행복하게 사는 조건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고소득의 직장에 들어갔거나 의사나 변호사 등의 신분이 되었다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필자에게 기도 코칭을 받는 분 중에 의사도 더러 있다. 그들도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불치의 병이나 배우자의 관계로 인한 고통스런 문제 혹은 삶의 다양한 문제로 하나님을 만나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고 싶어서 필자를 찾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공부를 잘해 명문대학에 들어가고 공문원이나 교사, 의사나 변호사가 된다고 행복하게 살 거라는 꿈을 깨기 바란다. 의사들의 수명이 일반인의 평균수명에 한참 못 미친다는 걸 보라. 그들이 고소득을 얻기 위해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라는 걸을 말해주지 않은가?

 

이쯤 되면 필자가 무얼 말하고자하는 지, 나름대로 감을 잡으셨을 것이다. 자녀가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자녀에게도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기도와 말씀훈련을 해야 한다. , 하고 계시다고? 어떻게요? 가정예배도 드리고 성경도 읽게 하고 때로는 쓰게도 하신다고요? 그래서 자녀들이 신앙이 부쩍 성장하고 풍성한 열매가 눈에 보이시는가? 제발 형식적인 예배와 성경지식을 넣어주는 방식의 신앙교육은 당신까지만 한 걸로 쓰레기통에 쳐 넣기 바란다. 그런 신앙교육방식으로는 아무런 열매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는 아무런 열매가 없는, 교회에서 배운 교회교육을 자녀에게까지 들이대지 말라.

 

아시다시피 필자의 교회는 두어 가정, 예닐곱 명의 교인의 전부이다. 아이들은 중3 학생과 예배시간에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세살박이 아이가 있다. 필자는 중3학생이 2년 전에 중1이었을 당시 철부지 중학생에게 기도훈련을 시켰다. 방식은 성인과 동일하다.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라고 했다. 기특하게도 그 아이는 필자의 기도훈련에 순종해서 잘 따라왔고 지금도 하루에 1시간의 기도를 하고 있다. 그 아이에게 어떤 일이 생긴 줄 아는가? 하나님이 지혜를 부어주어서 중1 당시에는 반에서 4,5등 하던 얘가 지금은 전교 1%내의 우등생이 되었다. 그래서 상위 1%만 지원이 가능하다는 특목고를, 어느 학교에 원서를 넣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 아이는 학원도 모르고 오직 집에서 공부하는 것 밖에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탁월한 지혜를 주시고 공부에 대한 열정도 주셨다.

부모는 그 학생에게 공부하라고 성화를 대지 않는다. 스스로 잘하기 때문에 공부 그만하고 자라는 게 그 집의 풍경이다. 그 아이는 공부만 열심히 하는 게 아니다. 틈틈이 스스로 기타를 익혀 명곡을 칠 정도이고, 탁구를 배워 동년배 중에서는 그를 따라갈 애들이 없을 정도로 수준급이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아이가 기도를 열심히 해서 공부 잘하다는 간증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지혜와 명철함을 주어서 하는 일마다 탁월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주셨다는 것이다. 그 아이가 어느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 아이의 일생에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당신의 자녀에게도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과 말씀을 읽고 깨닫는 훈련을 시키기 바란다. 자세한 방법은 게시판의 공지란에 있는 가정중심의 신앙을 회복해라는 칼럼에 자세하게 써놓았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하나님은 당신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자녀의 하나님이시기도하다. 당신의 자녀가 하나님을 만나 그분과 동행하는 영적 습관만 들인다면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에게 최상의 인생으로 이끌어 가실 것이 분명하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