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떠내려 가는 배에서 노를 젓는 것이다.
신상래 목사
강에서 배를 타고 노를 저어본 적이 있는가? 그것도 세차게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노를 저어 본 경험이 있는가? 떠내려가는 속도만큼 저으면 제자리에 있게 되며, 떠내려가는 속도보다 더욱 힘차게 저어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만약 노 젓기를 중단하고 있다면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강물의 속도만큼 떠내려간다. 믿음도 이와 같다. 경로당에서 노인들이 얘기하는 것 들어보라. 젊은 시절 폼 나게 살았던 자랑이 대부분이다.
그것처럼 신앙의 연륜이 오래 된 사람들도 예전에 은혜 받았던 얘기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빡세게 했던 과거의 기억만을 늘어놓는다. 노후를 즐기는 노인들이야, 지나온 삶의 여정을 회상하면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 몰라도, 크리스천이라면 과거에 받은 은혜와 자랑스러운 신앙행위가 현재의 자신에게 무슨 도움이 있는가? 이는 마치 어제 저녁때 맛있는 먹은 초콜릿 케잌일 뿐이다. 먹을 때에야 맛있게 먹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뱃속으로 들어가면 맛없는 음식과 마찬가지로 단지 배부를 뿐이다. 그것도 하루가 지나서 배가 꺼지면 다시 배가 고파 속에서 꼬르륵 거린다. 다시 무언가를 먹어 채우라는 육체의 신호이다.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거나 교회 직분이 무거운 사람들이, 왜 과거의 은혜 받은 시절을 그리워하는가? 왜냐하면 현재는 그런 기쁨이나 평안, 자유함, 각종 은사, 기도응답, 문제해결 등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래서 과거를 그리워하며 회상하며 사는 노인처럼 과거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믿음이 좋았고 기도를 열심히 해서 은혜를 듬뿍 받은 것이 현재도 효험이 있는가? 천국은 그동안 해온 신앙행위나 받은 은혜가 점수로 계산되고 누적되어, 일정한 점수가 차면 자동적으로 들어가는 곳인가?
아무리 과거에 대단한 믿음으로 엄청난 은혜를 받았다거나, 희생적인 사역이나 봉사를 열심히 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과거에 불과한 일일 뿐이다. 물론 천국에 들어가면 상급을 받는 것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겠지만, 문제는 천국에 들어가고 나서야 비로소 효력이 발생된다는 것이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과거에 행한 사역이나 봉사, 헌금은 물론, 수많은 은혜도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희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2~5)
위의 말씀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라고 사자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이다.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이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믿음을 위해 삶을 희생했던 사람들이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고 탄탄한 지위와 신분, 재산을 버리고 목숨까지 내놓았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단호한 결심만큼 신앙의 열정도 뜨거웠다. 그건 예수님도 인정하셨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아신다고 하셨다.(2절) 그러나 그걸로 만족하신다고 하시지 않았다.
현재의 믿음이 떨어졌음을 책망하시고 처음의 열정적인 신앙으로 회복하여야 한다고 명령하시고 있다. 처음 믿었을 때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웠던 사랑으로 돌아가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말하신 게 아니다. 회개하고 돌아가지 않는다면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명령하셨다. 촛대를 옮기시겠다는 표현은 무슨 뜻인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철회하겠다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지옥으로 던져버리시겠다는 의미일 게다. 아니?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그 많은 시간동안 눈물로 기도해 왔으며, 헌금으로 드린 엄청난 재산이며, 숱한 날을 예수님을 위해 봉사한 행위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게 아닌가?
그런가?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를 믿고 교회예배에 나오기만 하면 천국은 당연하며, 예전에 해 왔던 기도나 봉사나 헌금이 하늘나라에 축적이 되어 이 땅에서도 축복을 받아 형통하게 살게 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에게는 가혹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시고, 당신에게만은 물렁물렁한 잣대로 대해주신다는 근거를 어디에 두고 그렇게 여기는가? 당신이 에베소 교회의 교인보다 더 열심히 희생적으로 신앙생활을 해왔는가? 아마 아닐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근거는 성경에 없다. 당신이 다니는 교회의 담임목사의 입에서 주워들었는지는 모른지만, 당신네 교회의 담임목사가 예수님은 아니지 않는가?
선택의 여지는 없다. 당신도 처음의 사랑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천국은 당신의 것이 아니며 이 땅에서도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살다가 지옥에 던져질 운명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죄다 처음의 사랑이 변질되고 튼튼한 것처럼 보이던 믿음이 사라져버렸는가? 그건 믿음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에서 노 젓기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떠내려가는 강에서는 노를 젓지 않으면 그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떠내려간다. 아니라고? 열심히 노 젓기를 했다고? 주일성수에 교회봉사에 십일조, 새벽기도까지 빡세게 하면서 믿음의 노를 저었다고? 오호 그런가? 그런 희생적인 신앙행위와 예배의식을 반복하는 것이 믿음의 노를 젓는 것이라고?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렇게 알고 있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믿음은 희생적인 신앙행위와 예배의식을 반복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십수년 아니, 수십 년동안 해온 당신이라면 바위 같은 믿음이 나타나야 당연하게 아닌가? 예수님께서는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다면 산에서 심겨진 뽕나무를 바다에서도 자라게 하는 기적을 보여줄 수 있다고 하셨으며,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증거로 귀신을 쫒아내며 병든 자를 낫게 하며 사탄과 싸워 이기는 능력이 있다고 하셨다. 백번 양보해서 견고한 믿음이 있는데, 당신의 마음에서 평안, 기쁨, 자유함이 사라지고 대신, 근심과 걱정, 염려가 자리 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며 삶의 지난한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없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오랜 신앙의 연륜과 묵직한 직분을 보여주며 믿음이 많다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하는 당신에게,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믿음이란 희생적인 신앙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선물이다. 당신이 노력하고 애쓴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사람처럼 겉으로 드러난 행위로 평가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사람의 속내와 목적과 동기를 날카롭게 통찰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행위는 희생적인 신앙행위가 아니라 날마다 기도와 말씀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것이다. 기도란 무엇인가? 영이신 하나님과 내 영혼이 사귀는 통로이다. 그러므로 성령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여야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증거로서 믿음이 생겨나고 평안과 기쁨과 자유함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런 기도의 강을 건너다보면 고단하고 팍팍한 삶의 문제가 해결되고 기도하는 것마다 즉각 응답이 쏟아지는 것이다.
결국 오랜 신앙의 연륜을 가슴의 훈장처럼 자랑하는 당신도, 과거가 아니라 현재, 성령과 깊고 친밀하게 동행하는 영적 습관을 들여 날마다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신앙은 점점 빛을 잃어다가다 종국에는 꺼지고 말게 될 것이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어둠이 몰려오기 마련이다. 어둠은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래서 사탄이 당신의 마음에 걱정과 염려, 불안과 두려움을 넣어주고 죄를 짓게 하여 생명과 영혼을 사냥하여 지옥으로 끌고 갈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빛이 없다면 울면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처음 사랑을 간절하게 되찾아야 한다. 희생적인 신앙행위나 예배의식이 아니라,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혹독하게 성령이 내주하시기를 요청하고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 헤매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에베소 교인에게 한 예수님의 섬뜩한 경고가 당신에게도 적용이 될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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