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예언자는 흉악한 늑대이다.
신상래 목사
필자가 예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평신도 시절에 예언을 한다는 무슨 교회에 간 적이 있다. 예언한다는 여목사는 찾아간 사람들에게서 돌아앉아 기도를 하더니 성경을 좔좔 읊는 게 아닌가? 그러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몫을 받아 적기 시작한다. 필자도 열 개가 넘는 성경의 장절을 받아 적어가지고 집에 와서 말씀을 찾아보니 아무런 연관성도 없고 무슨 뜻인지 몰라 쓰레기통에 쳐놓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후에 필자가 목사가 되어 기도를 좀 한다는 소문이 나자, 주변에 사람들이 찾아와 예언한다는 사람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려달라고 하도 귀찮게 굴어서, 내심 호기심이 생겨 찾아 간적이 한번 있다. 눈이 펑펑 내린 날 차가 미끄러지다시피 하여 겨우 금산의 산골짜기에 있는 기도원을 찾아가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예언한다는 권사님 앞에 마주 앉았다. 같이 간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내어놓으니까 기도를 한참 하더니,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얘기에 불과했지만 사람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들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필자를 보자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기도를 좀 하고 나서 한다는 말이, 하나님이 신학교에 가서 목사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단다. 지금도 목사인데 신학교를 다시 가라고? 그 예언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직통계시를 받고 있다며 자신만만해 했지만, 결국 귀신의 얘기도 아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필자가 만난 두 명의 예언자는 귀신이 말하지도 않는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진짜 무서운 예언자는 귀신의 영이 들어가 있는 예언자이다. 성령께서 점치는 귀신들린 예언자에게 하신 말씀들을 옮겨보면, ‘귀신 안에 집을 짓고 사는 이들도 있다. 집을 짓고 사는 이들은 점치는 이들이다. 그래서 점쟁이들은 그들의 마음을 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점치는 귀신들이 점쟁이들에게, 상대방의 사건이나 경험들을 귀에 넣어준다. 그러나 앞길은 모른다.’ ‘자기를 지도하는 악한 영이 점치러 가는 사람들에게 가족이 피해를 당한다고 협박하고, 자기는 귀신들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조급하고 입으로 말하는 모든 것이 귀신들에 의해서 미혹당하고 있는 대로 종노릇하며 복만 믿고 찾아다니고, 헛되고 거짓된 악한 미혹의 영에 우린당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이집 저집 찾아다니며, 주리고 목마르고 죄 사함도 없는 귀신들에게 엎드려 절하고, 귀신들한테 정신이 팔려서 죽음이 코앞에 있는지 모르고, 지혜롭지 못하고 복만 구하는 미련한 자들임에 틀림없다.’ 귀신들은 사람들의 생각을 죄다 일고 있다. 여기서 점치는 귀신이 들어간 점쟁이가 바로 거짓 예언자이다. 성경에도 바울 쫒아 다니며 귀찮게 했던 점치는 귀신이 들어간 소녀가 나온다. 그런데 하도 귀찮게 하자 바울이 귀신을 쫒아냈더니, 그 주인이 돈 벌 소망이 없어지자 사람들을 부추기어 소동을 일으켜 바울을 감옥에 가둔 사건을 말하고 있다.
문제는 점치는 귀신이 들어간 점쟁이 자신도 귀신에게 속은 것을 알지 못하고 성령이 영음으로 들려주신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언의 은사를 받고 예언 사역을 한다는 목회자나 평신도들이 우리네 주변에 바글바글 하는 이유이다. 어제도 죽전에 사는 권사님이 자신의 아들이 예언사역을 하는 목회자에게 넘어가 6년째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그들의 포로가 되어 있다고 하면서 울먹울먹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권사님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교회에 다니고 있어, 그 교회의 십수명의 목회자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쫒아 다녔지만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였다고 하소연했다. 그래서 다시는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슬픈 얘기를 곁들였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7:15)
그래서 이번에는 귀신의 영이 있는 거짓예언자들의 구별하는 지혜를 말씀드리겠다. 미혹의 영은 상대방의 생각을 읽고 사건이나 경험을 거짓예언자의 귀에 넣어준다. 그러므로 그 예언자는 상대방이 아는 모든 지식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령이 해주는 예언이라고 속이는 것이다. 자신이 아는 사실을 안다고 성령이 주시는 영음이라고 성경에 나와 있는가? 그리고 미혹의 영은 사람의 머리를 틈타고 들어가 생각을 넣어주고 마음을 조종해서 사람들을 넘어뜨리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그들이 행하는 치명적인 공격무기이다. 이 중 한 가지만 가지고도 대부분의 사람들을 속이는 데 문제가 전혀 없다. 그런데 두 가지를 같이 사용하면 속아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데 크리스천들이 귀신들을 경계하지 않다니, 간이 배 밖에 나온 사람임에 틀림없다.
거짓예언자들의 구별하는 특징을 말씀드리겠다. 거짓예언자는 돈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올 때 헌금봉투를 준비해서 물어보고 싶은 말을 그 위에 적으라고 한다. 물론 하나님께 나아오려면 예물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아니, 예배를 드리는 것도 아닌데 왜 헌금을 준비해야 하는가? 예수님이나 사도들에게 가려면 헌금가지고 나갔는가? 그런데 왜 예언자에게 물어보러 가는데 헌금을 가지고 가는가? 이는 성경적이 아니다. 헌금을 가지고 와야 예언을 해준다고 하면 100% 거짓예언자라고 보면 된다. 이 원칙을 적용하면 대부분의 예언사역을 한다는 사람들이 거짓예언자로 판명이 날 것이다.
두 번째, 그들이 하는 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하고 전혀 상관이 없는 대부분 개인적인 말들이다. 필자도 한때 미혹의 영이 말하는 영음을 듣고 혼란스러운 적이 있었다. 며칠 동안 이들이 공격을 받아 고통스러웠다. 왜냐면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몇 해 동안 들어오니 나름대로 성령이 말하시는 스타일을 알게 되었는데, 귀신의 스타일은 전혀 달리 주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는다. 간혹 말씀해주실 때도 기도하거나 권면하고 위로하라는 투이지, 그들의 사생활을 넣어주어 드러내고 자랑하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귀신들은 하나님이 나라를 세우는 일과 전혀 상관없는 개인적인 생각이나 경험을 넣어주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하였다. 당신이 알고 있는 예언자들의 말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데 관한 예언인가? 아니면 시시콜콜한 개인적인 말들인가? 개인적인 말들이라면 거짓예언자라고 보면 된다.
세 번째는 그들이 말하는 태도를 보면 된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벌이나 저주, 재앙 등이 내려온다며 겁을 주거나 불안, 염려, 걱정, 두려움을 들게 하면 거짓예언자라고 보면 틀림없다. 성령은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지 않는다. 성령은 대부분 죄를 짓거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하라는 권면의 말씀이 대부분이다. 벌이나 저주, 비난, 책망을 주로 사용하면 거짓예언자이다. 예수님의 방식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은 사람들에게 책망하고 저주하시기보다 그냥 어두움에 내버려두셨다. 어둠이라면 귀신들이 사는 세상에 살도록 내버려 두신다는 말이다. 결국 이들은 귀신들에게 시달리다가 지옥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외에도 그들이 권면하는 말들이 성경적이지 않는 내용이나 거룩하지 않은 성품, 특히 교만하거나 탐욕적이라면 거짓예언자이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종이라면 이런 성품을 드러낼 수가 없다. 또한 이러한 것은 교묘하게 속이고 포장하기 때문에 날카롭게 살피지 않으면 알아채기가 어렵다. 또한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주문해도 그렇다. 금식기도를 하라고 하면 역한 냄새가 난다. 하나님의 방식은 마음이니 속내 동기가 거룩해야 하지만, 귀신들은 기도행위나 금식 등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주문하기 일쑤이다.
그렇다면 거짓예언자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절대로 이들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이들의 말을 철저하게 무시해야 한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덫에 걸리기 십상이다. 그들이 자신의 과거사나 생각을 소상하게 알거나, 무슨 신비스러운 현상을 보여준다고 해도 절대로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악령들은 기사와 이적을 일으키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이들의 말을 듣기 시작하면 귀신의 포로가 되어 두려움과 걱정, 염려와 불안에 시달리다가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가족이나 지인 중에 이들의 덫에 걸린 이들을 구해내는 방법은, 성령이 내주하셔서 능력 있는 기도로 하나님께서 이들의 손아귀에서 뽑아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능력 있는 기도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이들의 덫에 걸리지 않는 것이 평안한 삶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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