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yful자료실 ━━/신상래목사

어떻게 참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인가?(2)

Joyfule 2014. 9. 26. 08:11

 

 

 

어떻게 참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인가?(2)

 

경건한 삶을 훈련하라. - 어떻게 참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인가?(2)

성경에서 말하는 ‘경건’이란 말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말과 약간의 거리가 있다. 통상적으로 ‘경건’이란 말은 공경하는 맘으로 삼가고 조심하는 행위를 말하지만, 성경에서 뜻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배하는 것을 일상의 삶에서 실천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는 웃어른을 공경하는 뜻의 일반적인 경건의 태도보다 더욱 적극적인 자세를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이 요구하는 경건의 삶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사랑과 충성을 바치며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단지 주일 예배를 빠지지 않으며 십일조를 성실하게 드리고 새벽예배에 참석하는 신앙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경건한 신앙행위 속에 숨은 성품과 은밀한 마음까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지에 올라야 하며, 현장의 삶에서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자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어렵고 힘든 과정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크리스천은 적지 않지만 제자는 많지 않으며, 교회는 많으나 하나님의 뜻을 올곧게 가르치는 곳은 적으며, 예수님의 헌신적인 사랑을 전하는 기독교인이 세속적인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기는 차치하고 숫자에 비해 그만한 영향력조차 끼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경건한 크리스천이 드문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주일날 성경책을 끼고 교회에 가는 무리들이 평일에 사회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는 경건을 훈련시키지 않고 배우지 않아,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믿는 종교가 기독교이지 그 행동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지만, 경건함을 드러내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것은 기대조차 말아야 할 것이다.

경건한 습관을 들게 하라.

교회에 오래 다닌 크리스천은 그들이 교회에서 해야 할 행동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주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참석해야 하며, 헌금과 십일조를 정성껏 드리고, 구역예배나 새벽예배에 참석하면 나름대로 교인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교회 주일학교의 교사나 각종 선교회에 참석하여 교통정리, 장례도우미, 식사당번, 전도지 나누어주기 등의 봉사나 선교활동에 열심히 참여한다면 금상첨화이다.

주일날 이들의 행동을 보면, 이렇게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봉사하는 크리스천들이 넘쳐나는 우리나라의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는 일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얼굴이 화끈거리는 사건마다 크리스천이 끼어있어 욕을 먹으며, 교회에서 묵직한 직책의 크리스천인 사회지도층인사가 예외 없이 불의와 불법한 일로 재산을 축적하여 빈축을 사고 있는 일조차 의문시 된다.

주일날 교회에서 하는 것의 반만큼만 평일에 삶의 현장에서 예배와 봉사의 삶을 살아가기만 했어도, 이런 욕을 얻어먹지 않았을 것인데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물론 이러한 답답한 현실을 고민해보지 않은 크리스천은 없을 것이다. 교회에서 하는 것처럼 사회나 가정에서 하고 싶은데, 이게 생각보다 잘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몇 번 시도해 보다 좌절의 쓴맛을 보며 이를 반복하다, 끝내는 포기하고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여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경건의 습관이 몸에 배지 않아 힘들고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이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려운 훈련을 통해 몸에 밸 때까지 배우고 익히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과 깊고 친밀한 만남을 훈련하라.

크리스천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의 원천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렇지만 실제적으로 이 힘을 지속적으로 공급받는 이는 드물다. 지나온 날 중에 뜨거운 열정으로 하나님을 만난 적을 있었지만 그것은 과거사에 그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은 형식적인 신앙행위에 불과한 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 않다하여도, 지금도 날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기뻐하며 살아가느냐고 묻는다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이가 몇이나 될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날마다 하나님과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TV를 끄거나 전화로 시시콜콜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보다 골방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즐긴다면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새벽기도조차도 늘 새해 결심에 오르내리는 판에 무슨 골방에서 은밀하게 만남을 즐기는 수준의 경지를 바랄까? 그렇기에 신앙에 힘이 없어 예배가 기다려지지 않고 기도가 응답되지 않으며, 일상의 삶이 늘 짜증스럽고 무미건조하여 재미가 없으며, 성경에서 약속한 하나님의 평안과 형통한 복이 자신에게 임하지 못한다.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위의 성경말씀을 현장의 삶에서 실천하고 있다면, 살아계신 하나님과 날마다 만나고 있는 증거이다. 그렇지 않다면 경건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항상 기뻐하거나 늘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은 상황이나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은혜가 날마다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즉 세상속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감사가 나오는 것이다. 이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의 징표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보통 기도시간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성령님이 내 안에서 살아계셔서 영으로 기도를 하는 상태를 말한다. 성령 충만한 상태이면 무슨 일을 하든지 찬송이 흥얼거려지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 나도 모르게 기도하는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경험을 한 적이 한두 번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대개 일회성으로 그치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무미건조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성령이 내 안에 계신 상태를 유지해야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매일 깊은 기도 시간이 최소한 한두 시간이 꼭 필요하다. 기도에 방해받지 않은 장소에서 새벽시간이나 밤늦은 시간이 될 것이다. 기도에 몰두해서 한두 시간이 금방 지나갈 정도로 하나님께 몰입해서 깊게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려면 쉽지 않은 훈련이 필요하겠지만, 하루 종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원한다면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리고 나머지 일과 중에도 틈만 나면 하나님께 집중해서 대화를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깊은 기도시간이 아니고 집중하기가 어렵다면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감사하는 기도만으로도 충분하다.

 

성령님이 늘 안에 계시다면 하나님만 부르기만 해도 평안과 즐거운 느낌이 전해오며, 즉시 기쁜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요청하는 기도의 시간이 되어 버린다. 이런 시간이 일상의 삶에 습관이 되면,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기도하는 시간으로 하루를 채우게 된다. 이런 습관이 몸에 배면 급한 일이나 중요한 일로 기도를 하지 않으면 왠지 허전하고 무언가 잃어버린 느낌이 들어, 하나님을 찾으며 다시 기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 정도의 상태가 되었다면 하나님과 하루 종일 깊고 친밀한 관계를 누리며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다. 필자는 새벽시간에 기도하고 오전에 서재에서 책을 쓰거나 상담하며 오후에는 화장품 영업이나 배달을 하며 차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그 때 어김없이 한가한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면 창문을 내리고 눈을 감고 하나님을 부르며 찾는다. 그리고 저녁시간에 집에 와서도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곤 한다. 주말이나 주일에 한가한 시간이 더 나면 방해받지 않고 깊게 기도하는 시간을 더 갖으려 노력한다. 필자가 목회자라서 의무적으로 기도해야하기에 행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시간이 가장 평안하고 기쁜 시간이기 때문에 즐겨 찾게 되는 것이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과 깊은 만남은 기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또 다른 중요한 만남인 성경말씀을 통하여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중요한 깨달음을 경험한 크리스천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적지 않은 크리스천에게 성경은 주일날 들고 다니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사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설교시간에 읽어야 할 구절을 강대상 옆의 스크린으로 프로젝터를 쏘아 보여주므로 예배시간 조차도 성경이 필요 없다.

크리스천이라면, 성경이 신앙생활에 중요하며 성경지식에 해박해야 한다는 것은 귀가 닳도록 들어서 알고 있지만 정작 행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을 읽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서 그 깊은 맛을 모르기 때문이다. 왜 교회에서는 성경을 읽는 훈련을 중요시하며 집중적으로 시키지 않는 것일까? 솔직히, 목회자조차도 훈련이 되어 있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필자가 목사안수를 받을 때, 면접위원으로부터 성경을 일 년에 몇 번 읽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질문은 아마 필자가 성경을 잘 읽지 않는 사람처럼 비쳐져서 물어 본 것일지도 모른다.

어째든 목회의 현장에서, 설교자조차도 생각만큼 성경을 읽지 않아서 가 아닐까? 어느 교회나 목회자의 설교내용이 대동소이한 이유가, 성경의 깊은 샘에서 길어 올리기보다, 이미 가공되거나 포장한 설교 자료를 그대로 베껴 사용하는 것이 그 원인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성경을 읽는 훈련을 제대로 시키지 않는 교회라면, 스스로라도 성경의 깊은 샘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을 만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고 분별하는 능력이 없다면, 삯꾼목사의 유혹과 이단의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을 성경에서 스스로 만나는 훈련을 받지 못한다면 언제나 초등학생수준의 신앙밖에 안 된다. 교회내의 직책이 장로나 권사이며 수십 년 동안 교회에 다녀 성경의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훤할지는 몰라도, 행간에 숨은 하나님의 깊은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신앙에 힘이 없고 삶에 기도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하며 하나님의 복이 임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을 매일 신구약으로 나누어서 몇 장을 정해놓고 읽되, 방해받지 않는 장소에서 머리가 맑은 새벽시간이나 밤늦은 시간이 좋을 것이다. 읽다가 중요한 내용은 노트에 기록하고,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은 성경사전이나 평신도에게 알맞은 수준의 주석집을 구입해 참고하고 읽는다면 도움도 되고 이해도 빠를 것이다. 또한 따로 시간을 내서 목회자에게 질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 년에 몇 번 읽었느냐 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얼마나 집중하며 몰입하며 읽었느냐 일 것이다. 읽는 성경이 어려운 한자어가 많이 나오는 개역성경이라 이해하기가 어렵다면 쉬운 성경이나 현대어 성경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째든 성경을 꾸준히 읽는 습관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다 아는 내용이라도 신앙의 수준에 따라, 자신의 처해있는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늘 같지 않아서이다.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이나 인생의 지침을, 성경을 읽을 때 가르쳐주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비한 방법의 기도응답만 주장하는 사람은, 기도할 때 떠오르는 생각이 자신의 생각이거나 사탄의 생각일 때는 낭패를 당하지만, 성경을 통해서 인도해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열매가 몸에 배도록 노력하라.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 충만이 표어가 되어버린 대부분의 교회에서, 예배시의 통성기도 때마다 모두들 성령 충만한 삶을 큰소리로 외치고 열정적으로 기도하며 꿈꾸고 있다. 왜 그토록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려 할까? 사도행전의 기적적인 일을 못 잊어서 그럴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보여주는 초대교회는 그야말로 성령이 물 붇듯 쏟아지는 광경을 연출했다. 모두들 각국의 방언으로 말해 교회 밖에서는 술에 취했다는 조롱을 들을 정도였으며,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소경이 눈을 뜨며 심지어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전대미문의 놀라운 소식이 끊이질 않았다. 하나님의 기적으로 놀랍고도 열정적인 삶으로 이끌게 되었으니 이를 바라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이 초대교회 때처럼 기도응답이 쏟아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서 모든 교회에서 예배 때마다 초대교회의 성령의 기적이 다시 나타나기를 바라며 성령 충만을 기도하며 요청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이 무슨 물건인 것처럼 주고받으며, 모두들 듬뿍 받아 챙기기를 바라는 선물인가? ‘성령 충만을 받으라.’ 고 성경에 말한 것도, 성령 충만함을 간절히 구해 하나님의 영이 맘속에 거하도록 하라는 구어적인 표현일 뿐이다. 성령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 자리를 대신해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으로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는 사역을 하셨던 분으로 지혜의 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받는 목적이, 기도응답을 받아 해묵은 문제가 해결되고 부자가 되며 성공하기를 바라는 세속적인 복을 얻는 목적이라면 허망한 결과뿐일 것이다. 하나님은 복을 얻는 조건으로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은 믿음의 표징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이지, 기도행위의 빈도나 희생의 정도를 보시지 않는다. 여하튼, 성령 충만을 받기위해 소리를 지르며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고 애처롭기만 하다.

정작 하나님의 참복을 받으려면, 경건의 훈련을 몸에 배게 하여 성령님이 늘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성령님이 언제나 함께 하시는 표징은, 기도를 많이 하는 시간보다는 평소에 행동으로 나타나는 성품의 변화에 있다. 성령의 열매를 말하기 전에,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육체의 일은 음행, 더러움, 방탕, 우상숭배, 마술, 원수 맺기, 싸움, 시기, 분노, 반목, 분열, 분파,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등(갈 5:19,20)이다.

성령의 함께 함으로 성품이 변화되어 맺어지는 열매들은,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 온유, 절제 등이다. 즉 육체를 좆는 세상 사람의 성품에서 성령의 성품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성품으로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만 교회를 오래 다니며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는다하더라도, 육체의 성품이 변화되지 않고 남아 있다면 성령과 함께 하는 사는 삶을 살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성령님이 동행하는 삶이 없다면 평안하고 형통한 복을 누릴 수도 없다. 경건의 훈련을 통해 성령님의 능력으로 악한 육체의 성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도록 간절히 기도하여 성령님의 도와주심을 구하여야겠고, 자신도 선한 성품을 갖도록 이를 악물고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며 노력하고 애써야 한다. 성령의 열매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다면,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이 임함을 의심한 나위가 없을 것이다.

 

출   처 : 다음 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신상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