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시스트 - 정성화
언니는 나보다 한 살 위였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재수를 하는 바람에 나와 같은 해에 대학입시를 치르게 되었다. '대학예비고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언니는 자신이 원하던 대학에 무사히 합격했고 입학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던 날, 언니는 담담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니는 그대로 대학에 진학해라. 나는 일단 취직자리부터 알아봐야겠다. 대학은 나중에 가도 되니까."
하루아침에 소녀가장이 된 언니는 식구들 앞에서 대학합격통지서를 구겨버렸고 그 길로 회사원이 되었다. 다섯이나 되는 동생들과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한 언니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 영어교사가 된 것을 친척들에게 자랑삼아 얘기하곤 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언니 몫의 행운을 내가 가로챈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언젠가 내가 언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니가 언니였더라도 나와 같은 선택을 했을 거다."
그때 내가 언니 입장이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무래도 나는 내 욕심에 받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언니의 희생을 '어시스트(축구의 도움 골)'라는 명목으로 받아 챙긴 게 아니었을까. 언니는 내가 더 확실하게 슛을 쏘아올리고 반드시 '골인'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에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을까. 형만 한 아우가 없다고 하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항아리에 참게를 여러 마리 넣어두면 밖으로 한 마리도 기어 나오지 못한다. 한 마리가 항아리 벽을 기어오르면 그 아래에 있던 참게가 바로 끄집어 내리기 때문이다. 인간의 심리도 마찬가지다. 서로 비슷한 처지에 있거나 동급의 대우를 받고 있을 때는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이 좀 나은 대우를 받거나 앞서 가기 시작하면 그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내가 못하면 너도 못해야지.' 하는 심리 때문이다. 남의 슬픈 일을 위로하기는 쉽지만 그의 기쁜 일을 내 일처럼 기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좋은 일이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이 보이는 게 아닐까. 그러고 보면 '어시스트'는 아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몇 년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에게 함께 뛰고 싶은 동료 이름을 적어보라고 했더니, 박지성 선수가 단연 으뜸이었다고 한다. 언어도 서투르고 국적도 다른 그가 뽑힌 걸 두고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자기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동료에게 공을 패스함으로써 슛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이른바 '어시스트'를 가장 잘 하는 선수였던 것이다.
야구와는 다르게, 축구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시합이 진행된다. 퍼붓듯 내리는 빗속에서 질주하는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삶도 저렇게 토 달지 말고 날씨 탓하지 말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전에는 축구를 볼 때 골을 넣는 선수에게 주목하곤 했는데, 요즘은 어시스트를 잘하는 선수를 눈여겨보고 있다. 개인의 영광보다 팀의 승리를 먼저 생각하는 선수가 더 진정성 있는 것 같아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선수의 어시스트 역시 다른 선수의 어시스트를 받아 이루어진 것임을 알게 된다. 삶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알든 모르든 많은 어시스트가 쌓여서 그 사람의 현재를 만드는 것 같다. 그동안 그의 가족뿐 아니라 친지들과 친구, 지인들까지 수시로 그에게 도움 골을 보내 주었을 것이다. 그것이 많은 위로와 용기가 되고 든든한 자산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주위는 '어시스트'형보다 '골잡이'형이 더 많다. 자신의 골 결정력이 약하다 싶어도 웬만하면 골대 근처까지 공을 몰고 가서 슛을 하려고 든다. '내가 아니면 아니 된다.'고 생각한다.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 탓도 있을 터이고, 자식을 하나나 둘만 낳다 보니 어떻게든 내 자식을 선두에 내세우려는 부모의 욕심도 제법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골잡이가 제대로 된 슛을 소아 올리려면 선수들이 각자 포지션에서 열심히 뛰면서 많은 어시스트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어시스트가 많을수록 골인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축구공은 둥글어 누구에게든 굴러가고 누구에게든 슛할 기회가 주어진다. 골망 안에 꽂히지 못하고 빗겨가는 공이 많다 해도, 그래도 가끔 골망이 힘차게 흔들리는 순간이 있어 우리가 이럭저럭 삶을 버텨나가는 게 아닐까. 골대 안에 들어간 그 공도 누군가 나를 위해 양보해 준 어시스트임을 기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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