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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에도 맛이 있었던 같다 - 김기택

Joyfule 2015. 10. 26. 23:07

 

 

 

배고픔에도 맛이 있었던 같다 - 김기택

 

김기택 시인

 

 

 

 

 

 

 

 

 

 

 

종종 배고픔이 그리워진다… 배고픔을 이기려고 맛있는 음식을 상상하곤 했다
이런 상상력으로 내가 시인이 됐는지 모른다
열등감이나 고통·좌절이 몸 속에서 숙성돼 맛과 향기로 바뀌는 것이다

 

 

"청소부 아저씨, 이것도 치워 주세요."
 추석 연휴가 지났는데도 식탁에 떡과 전 등 먹을 게 넘치자 딸아이가 내 앞으로 음식을 밀어주며 말했다. 냉장고에 가득한 음식을 치우기 위해 가장인 내가 과식을 해주다 보니 '청소부'란 별명이 붙은 것이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열흘이 넘도록 쌓여 있는 음식을 평소보다 많이 '청소'했다. 추석이 아니더라도 맛이 떨어지거나 변질되기 전에 얼른 먹어치워야 할 음식은 늘 밀려 있어서 내 위장은 쉬지 않고 분발해야 했다. 나에게 먹는 일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니라 밀려드는 음식을 없애는 전투적인 '일'이 되었다.

 할인점이나 백화점의 포장 단위가 필요 이상으로 크기 때문에, 큰 포장일수록 싸고 신선도가 떨어진 상품은 대폭 할인해 주기 때문에, 장 보러 갈 때마다 대단한 이득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중 일은 생각지도 않고 알뜰한 살림의 지혜라는 자기기만(欺瞞)에 빠져 양껏 사고 본다. 공부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에게 새로운 맛으로 위로해 주기 위해 가끔은 외식도 한다. 그래서 이 어리석은 '과식의 악순환'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몇 달 전 위암으로 부인을 잃은 친구를 문상했을 때, 그 친구는 위장을 잘라내고 힘겹게 투병생활을 하는 부인 옆에서 밥 한 술을 50번씩 씹는 식생활을 1년여 동안 부인과 똑같이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생활을 통해 우리가 평소에 먹는 양이 몸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두 배 이상 많다는 것을 알았단다. 먹는 양이 반 이하로 줄어도 생활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고 오히려 체중이 정상으로 돌아와 몸이 더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음식을 필요로 하는 것은 몸이 아니라 바로 '식욕'이었던 것이다.

 요즘의 음식은 먹음직스러워 보여서 각종 양념의 도움을 받아 모양과 냄새가 화려해서 오히려 쉽게 질린다. 그래서 옛날에 천대받았던 꽁보리밥이나 우거짓국, 수제비 따위가 별미가 된다. 추억이라는 양념이 들어 있어서 달고 기름진 맛에 찌든 미각을 가난과 자연의 냄새로 씻어주는 것이다.

 이 촌스러운 별미도 별미지만, 나는 이제 종종 '배고픔'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배고픔에도 특별한 맛이 있었던 것 같다. 과식하고 나서 숨이 답답하고 몸에 음식쓰레기가 가득 찬 것 같은 슬픈 불쾌감이 들 때는 이 배고픔의 맛이 더욱 그리워진다.

  어린 시절엔 배고픔을 이기려고 맛있는 음식 먹는 상상을 자주 했다. 그렇다고 배가 불러지는 건 아니지만, 그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고, 그래서 배고픔이 잊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상은 나도 모르게 현실의 결핍을 상상력으로 충족시키는 훈련을 하게 해주었던 것 같다. 이것이 시적 상상력으로 발전하고 그래서 시인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시를 통해 열등감이나 고통, 좌절 등이 몸속에서 숙성되어 어느 날 갑자기 맛과 향기와 아름다움으로 바뀌는 마술적인 체험을 가끔 하였으며,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아름다운 시들도 여러 편 읽었다.

 옛날에 읽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서 주인공이 귀리죽을 먹는 장면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슈호프는 겉옷의 앞섶 호주머니에서 얼지 않게 흰 마스크에 싸놓았던 반원형의 빵 껍질을 꺼냈다. 그는 그것으로 그릇 밑바닥이나 옆구리에 눌어붙은 찌꺼기를 아주 정성스럽게 싹싹 훑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껍질에 묻어나온 죽 찌꺼기를 혀로 한 번 핥은 다음, 다시 그것으로 죽그릇을 닦았다. 죽그릇은 물로 씻은 것처럼 깨끗해졌다." 이 구절을 생각하면 맛없는 음식에도 저절로 식욕이 돋는 것 같다.

 최근에 읽은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에는 배고픔의 맛이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우리가 걸고 다니는 입천장은 발을 옮길 때마다 입 안에서 메아리가 울릴 만큼 높아졌다. 눈부신 빛을 너무 많이 삼킨 듯 두개골이 투명해져갔다. 입안으로 들어가 자신을 돌아보고, 달착지근하게 목젖을 휘감으며 부풀어올라 뇌까지 치솟는 그런 빛. 그 빛은 머릿속에 뇌가 사라지고 배고픔의 메아리만 남을 때까지 퍼진다." 그래서 작가는 이 배고픔에 '배고픈 천사'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소련의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지쳐 숙소로 돌아온 주인공이 하는 일은 제 몸에 배고픔을 먹이는 일이다. 밤새도록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배고픈 천사를 살찌우는 일이다.

 나에게도 추운 밤 퇴근길에서 맛본 배고픔의 별미를 표현한 시가 있다. "텅 비어 쭈글쭈글해진 위장을 탱탱하게 펴줄 밥/ 꾸룩꾸룩 소리나는 배를 부드럽게 만져줄 밥/ 춥고 음침한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밥/ 잡생각들을 말끔하게 치워버려주고/ 깨끗해진 머릿속에 단정하게 들어오는/ 하얀 사기 그릇 하얀 김 하얀 밥/ 머리 가득 밥 생각 마음 가득 밥 생각/ 밥 생각으로 점점 배불러지는 밥 생각/ 한 그릇 밥처럼 환해지고 동그래지는 얼굴"('밥생각' 부분).

 배고픔은 그것을 겪는 사람에게는 괴로운 일이고,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고 권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한참 씹으면 특별한 맛이 나던 배고픔의 추억은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 정신적인 빈곤을 겪는 오늘의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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