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yful자료실 ━━/신상래목사

억지로 교회에 다니지 마라.

Joyfule 2014. 10. 17. 10:07

 

 

억지로 교회에 다니지 마라.

신상래 목사

 

세상에서 불쌍한 사람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이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은 학교에 가는 걸 좋아하는 얘들이 별로 없다. 아침에 학교가라고 깨우면 좋아서 벌떡 일어나는 날이 없다. 소풍가는 날 빼놓고 말이다.ㅎㅎ 아침에 일어나면 직장에 가야하는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히 그동안의 업적부진을 질책 받아야 하는 회의가 있는 날이면, 회사에 가는 게 죽기보다 싫을 것이다. 그러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안 갈 수도 없다. 눈동자가 새카만 어린 자녀들을 생각하면, 가정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사에게 욕을 먹고 고객에게 수모를 당하더라도 애써 웃으며 참아야한다. 세상 사람들은 그게 인생이라고 하며 위안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교회까지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가야 한다면 생각해 볼일이다. 학교나 직장에 가는 것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교회에 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가 교회에 가는 이유는 영혼이 구원받아 천국에 가기 위해서이다. 분명하게 말하자면, 교회공동체에 가는 이유가 구원과 상관이 없는 행위라면 갈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교회에 가기 전에, 자신의 신앙행위가 영혼이 구원받는 조건에 부합되는 일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당신이 교회의 예배의식의 참석여부를 참작하거나, 몇 년 동안 교회에서 봉사를 했으며, 십일조를 성실하게 냈는지, 전도를 하여 교회의자에 몇 명을 데려다 앉혔는지, 목사의 말을 잘 들었는지의 여부를 보지 않는다. 만약에 그것을 하기 위해 교회에 간다면 당신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음에 틀림없다.

담임목사가 설교단상에서 침을 튀기면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희생적인 신앙행위와 예배의식의 참석 여부가 천국의 자격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닌데요? 우리 교회에서는 주일성수를 해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가? 그러나 아쉽게도 주일성수라는 말이나 그러한 개념은 성경에 아예 없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하는 천국과 달리, 당신네 교회의 담임목사가 세운 천국이 따로 있나보다. 성경에는 주일이라는 말이 토요일 다음날이라고 말한 적이 없으며, 1시간짜리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이 성수(聖守: 거룩하게 지킨다는 한자어)라고 언급한 적이 없다. 주일이라는 말은 주의 날이라는 뜻의 한자어로, 성경에서 말하는 주일은 하나님의 나라가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날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그런데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안식 후 첫날에 성찬식을 지켰던 날을 지칭해서 쓰기 시작한 용어일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주일에는 노동을 하지 않고 1시간짜리 예배의식에 참여하여야 한다고 누가 말했는가? 4세기경 존경받는 교부들이 주일과 관련하여 노동을 쉬고 공동체의 예배의식에 참여하고 교제를 나누는 것을 강조하기는 했어도, 이는 안식일의 노동금지의 계명과는 무관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성경과는 무관하게, 아니 성경의 말씀을 변질시켜서, 주일에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여하는 것이 천국의 자격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신앙행위로 변질된 것이다.

물론 일주일에 하루를 정해서, 교회의 거룩한 관행에 따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의식에 참석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기뻐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배우며, 교인들과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나누는 행위는, 누가 보아도 아름답고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그래서 필자의 교회도 주일이 되면 교인들이 함께 모여서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고 나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교제도 나누고 있다.

 

그런데 그런 신앙행위가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은 오직 성경에 기록된 조건에 의해서이다. 그런데 성경에 아무런 언급이 없이 사람들이 하고 싶다고 시작한 관행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행위라고 생각이 되어도, 성경에 아무런 언급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렇게 행동을 한 사람들이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다. 바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다. 이들은 먹고 살기 바빠 유대교의 신앙행위에 별 관심이 없던 하층민(헬라어로 암하레츠)과는 달리, 자신들의 드높은 종교심을 남에게 드러내기에 바빴다. 옷술에 성경말씀을 수놓아 입고 다니고, 사람들이 왕래가 않은 시장 어귀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즐기고, 내다 팔려는 게 아니라 식구들이 약용이나 식품으로 가꾸던 박하와 회향과 근채(요즘의 허브)까지 철저하게 십일조를 드렸다.

안식일에는 절대로 노동을 하지 않는,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켰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게다가 그 당시 경건한 유대인의 기도방식을 지켜서 하루에 세 번씩 정해서 기도하곤 했다.

 

이쯤 되면 희생적인 신앙행위나 예배의식에 참여하는 그들의 신앙열정을 작금의 우리네 교회가 따라갈 수 있을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이요 회칠한 무덤이라는 독설을 퍼부었으며, 그들의 의(드높은 종교심을 남에게 드러내놓고 자랑하는 행위)를 넘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뜨악하게도, 성경은 그들이 바로 사탄의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계2:9)

우리네 교회가 아무리 주일성수에 교회봉사, 십일조, 새벽기도를 열심히 해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따가 갈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네 교회가 귀신에게 속아 사탄의 앞잡이 노릇을 하다가 지옥으로 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자신들이 죽어 지옥에 떨어지기 전까지는 천국에 들어가 천군천사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고 찬란한 면류관에다 엄청난 상급이 주어질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열심히 교회에 충성한 바리새인들도 천국은커녕 사탄의 앞잡이가 되어 속고 살다가 꺼지지 않는 유황불이 활활 타는 지옥에 던져졌는데, 당신이 지금 행하는 희생적인 신앙행위로 천국을 자신하고 있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아시다시피, 천국의 자격은 당신이 다니는 교회의 담임목사가 정하는 게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에 의해서이다. 그 잣대에 의하면, 천국은 소수의 사람만이 들어가는 좁은 문이라고 하고 있다. 말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하고, 거룩한 성품을 덧입어야 하고, 성령의 능력을 지닌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고, 죄와 피터지게 싸워 이기는 자만이 들어간다고 하고 있다.

이 잣대를 적용하면 이 세상에서 자신의 믿음으로 들어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이 내주하는 영적 습관을 들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덧입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당신의 가슴에 시퍼렇게 새겨져 있을 때, 비로소 죄를 짓게 만드는 사탄과 타락한 옛사람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럴 생각이 없다면 억지로 교회에 가지 않아도 된다.

주일날 아침에 늦잠을 자고일어나 인상을 쓰고 투덜거리면서, 교회에 입고갈 옷과 먼지를 덮어쓰고 있는 성경책을 찾아 이방 저방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예배가 시작되고 헐레벌떡 뛰어가, 어렵사리 교회의 뒷좌석에 몸을 구겨 넣고 앉아있다고 천국에 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차피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왜 울며 겨자 먹기로 교회에 다니고 있는가? 허리를 펴고 당당하게 선포하라. 천국에 가지도 못할 거면, 이제부터는 교회에 다니지 않겠노라고. 그래야 더 이상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자유스럽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어차피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할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