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라.
신상래 목사
대통령이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정부의 고위자리에 앉혀둘 것이 분명하다. 그게 비서실장인지, 아니면 장관이나 국무총리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대통령의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당신이 그런 자리에 앉아있다고 보자. 말하자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가 아닌가? 친구와 친척들과 지인들이 매일 만나자고 아우성을 칠 것이며, 이름도 모르던 동창생들이 수시로 전화를 걸고 찾아오며, 수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부러워할 것이다. 어떤가? 좋지 않은가? 일국의 대통령이 신임하는 사람이 되어도 이렇게 영광스럽게 사는 데, 하물며 세상을 지으시고 우주를 운행하시며 대자연을 다스리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그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꿈인지 생시인지 살을 꼬집어보고 싶을 것이다.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이루리라 하시더니(행13:22)
성경에서 다윗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최상의 칭찬을 받은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다윗이 있기 전까지 이스라엘 왕에게 적용된 하나님의 법칙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위를 하면 후손에게 왕을 이어주고 죄를 지으면 왕권을 빼앗겠다는 쌍무계약방식이었다. 그래서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그 자손에게서 왕권이 끊겼다. 그러나 다윗이후에는 아무리 죄를 지어도 후손에게 왕권을 계속 이어주는 편무계약방식으로 바뀌었다. 이 같은 경우를 보더라도,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 기존의 계약을 바꿔주면서까지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물론 다윗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가 청소년시절에 골리앗과 싸운 패기를 보라. 그리고 블레셋에 뺏긴 언약궤가 돌아오자 왕의 체통을 잊고 허리의 맨살이 드러날 정도로 열정적으로 춤을 춘 것으로 보아,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였는지 아는 게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그런 믿음의 행위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최상의 칭찬하셨을까? 사실 다윗이 잘 한 일도 많지만 교묘하게 우리아를 죽여 살인죄를 짓고 밧세바와 간음죄를 저지른 사건으로 볼 때 완벽하다고 보기에 미흡한 점도 적지 않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다윗을 그렇게 일방적으로(?) 칭찬하시고 기뻐하셨을까?
그 이유는 그가 인생을 통해 늘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가 시은 시편을 보라.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모하고 흠모하며, 사랑하며 가까이 하기를 원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겉으로 행하는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보고 평가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사람의 마음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날카롭게 살펴보신다. 그러므로 일생동안 하나님을 전심으로 기뻐하며 감사하고 찬양하는 삶만 살 수 있다면,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다윗에게 하신 칭찬을 듣지 않을까?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니은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위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행위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예배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예배라는 단어는 ‘예배하다’라 뜻인 ‘프로스퀴네오’라는 헬라어를 번역한 말이다. ‘프로스퀴네오’는 ‘절하다’. ‘경배하다’, ‘찬양하다’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위의 로마서의 말씀에서 쓰인 단어는 ‘제사’라는 의미인 ‘라트레이아’라는 헬라어를 번역한 것이다. 아시다시피, 구약의 제사법은 양과 소를 가져오면 제사장이 죽여 번제로 드렸다. 그런데 이 제사가 바로 예배라는 말로 번역된 이유는, 우리가 희생제물이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때 비로소 소나 양으로 드리는 구약의 제사가 아니라, 이 시대에 하나님이 받으시는 영적 예배가 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게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홰개하고, 감사하는 기도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기뻐하시기 이전에, 우리의 마음과 속내, 목적과 동기를 날카롭게 살펴보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주, 그리고 열정적으로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각종 희생적인 신앙해위를 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이 없다면 무용지물인 셈이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의 재물이나 시간을 드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직 마음을 원할 뿐이다. 그렇다면 날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부르며 마음 깊숙한 곳에서 기뻐하며 찬양하는 삶으로 채우면 된다. 그게 바로 기도가 아닌가? 기도란 하나님께 자신의 요구사항을 큰소리로 요청하는 행위가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과 내 영혼이 교제하고 사귀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친밀하게 교제하며 깊이 사귀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날마다 하나님을 찾고 부르며 찬양하고 감사하며 회개하는 기도를 쉬지 않았던 것이며, 이 기도를 남긴 흔적이 바로 시편인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신분이 자녀이고 종이며 피조물임을 인정하고, 주인이며 아버지이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찾는 자녀들을 가장 기뻐하신다. 그것도 하루 종일, 평생 하나님만을 간절히 부르는 삶만 산다면 최상의 기도이자 예배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네 교회에서는 예배를 그토록 강조하면서 삶의 현장에서 마음을 찢으며 드리는 예배의 삶을 가르치지 않고, 일정한 시간에 교회에 와서 1시간짜리 예배의식에 자주 참석하는 것만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매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더라도 하루에 한 시간씩만 찾아오면 되는 게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한 시간만 보고 싶어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보고 싶어 하신다. 그래서 항상 기도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하루 종일 하나님을 찾아올 생각조차 없으며, 겨우 찾아왔어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경배하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요구사항을 큰소리로 요청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가 찾아오는 것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래서 당신의 삶에 기쁨이 사라지고 신앙에 능력이 없는 이유이다. 하나님은 당신과 당신이 다니는 교회를 떠나신지 오래 되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오라.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서 시행하는 예배의식에 참석하지 말고, 하루 종일 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며, 마음을 다해 찬양하고 감사하며, 회개하고 경배하면서 하루를 채워보라. 그리고는 어떤 일이 생기는 지 두 눈으로 똑바로 보라. 하나님이 당신을 찾아와서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온갖 선물을 엄청나게 쏟아 부어 주실 것이다.
하루 종일 하나님만을 부르고 찬양하고 감사하며 살았던 다윗에게, ‘너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최상의 칭찬을 해주었다. 당신도 다윗처럼 하루 종일 하나님을 부르고 찬양하며 살아보라. 다윗에게 부어주었던 최상의 축복을 당신에게도 쏟아 부어 주실 것이다. 그게 바로 최상의 기도이자 최상의 예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땅을 떠나 천국에 가서 할 일은, 바로 하나님을 향해 하루 종일 찬양을 하고 경배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살 때 미리 천국에서 해야 할 일을 연습하는 게, 바로 하루 종일 찬양하고 감사하고 경배하는 기도이다. 그러면 이 땅에서도 천국에서 사는 축복을 미리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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