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고귀한 삶
아는 목사가 그의 죽음을 내게 이렇게 전했다.
“옆에 아무도 없이 그 사람이 혼자 죽었어요. 죽을 때 한없이 울더라구요.”
그는 왜 그렇게 울면서 죽었을까. 그는 전쟁고아로 거지 노릇을 하면서 자랐다. 그의 다음신분은 도둑이었다. 평생을 범죄 속에서 살다가 외롭게 혼자 끝을 맞이한 것이다.
비참하게 살다가 맞이한 비참한 죽음이었다. 변호사를 하면서 그렇게 어둠속에서 태어나 어두운 세상에서 살다가 어둠 저쪽으로 사라진 인생을 많이 보았다.
자기가 범죄를 구성하는 데는 천재라고 자랑하던 사람을 봤다. 제약회사에서 생산하는 링거에 독을 주입하겠다고 협박전화를 해서 제약회사 사장한테서 돈을 뜯어냈다. 그가 고안한 다음 범죄수법은 재벌가의 무덤을 파헤쳐 그 뼈를 종로의 빌딩 위에서 뿌리겠다고 협박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자기가 기획한 범죄를 내게 자랑했다. 평소의 무덤은 무방비상태라 파헤치기가 쉽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무도 없는 빈방에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 그는 내게 자기는 사실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할 화류계의 사생아라고 했었다. 변호사를 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참 많이 봤다. 지난해에도 내가 십년동안 조금씩 도움을 줬던 살인범이 묵고 있던 집의 창고에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 남의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생명도 가볍게 여기고 여차하면 죽는 것 같다. 하늘이 준 귀한 생명을 가볍게 던져버리고 삶에 대해 진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들은 그렇게 죽으면 끝일까. 그들이 깊은 바닷속 같은 영원한 무(無)의 세계로 가서 안식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귀신이 되어 이 세상의 어두운 뒷골목을 계속 울부짖으며 돌아다닐까? 살아서도 비천했고 죽어서도 그들은 그 비참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그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다가는 사람도 있다. 내가 아는 노인은 백 년을 내려오는 명문 부자집 아들로 태어났다. 민족의 대부분이 가난 속에 있을 때 그는 중학생 지주로 일 년이면 수십 만석의 쌀을 생산하는 지주였다. 험난한 전쟁도 혁명도 경제위기도 모두 그를 비켜 갔다. 대한민국에서 그는 다시 돈이 쏟아지는 기업의 회장이었다. 그는 성품도 타고났다. 정직하고 성실했다. 돈이 많아도 검소했다. 자신에게는 엄격해도 남에게는 후한 사람이라고 할까. 그는 아흔살 가까이 건강하게 살았다. 마지막 얼마 동안을 중환자실에 있을 때도 그는 하루에 박수를 백번은 치라고 권하는 의사들의 건강법을 모범생같이 지켰다. 그리고 죽음에 임해서는 자신의 시신을 의대생들의 해부자료로 하라고 유언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밝은 환경에서 태어나 고귀하게 살다가 고귀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할까.
극단의 삶과 극단의 죽음 사이에 있는 나 같은 중간층의 삶과 죽음은 어떻게 좌표를 잡아야 할까. 내 나이 마흔살 무렵이었다. 나는 비로서 자신의 주제를 희미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나는 착한 일꾼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하는 일이 바로 하늘이 준 소명이라는 걸 비로서 알 것 같았다. 나의 일을 내 연장을 가지고 주어진 모든 재료를 현명하게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남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아온 삶은 빈껍데기 인생이었다. 나는 박쥐로 태어났는데 타조가 되고 싶었다고 할까. 아니면 피래미가 상거가 될 꿈을 꾸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내 주제를 알고 나는 나대로 살아가기로 했다. 내가 하는 일이 어떤 것이든 그게 천직이고 그걸 성실하게 하는 것이 신이 준 소명을 받드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나의 마음과 몸을 섭리 안에 두고 소소한 작은 일들을 꼼꼼하게 하는 것이 고귀하고 위대한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나간 생각일까. 꼭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줄이기로 했다. 일을 벌이고 분주한 성경 속의 마르다 보다 조용히 앉아서 말씀을 기다리는 마리아를 그분은 더 좋아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 오전에는 열 네살때부터 친해 온 동네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법원의 조정재판에 나가서 화를 냈더니 주위사람들이 노인이 화를 내시면 목잡고 쓰러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친구는 자신이 이제 누구의 눈에도 하얀 늙은이로 보이는 걸 자각했다고 했다. 친구라는 거울을 통해 나이 먹은 나를 다시 알게 된다. 이제는 조용히 내가 쓰던 연장과 재료를 거두어 놓고 천명으로 주어진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 미래의 다른 세계의 존재를 확신하고 싶다. 거기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 이상으로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다. 죽음과 삶은 두 개의 한계이다. 이 두개의 한계를 넘은 곳에 그 무엇이 있을 것 같다.
'━━ 감성을 위한 ━━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밥 사 (0) | 2024.06.29 |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일용잡부를 해 보며 (0) | 2024.06.27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마음 방에서 타는 불 (0) | 2024.06.24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두 가지 평화 (0) | 2024.06.22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가짜 예언자들을 조심하라 (1) | 2024.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