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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마음의 눈

Joyfule 2024. 5. 7. 22:48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마음의 눈  

 

매일 아침 해변가를 산책하다 보면 바다가 토해놓는 것들을 본다. 신기하다. 누군가 버린 쓰레기들을 바다는 도로 인간 세상에 반환하고 있다. 낚시꾼들이 바다에 흘린 가짜 물고기가 달린 낚시 바늘도 바다는 파도를 시켜 모래사장에 도로 가져다 놓는다. 바다는 살아있는 생명체 같기도 하다. 바다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흐트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다. 바닷가에서 노인들이 길다란 집게를 들고 바다가 토해낸 쓰레기들을 다시 자루에 담아가는 모습을 본다. 마음의 눈으로 본 자연에 대한 인간의 최소한의 예의라고 할까. ​

내 나이 이십대쯤 안개가 피어오르던 어느 봄날이었다. 바라크 창고같이 썰렁한 고시원 뒤 야산에 올라가 있던 나는 연두색으로 풀리기 시작하는 나무들 사이에서 싱싱한 기운을 내뿜는 선연한 붉은색의 진달래를 보면서 설레는 감동을 느꼈다. 뇌리에 남아있는 또 다른 장면이 있다. 젊은 날 기차를 타고 점촌 부근을 지나갈 때였다. 드넓은 벌판에서 푸른 벼들이 바람에 출렁이는 모습이 가슴 시리게 다가왔었다. 젊은 날의 내 눈에 무심히 들어온 장면들이 노인이 된 지금도 기억의 사진첩에 오롯이 보존되어 있다.​

이십대의 풋풋한 감성이 다른 욕망에 가려져 내 눈은 무채색만을 보는 눈이 되어 버렸다. 그러다 사십대 중반 수술을 받으면서 눈을 가렸던 비늘이 떨어져내린 것 같았다. 흑백의 세상이 다시 아름다운 색으로 보였다. ​

그 무렵 오랫동안 운행되어 온 녹색의 낡은 러시아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했었다. 차창 밖으로 끝없이 이어진 눈 덮인 자작나무숲이 지나가고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농가가 지나갔다. 눈에 덮인 드넓은 광야가 이어졌다. ​

사진작가들을 보면 자연의 신비함이 드러나는 순간의 한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눈이 덮인 벌판에서 추운 겨울밤을 지새기도 한다. 나도 그런 장면을 포착하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카메라인 그 분이 준 눈으로 아름다운 광경을 찍어서 마음이라는 필름에 인화해 기억의 사진첩에 담아두기로 했다. 자연은 그걸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 줄 것 같았다. ​

시베리아 벌판의 지평선 위로 서서히 거대한 태양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황혼 무렵이었다. 붉은 태양의 거대한 반원 중간쯤에 검은 실루엣으로 보이는 크고 작은 장난감 같은 집들과 숲과 들판이 지나가고 있었다. 짙은 감동이 내게 스며들었다. 그 황홀한 장면이 낡은 객차의 좁은 의자에서 자고 먹는 한 달간의 고생을 보상해 주는 것 같았다.​

자연은 하나님이 만든 물질적인 작품이다. 자연의 아름다운 빛과 색은 그걸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에게만 다가왔다. 나는 그 분의 작품전시회를 즐기는 여행을 삶의 선 순위에 올려놓았다. 시간과 돈에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나는 여행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도 극복했다. 돈이 들어올 것 같은 기회도 거절했다. 상을 주겠다고 해도 가지 않았다. 좋은 자리를 얻을 기회도 사양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을 의식 속에 많이 담아 다른 세상으로 가지고 가느냐였다. ‘나중에’라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늙으면 감동이 무디어져 봐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배를 타고 납색으로 무겁게 내려앉은 인도양을 지나갈 때였다. 바람이 불고 거센 비가 바다 위에 내려꽂히고 있었다. 배의 갑판에는 몇 명의 한국인이 있었다. 오십대 말의 한 여성은 평생 주민센터에서 9급 공무원으로 일을 해 왔다고 했다. 세상을 보고 싶어서 오랫동안 조금씩 저축을 한 돈으로 길을 떠났다고 했다. 평생 음식점을 해 왔다는 노 부부가 있었다. 좁은 식당 공간에 갇혀 일생을 보냈는데 마지막 소원이 세계 일주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

나는 요즈음 자연을 볼 수 있는 눈보다 차원높은 마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들의 영적인 눈에는 진부한 일상에서도 전혀 다른 세상이 보이는 것 같다. 마음 속에서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면 차원 깊은 전혀 다른 세계를 구경하는 것 같다. 믿음이 깊은 몇몇 사람들에게서 활짝 피어난 꽃들이 살아서 자기들을 보고 웃고 떠들며 기뻐하고 있는 것 같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들은 꽃들과 소통하는 것 같았다. 암자 앞에 있는 후박나무와 대화를 나누던 수필가 스님의 글도 오랫동안 나의 머리에 남아있다. 명상가인 한 시인은 눈이 내리는 들판을 걸어가다가 그 눈이 쌓이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마음의 눈을 가지고 있으면 자연의 정령과 소통이 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