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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세 가지 선택

Joyfule 2024. 11. 2. 13:02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세 가지 선택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산다는 것은 선택인지도 모른다. 나는 가벼운 선택조차 스스로 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어떤 옷을 입을지, 뭘 먹을지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냥 아내의 결정에 따랐다. 중대한 선택과 결단 앞에서 나는 주저하고 망설였다. 내가 다시 젊어진다면 ‘나는 누구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까’를 진지하게 고민할 것 같다.

먼저 내 주제를 겸손하게 파악할 것 같다. 누구와는 배우자의 선택이고 무엇을 하며는 직업의 선택이고 어떻게 살까는 인생관의 선택이다.

나는 우선 직업 선택의 기준이 잘못됐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기준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의사가 되기를 원했다. 의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번다고 했다. 의사의 본질인 사명감은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되고 싶은 게 변했다. 나는 굽신거리지 않고 남을 누르며 살고 싶었다. 세상에서 갑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되려면 검사나 판사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불쌍한 사람을 돕고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마음은 권력욕을 포장하는 명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장래 직업에 대한 나의 판단기준은 천박했다. 세상이 보는 시선과 겉모습에 무게를 두었다.


판사업무를 배우기 위해 법원에 일년 동안 근무한 적이 있었다. 상자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이 숨이 막혔다. 걸을 때도 음식점 방에 앉을 때도 어디서나 서열대로 움직여야 하는 사회였다. 말도 높은 사람이 하면 들어야 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야 했다. 무겁고 답답한 기운에 짓눌리는 것 같았다. 계엄시절 군사법원의 판사로 있었다. 군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무더기로 재판을 받으러 왔다. 나는 결정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능력부족이었다. 누구와 상의를 할 수도 없었다. 인질 살해범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할 때 나는 질겁을 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만 나는 싫었다.

앞으로는 절대 판사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검사일을 몇 달 했었다. 출근하면 수갑을 차고 포승에 묶인 사람들이 줄줄이 내 앞에 왔다. 붉은 딱지가 붙어서 오는 수사 기록은 삼류소설만도 못한 내용과 문장으로 가득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지? 하는 회의가 들었다. 내 앞의 검찰 서기에게 왜 그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어떤 높은 사람이라도 문을 들어서는 순간 자기 앞에 고개를 숙이는 그 맛에 한다고 했다. 파견 나온 경찰관은 신분증을 길거리에서 들이대면 누구나 명령에 복종하는 맛에 경찰을 한다고 말했다. 결국 갑이 되고 싶은 나의 욕망도 천한 권력욕이었다. 재미가 없었다.


뒤늦게 나는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뭐지? 하고 생각했다. 일을 즐기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연기에 미친 친구들이 있고 영화를 만드는데 빠진 이도 있었다.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그런 것 같았다. 하나가 좋으면 다른 게 나쁜 게 세상이었다. 그들중 상당수는 돈과 인연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환자가 끊이지 않는 돈 잘 버는 의사 친구는 화장실을 가고 하늘 한번 쳐다볼 시간이 없다고 했다.

힘들게 사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이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고 그들을 화나게 할 수도 있다. 가족을 먹여 살리고 아이 학원비를 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자신의 모든 시간을 팔아야 하는데 무슨 소리냐고 욕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미안한 소리지만 그것도 선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요즈음 나는 바닷가 작은 도시에 살면서 또 다른 종류의 삶을 사는 젊은 사람들을 보곤 한다. 바닷가에 작은 음식점을 차리고 부부가 몇시간만 영업을 한다. 돈을 더 벌 수 있어도 아이들과 함께 놀기 위해서 시간을 모두 팔지는 않겠다고 한다. 돈보다 삶을 즐기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금수저 출신은 아닌 것 같다. 서울서 내려온 젊은 부부가 작은 서점과 공방을 하면서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며 사는 걸 봤다. 그들은 삶이 어떤 도식에 묶여 있는 게 아니라 선택이라고 했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이렇게 생각해. 너는 너대로 네 귓속에 들리는 박자대로 걸어가고 나는 나대로 내 음악을 들으면서 걸어가는 거야. 그런 게 인생이 아닐까. 사람들의 인생관은 다양하다. 자기의 잣대로 남을 잴 필요가 없다. 사회의 시선이나 평가에 개의할 것 없다. 거기에 묶이는 것은 남의 입술 위에서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각자의 철학대로 사는 것이다. 성공은 돈을 많이 모은 이나 어떤 자리를 차지한 사람에게 붙이는 낱말이 아닌 것 같다. 한번 뿐인 생애를 자기가 원하는 색깔로 채우는 그런 선택이 진정한 성공이 아닐까. 아내와 직업 인생관의 세가지 선택을 잘 해야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