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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인생 만트라

Joyfule 2024. 7. 12. 13:31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인생 만트라  

 

윤석열 대통령이 고시에 계속 떨어지고 있을 때 그 가족이 점쟁이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 점쟁이는 고시만 통과하면 삼정승 이상의 높은 자리에 오를 게 분명하다고 말해 줬다는 것이다. 유튜브 방송에서 한 유명 인사가 그런 내용을 전했다. 점쟁이의 말이지만 윤석열의 내면에 그 말이 씨가 되어 떨어져 깊이 뿌리를 내렸을지도 모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어머니도 점을 보러 갔다가 아들이 나중에 큰 인물이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 말의 씨들이 잠재의식 속에서 발아해 오늘의 현실이 된 건 아닐까. 김영삼대통령도 중학교 시절 벽에 ‘대통령’이라고 써놓고 마음속으로 그 말을 한없이 되뇌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내가 젊은 날 고시원에 있을 때였다. 그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눈빛만 봐도 나는 그가 합격할 사람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될 사람이야’라고 스스로에게 반복하면서 자기최면으로 확신을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합격했다. 물론 마지막에 고도의 집중력은 기본 조건이었다. 겉으로는 합격을 희망하지만 그 눈빛 속에 ‘내가 될까?’하고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합격하지 못하고 다른 길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

나의 경우는 초등학교 육학년 때 선생님이 이런 한마디 말의 씨를 심어주었다. ​

‘너는 뭘 하든 될거다’​

그 한마디가 나의 영혼에 깊숙하게 박혔다. 고시를 비교적 오랫동안 준비했다. 사정상 중간에 중단한 적도 있다.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너는 안 될 것 같은데’였다. 그래도 어린 시절 나의 내면에 선생님이 심어놓은 한마디가 꽃을 피웠다. 나는 결국 됐다.​

마음속에 나쁜 말의 씨가 뿌려져 슬픈 운명이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어두운 가사를 천번 만번 애절하게 부르는 가수가 슬픔이 되어 버린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툭탁하면 천벌을 받겠다고 버릇같이 자신을 저주하는 말을 하는 재벌회장 부인을 봤다. 남을 의심하고 증오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그녀를 따르는 것 같았다. 그녀의 턱없는 증오는 살인청부를 부르고 그녀가 뿌린 말의 씨대로 지금도 무기징역을 살고 있다.​

인간의 깊은 내면까지 들어가는 말의 씨가 있는 것 같다.​

남이 던진 말의 씨가 들어갈 수도 있고 자신이 직접 뿌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나쁜 씨가 떨어져 발아하면 영혼이 부패하고 좋은 씨가 싹이 트면 영혼이 살아나 희망과 의지가 꽃피기도 하는 것 같다.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짧은 한마디 단어나 몇 음절의 기도문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 같기도 하다. ​

이십대 초 강원도 서석의 한 절에서 묵으면서 공부를 할 때였다. 그 절에는 한 분의 늙은 스님이 있었다. 그 스님은 백일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법당에서 ‘지장보살’이라는 한 단어를 반복했다. 그렇게 하면 죽은 영가들이 좋은 곳으로 간다고 했다. 스님의 기도가 끝나는 날 그 절의 식객이었던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법당문이 활짝 열리더니 수십명의 사람들이 나와 웃고 떠들면서 신이 나서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었다. 모두 노란 베옷들을 입고 있었다. 지금도 나는 단순한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뭔가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

카톨릭대학장을 지낸 신부님으로 부터 교리를 배운 적이 있다. 천주교에서는 절의 염주같이 생긴 묵주를 돌리면서 ‘성모송’을 반복했다. 그 신부님은 특정한 음절이나 단어, 문장을 반복하면 강력한 파동이 생겨 마음이 초능력에 가까운 힘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변호사로 우연히 민족종교 단체의 소송대리를 맡은 적이 있다. 구한말의 강증산이란 인물은 ‘태을주’라는 주문을 끊임없이 염송하게 했다. 그 주문은 우주를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했다. 산스크리트어에서 ‘만트라’라는 말이 있다. 기도나 명상을 할 때 반복하는 주문이라고 한다. 노년에 이른 나는 인생만트라를 만들어 반복하고 있다. 내 영혼 속의 무의식 세계의 깊은 바닥에 그 씨가 뿌려지기를 원한다. 나의 만트라는 ‘주님의 뜻대로’이다. 긴 세월을 살아보니까 올 거는 오고 될 거는 된다. 안되는 건 방향을 바꾸라는 그분의 메시지다. ‘주님의 뜻대로’라고 반복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사람마다 자신 속 깊이 심을 말의 씨를 잘 골라야 하지 않을까. 그걸 인생의 만트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