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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너는 누구지?

Joyfule 2024. 7. 14. 21:09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너는 누구지?

 

실버타운의 식당에서 옆에 앉은 영감님이 내게 말했다.​

“나이가 여든이 넘어가면 사람이 아닌가 봐요.”​

“왜요?”​

내가 되물었다.​

“사람 취급을 못 받는 것 같아서요.”​

그 노인은 시무룩한 얼굴로 내뱉었다. 노인들은 추하고 싫은 기피하고 싶은 존재인 것 같다. 그 노인은 사십년간을 깊은 바닷속에서 잠수부를 하면서 살았다고 했다. 그 자신은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의 시신을 찾는 데는 귀신이라고자랑했다. 조류를 알기 때문에 시신이 떠내려가 걸린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잠수부를 하면서 자살하려고 물에 들어간 사람을 구해낼 때 보람있고 좋았다고 회고했다. 팔십대 중반을 넘긴 그 노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공허해 하는 것 같다. 그는 단지 잠수부였을까. ​

며칠 전 늦은 오후 전립선약을 처방받기 위해 내가 사는 동해의 한 의원으로 갔다. 사십대쯤 되어 보이는 의사의 얼굴에 지친 기운이 묻어있는 것 같았다.​

“약 받으러 오셨죠?”​

의사는 귀찮다는 듯 사무적으로 말하고 키보드로 처방전을 치고 있었다.​

“저 요즈음 오줌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혹시 병이 난게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

“오줌 농도가 짙으면 냄새가 날 수도 있는 겁니다.”​

의사가 내 말을 깔아뭉갰다. ​

“그래도 소변검사를 받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가세요.”​

노인이라고 무시당하는 느낌이었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허리가 아팠다. 작은 의원으로 갔다. 의사는 내말을 듣는 둥 마는둥 하더니 진통제를 처방했다.​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물었다. ​

“그냥 가세요”​

의사는 내가 건방지게 묻는다는 표정이었다. 나의 늙은 모습을 보고 무시는 것 같았다. 따질 필요가 없었다. 그의 인격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동안은 의과대학병원 교수를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을 통하면 특별대접을 받았다. 공직에 있을 때는 병원장도 굽신거렸다. 그게 나인 것으로 착각했었다. ​

그때 형성된 나의 정체성은 가짜였다. 직업을 나 자신으로 착각했다. 그 정체성이 사라져 버리는 걸 보면서 존재의 의문에 맞닥뜨린다. ​

‘너는 누구지?’​

나는 누구일까. 까까머리에 검정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닐 때의 소년과 늙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존재다. 나 자신이라고 착각했던 직업도 잠시 입고 있었던 옷이었다.​

예전의 현자들은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고 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 인간을 먼지에 불과하다고 했다.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무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티끌만큼도 되지 못하는 유한한 존재가 인간이다. 노쇠와 죽음은 사정없이 닥쳐온다. 모른체 해도 올 건 온다. 진지하게 이것과 맞부딪쳐야 하지 않을까. ​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의사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자신은 무엇이었느냐고. 그는 이만장의 의료 차트가 자신이라고 했다. 한 작가는 일생 쓴 육만장 분량의 원고지가 그 자신이라고 했다. 산속 옹달샘을 나온 한방울의 물방울이었다. 개천을 지나 강물이 되고 지금의 나는 드넓은 바다를 앞에 두고 넓은 강의 하류에서 맴돌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누구였는지를 스스로 묻는다. 실버타운에 있는 구십대의 한 노인은 웃으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

“아침에 눈을 뜨면 또 하루를 선물 받은 거야. 그 기분 아무도 모를 거야. 죽을 나이를 넘기고 아직도 살아있는 그 느낌을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어. 그거 말로는 표현 못해.”​

인생은 난해하다. 나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내면의 나와 겉의 나가 왜 다른지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