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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죽음 대합실의 속살 이야기

Joyfule 2024. 2. 2. 14:56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죽음 대합실의 속살 이야기


이 년째 되니까 깨끗한 천국 같은 실버타운의 은밀한 속살이 보인다. 어떤 노인은 실버타운은 저승을 가는 대합실이라고 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다른 세상으로 가는 노인들의 모습들을 종종 봤다. 노년에 남은 게 시간밖에 없다고 말하던 할머니가 컴퓨터 포커 게임으로 시간을 죽이다가 그 옆 바닥에 쓰러져 저세상으로 갔다.​

노부부가 저녁을 맛있게 먹고 가더니 새벽녘 영감님이 이웃 약사 출신 부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고 일어나 보니까 함께 잠들었던 늙은 아내가 시신이 되어 있다고. 앰블런스가 와서 조용히 그 할머니를 모셔갔다. 언제나 마지막 행진을 하는 것 같아 보이던 파킨슨병을 앓던 노인이 어느순간 그림자 같이 사라져 버렸다. 젊어서 이 나라의 넘버 투맨이었다던 노인이나 장군출신들이 허리가 아파 몇 걸음을 걷지 못하고 신음을 한다. ​

공동식당에서 진보니 보수니 정치 얘기를 하고 선거 때 밤새 댓글을 썼다던 교장 출신 할머니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휴거를 하듯 바로 다른 세상으로 가는 친구도 있다. 마라톤이 건강에 최고라고 하면서 매일 새벽 안개 낀 한강 변을 달리던 고교동창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젊어서 유명 탈랜트들과 원없이 연애를 해봤다고 자랑하던 낭만파 선배도 요즈음은 투석을 하며 두문불출하는 방콕 삶이라고 카톡을 보내왔다. 부자였던 그는 아무리 빌딩을 여러 채 가지고 호텔을 가졌어도 세월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고 있다.​

실버타운에서 밥을 먹는데 몇몇 노인이 다가와 ‘웰다잉’에 대해 내게 자신들의 의견을 말했다. ​

“마취제로 쓰이는 프로 포플 두 병이면 고통 없이 조용히 저세상으로 갈 수 있는데 그게 정맥주사라 자기가 스스로 놓기가 어려워요.” ​

그 노인은 약학 박사 출신이다. 또 다른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저승가기 쉬운 방법은 목을 매다는 거예요. 죽은 모습이 남에게 폐를 끼쳐서 그렇죠. 미리미리 줄을 준비해 둔 노인들도 있어요.”​

옆에서 밥을 먹으며 얘기를 듣던 여성 노인이 말했다.​

“곡기를 끊고 조용히 굶어 죽는 것도 방법이예요.”​

그 말에 다른 노인이 말한다.​

“그건 너무 시간이 걸려요.”​

또 다른 노인이 제안했다.​

“여기가 바닷가인데 바다로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요?”​

“저한테는 그런 용기가 부족해요.”​

프로포플을 주장하던 노인의 대답이었다. 또 다른 노인이 말한다.​

“지금은 이런저런 웰 다잉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치매가 걸리면 불가능해지죠. 그게 제일 무서워요.”​

한 팔십대 노인이 그에게로 온 동창회의 카톡내용을 전달해 보여주었다. ‘자기 나름의 인생 마무리’라는 제목의 글로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

‘인간은 죽음을 앞두고 가장 그다운 개성의 꽃을 피운다고 한다. 감사의 기분이 넘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그런 끝이었으면 좋겠다. 혼자 죽는 고독사라도 그것이 자유로운 생활의 끝이라면 후회없는 죽음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언제까지 발견되지 않는 건 피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장치를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 정들어 살던 집에서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고 혼자 조용하게 이 세상과 하직하는 건 나름 평온한 죽음의 한 모습이다. 인생의 라스트 신이 가까워질 때 자신의 살아온 자취 생각 희망 남기고 싶은 말 등을 정리하고 장례를 미리 가족들에게 얘기해 두고 가는 건 어떨까’​

노인들은 늙어서야 깨닫는 것 같기도 했다. 돈이 많다고 땅이 많다고 잘산다고 못산다고 잘생겨서 못생겨서 그런 것들은 삶과 상관이 없었다는 것이다. 돈이 많아도 나이 칠팔십이면 소용없고 건강해도 구십이면 의미가 없다고 한다. 두 다리로 걸어서 봄날 꽃구경 다니고 이가 좋을 때 맛있는 음식집 찾아 다니고 눈이 괜찮을 때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귀가 들릴 때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고 베풀 수 있을 때 남에게 베풀고 즐길 수 있을 때 마음껏 즐기는 게 잘 사는 최고의 방법이었다고 후회들을 하는 것 같다.